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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정신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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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위안부 문제는 우리시대에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묻는 보편문제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방역 성공과 G7회의에 초청받는 자부와 선진의 이 시대에 시대착오적 위안부 논란은 한국사회에 일대 정신혁명의 필요를 절감하게 한다. 완전 허구인 식민지 근대화론이 한동안 유행하더니 이제는 관제민족주의가 온통 범람하고 있다.

위안부문제, 당사자주의로 풀어야 #범람하는 관제 민족주의는 해악 #진영민주주의 결별 혁명이 필수 #정부, 위헌해소 위해 즉각 나서야

근대성은 두 범주다. 자율·주체·평등·자유·독립·주권의 인간적 범주와, 기술·산업·식량·경제·사회기반 시설 구축의 사회적 범주다. 따라서 전자를 박탈한 후자의 성취를 근대성으로는 부를 수도 없으려니와, 한국은 후자조차도 토지개혁·한글교육·한미동맹·서구세계체제편입을 포함해 일제 유산의 단절 및 극복과정과 비례하였다. 요컨대 반(反)식민지 근대화가 한국 근대성의 요체였다.

위안부 출신 이용수 인권운동가의 사자후 이후 위안부 논란의 요체는 결국 주체성의 문제다. 즉 당사자-대리인의 문제다. 문제해결의 핵심은 피해 당사자들의 명예와 존엄, 삶의 안정과 자유를 회복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대리인의 목적과 의사가 당사자의 그것을 초월하거나 억압해선 안된다. 자기결정(권)과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한다. 운동이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어야지 조직을 위해 피해자들이 활용되어선 안 된다. 그들이야말로 인간을 수단시하는 최악의 반(反)인도주의의 희생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논리처럼, 지원을 명분으로 억압을 해서는 더욱 안된다.

특히 2015년 한일정부간의 위안부 합의를 반대하는 당사자 주장은 존중받고, 2020년 위안부 운동내부의 문제를 고발하는 당사자주장은 배척받아야하는 것은 아니다. 둘 다 똑같은 당사자의 자기외침이다. 나와, 내 진영과 생각이 다르다고 집단가해를 하면 엄중한 이중범죄다. 과거 적대자들의 방법(사실 부인과 역공)에 대항해온 사람들이 내부 저항에는 종종 적대자들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자기진영을 비판했다는 이유 하나다.

즉 내가 지금 열렬히 지지·추종하는 방식은 과거에 내가 가장 반대하고 증오하던 것들이다. 프랑스혁명에서도, 드레퓌스사건에서도, 스탈린시대에도, 스타하노프운동에서도 같은 진영의 주체 억압과 내부 배제는, 혁명 이전 못지않게 혁명의 대의 하에 반복되었다. 이제 소임을 끝낸 대리 운동과 조직을 해체하자. 그리고 당사자 주체성을 통해, 당사자의 이름으로 주체와 보편을 위해 다시 시작하자. 더 이상 당사자들을 대상화·수단화하지 말자. 사실 그동안 심미자, 세계평화무궁화회, 이용수까지 주체의 고발과 비판-‘고양이’ ‘위안부 할머니를 물고 뜯고 할퀴는 쥐새끼같은 단체’ ‘도둑질’ ‘앵벌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은 이미 절절하였다.

이용수의 외침은 진실과 미래에 바탕한 위안부 문제의 궁극적 해결이 초점이다. 그가 정확하게 지적하듯 피해자와 가해자, 진실과 미래는 교육을 통해 연결된다. 일본과 세계에 외친 김학순, 길원옥, 심미자, 송신도, 김복동의 사자후가 같았던 이유다. 그래서 이 기회는 더 없이 소중하다.

한국 정부는 즉각 나서야한다. 특히 국가의 부작위에 의한 위안부 문제의 방치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위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한다.[2011년 8월 30일 헌재 판결. 2006헌마 788] 현 위헌상태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피해당사자가 배제된’ ‘절차적 내용적 흠결’로 인해 2015년 한일 합의를 무효화한 정부로서는 (문재인 대통령. 2017년 12월 28일) 일본과의 협상을 즉각 재개해야한다. 방치는 명백한 위헌이다. 피해 당사자와 대리자의 공방 및 사법조사 뒤에 숨지 마라. 사법조사는 개인과 단체의 범죄 여부의 규명일 뿐 위안부 문제해결의 본질 및 정부의 임무와는 상관이 없다. 임기 내내 위헌상태를 방치하여 전시 인권문제 해결을 끝내 외면한 정부가 되지 말기를 충고한다.

전시 인권문제는 진영에 가둘 수도 없고 갇혀서도 안된다. 피해 주체들이 현재 자기들의 반대진영과는 다른 목소리를 제기한다고 해서, 과거에 위안부 강제동원 자체를 부인·폄하·조롱하던 진영과 단체들이 갑자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행태 역시 몹시 생경하다. 이 갑작스런 새 대변자들 역시 앞으로는 전쟁범죄 해결에 대해 사실인정과 피해자 요구를 적극 옹호하기를 소망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의 대변 역시 진영이익을 위한 단기 행위에 불과할 것이다.

내부 경청과 존중 없이 외부갈등은 해소되지 않는다. 내부 타협과 연대가 먼저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인간문제도 진영적대의 벽을 넘지 못한다. 이 자해행위를 지속한다면 한국의 진영민주주의는-세계 최고·최악의 자살과 저출산 문제의 최장 방치에서 보듯-궁극적 인간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한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해달라고 외치는 이용수의 보편적 절규를 외면하지 말아야할 이유다.

사실 왜곡에 바탕한 식민지 근대화론 만큼이나, 강고한 진영논리에 기반한 관제민족주의도 인간문제 해결에는 극히 해롭다. 목적으로서의 인간과 자기주체를 향해 진영사관과 단호히 결별하는 일대 정신혁명이 절실하다.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