[더오래]찾아올 사람 없는 노인이 '인기짱' 되는 방법

중앙일보

입력 2020.06.03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50)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논어 학이편에 ‘학이시습지불역열호’와 ‘인불지이불온불역군자호’와 함께 나오는 구절이다. 직역하면 벗이 있어 먼 곳을 마다치 않고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다. 요즘 같은 시절엔 더욱이 가슴 절절히 와 닿는 구절이다.

디지털의 발달 이후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지능기술 등으로 대표되는 4차산업혁명은 인간의 생활 양태를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다. 내게 4차산업혁명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탈인간화’의 가속이라고 할 수 있겠다.

4차산업혁명시대에는 기존의 대면 인간관계가 비대면 관계로 점점 전환되면서 사람 간의 접촉과 연대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 각종 전염병의 창궐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켜 가고 있다. 사람이 서로 만나는 걸 꺼리게 되고 굳이 만나지 않아도 모든 일이 처리되는 세상이라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얘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어쩌면 용도 폐기될 허언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대면 인간관계가 비대면 관계로 점점 전환되면서 사람 간의 접촉과 연대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등 전염병의 창궐은 사람 관계를 더 단절시키고 있다. [사진 pexels]

대면 인간관계가 비대면 관계로 점점 전환되면서 사람 간의 접촉과 연대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등 전염병의 창궐은 사람 관계를 더 단절시키고 있다. [사진 pexels]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가 교통과 물류가 힘들었던 공자의 시대에나 어울렸던 말인가 했는데, 이웃 방문하기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오늘날 다시 들먹여지는 걸 보면 공자는 2500여 년 전 오늘의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이런 말을 남겼을까. 사람과의 만남도 찾아오는 사람도 점점 희박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한번 놀러와’ ‘얼굴 한번 보자’라는 말이 인사가 아니라 부담스러운 권유가 됐으니 아이러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비단 사회적 변화에 따른 현상만일까? 아니다.

개인의 생애를 놓고 보더라도 은퇴 후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간관계의 감소와 사회적 연대의 느슨해짐은 오래전부터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가 받아들여야 할 숙명인 탈인간화 현상이라 치더라도 이런 현상을 당연히 받아들이기에는 인생3막을 사는 사람들이 겪어야 할 폐해가 상대적으로 큰 데 문제가 있다.

솔로 컬쳐를 지향하는 젊은 세대야 그런 현상에 이미 익숙해져 있고 또 다른 차원에서는 탈인간화에 따른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나이 들어 겪는 탈인간화는 젊은 층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에게는 바로 소외감과 박탈감, 그리고 자존감의 상실이라는 무서운 복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한 후 기껏해야 1~20년을 생존하고 떠나야만 했던 인간이 앞으로는 30년에서 길면 40년을 견뎌 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 긴 시간을 외로움과 박탈감, 자존감의 상실이라는 정신적 병마와 싸워야 한다면 얼마나 괴로운 인생3막이 될까?

우리 사회도 단순히 먹을 것만 걱정하던 시대는 이미 아니다. 노인 문제에 있어 가장 큰 이슈가 의식주의 문제가 아니라 외로움과 자존감의 상실이라는 점이라는 것이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노인을 자주 만나 보니 한결같이 괴로워하는 점이 자식에게서 잊혔다는 생각,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사회에서 소외됐다는 점을 가장 큰 고민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인생3막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는 자명해진다. 바로 느슨해지는 인간관계와 사회적 연대를 유지, 또는 감소하는 속도를 줄이는 일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방법이 있다.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는 안되더라도 내가 찾아가는 것을 반겨 맞아 주는 사람들을 만들면 된다. 그 방법이 바로 봉사와 기여다. 최근 몇 군데 요양보호시설에 나가 어르신을 대상으로 취미교실도 열고, 장난감도 만들고 하는 봉사 활동을 해 왔다. 요즘은 코로나19 사태로 어르신에 대한 직접 봉사는 삼가고 요양보호시설의 종사자를 대상으로 취미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일종의 간접봉사다. 봉사하는 사람이 즐겁고 보람차야 봉사 서비스의 질이 좋아진다는 내 지론에 따른 일이다. 그 결과? 소위 인기 짱이다. 열렬히 환영받는 인사가 됐다.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는 세대는 그동안 쌓아온 연륜이나 경험, 지혜로움에서 후손들에게 본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다. 누구나가 군자가 돼야 한다. 군자의 덕목은 베풂과 나눔에 있다. [사진 pxhere]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는 세대는 그동안 쌓아온 연륜이나 경험, 지혜로움에서 후손들에게 본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다. 누구나가 군자가 돼야 한다. 군자의 덕목은 베풂과 나눔에 있다. [사진 pxhere]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가 안되면 나 스스로 다가가 그들을 즐겁게 해 줌으로써 환영받는 사람이 돼 스스로 무기력에 빠져드는 탈인간화의 피해를 막으면 된다. 이제 우리 사회도 봉사와 기여가 단순히 내 것을 남에게 일방적으로 이전시킨다는 과거의 이기적 관념이 바뀌어 가고 있다. 봉사가 결국 자신을 위한 길임을 인식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는 기여와 봉사를 하면서 어느 정도 소득도 올릴 수 있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생겼다는 데에도 영향이 있다.

제3의 인생(the third age)에서 제3섹터라는 분야의 반 영리단체(NPO)가 은퇴 후의 사람들에게 봉사와 소득을 함께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마련하고 있다. 제3의 인생에서는 어떤 일을 직업으로 택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인생2막인 직장생활이 나만을 위한 삶, 그에 따라 경제적 욕구와 지위, 명예를 위해 경쟁적 삶을 살았다면 제3의 인생에서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탈인간화 시대를 살아야 할 은퇴 후 세대가 보람차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인생2막의 삶과는 다른 삶을 선택이 아니라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봉사와 이웃에 대한 기여는 탈인간화에 따른 노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는 세대는 그동안 쌓아온 연륜이나 경험, 지혜로움에서 후손들에게 본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다. 누구나가 군자가 돼야 한다. 군자의 덕목은 베풂과 나눔에 있다. 공자는 군자3락을 통해 군자가 가진 세 가지 복락을 얘기하였는데, 공통점은 인간관계에 있다. 공자가 학이편에서 밝힌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도 결국은 인간관계의 유지에 있다.

아무리 4차산업혁명시대로 일컬어지는 오늘 코로나19로 인간관계가 소홀해지고 단절돼 가지만 인간 관계없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인간과의 유대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쇠락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지 않으려면 나 스스로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면 되는 데 그의 유일한 방법이 이웃에 대한 기여와 공헌이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찾아가면 된다. 그것도 환영받으면서.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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