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정호 논설위원이 간다

진중가요 ‘전우여 잘 자라’는 왜 금지곡이 됐나

중앙일보

입력 2020.06.03 00:47

업데이트 2020.06.0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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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대중가요로 돌아본 한국전쟁 70돌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 특별전 전시장 입구에 있는 설치물. 지난 한 세기 한국인과 함께 울고 웃어온 명곡들이 노래 가사와 함께 잔잔하게 흐른다.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 특별전 전시장 입구에 있는 설치물. 지난 한 세기 한국인과 함께 울고 웃어온 명곡들이 노래 가사와 함께 잔잔하게 흐른다.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6일 현충일이 코앞이다.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사회 곳곳이 움츠러들었지만 올해 현충일을 맞는 의미는 남다르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70년 전의 씻지 못할 상처는 지금도 우리를 옥죄고 있다. 미·중 극한 대결로 우리가 설 자리가 더욱 위태롭기만 하다.

극한의 슬픔 ‘단장의 미아리 고개’
피난민 달랜 ‘이별의 부산 정거장’
“군가는 대포소리 못지않은 무기”
K팝·트로트 열풍 지펴온 명곡들

6·25는 한국 사회 전반에 메가톤급 충격을 주었다. 대중문화 또한 예외가 아니다. 갑남을녀의 마음을 울리는 가요는 더욱 그렇다.

유호

유호

현충일을 맞아 ‘전우여 잘 자라’가 떠오른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로 시작한다. 중장년 남성이라면 군대 시절 수없이 불렀을 노래다.

이 노래엔 사연이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가 쓴 『한국전쟁과 대중가요, 기록과 증언』에 작사가 유호(1921~2019)의 회고담이 나온다. 6·25 당시 피난을 가지 못한 유씨는 서울 수복을 맞아 명동에서 박시춘(1913~96)을 만나 술자리를 갖는다. 그들은 밤새 술을 마시며 북진·통일·해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유씨는 “박 선생이 북진 통일이 임박했으니 이제 우린 살았다. 그러니 군인들의 사기를 돋울 노래를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기억했다.

주현미가 풀어놓은 ‘추억의 노래’ 50선

한국인의 애창곡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작사한 반야월의 친필.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한국인의 애창곡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작사한 반야월의 친필.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1절은 낙동강, 2절은 추풍령, 3절은 한강, 4절은 삼팔선으로 골격이 정해졌다. 노래 악보가 곧바로 전국에 뿌려졌고, 군의 사기도 올라갔다. 하지만 노래는 1·4후퇴 즈음에 육군본부에 의해 금지된다. 진격의 노래이건만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2절)가 불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3절)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4절) 등의 비극적 노랫말이 퇴각하는 한국군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박시춘

박시춘

‘전우여 잘 자라’는 휴전 직후 복권되며 6·25를 대표하는 진중(陣中)가요로 남았지만 70년 전 급박한 전쟁터의 명과 암을 돌아보게 한다. 가수 주현미도 한국가요 100년을 수놓은 명곡을 풀어놓은 신간 『추억으로 가는 당신』에서 이 노래를 6·25 관련 첫 노래로 꼽았다. 1947년 ‘신라의 달밤’으로 연을 맺은 유호-박시춘 콤비는 1·4후퇴의 아픔을 읊은 ‘굳세어라 금순아’,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는 군인을 노래한 ‘전선야곡’, 부산 피난민의 애환을 그린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을 빚어냈다.

한국인의 애창곡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인쇄한 가사지.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한국인의 애창곡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인쇄한 가사지.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주현미는 ‘이별의 부산 정거장’에 대해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고인다. 이야기가 너무 슬픈 탓에 공식 자리에서 찬밥 신세가 됐지만 그 시절 우리의 아픔이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트로트가 대중문화를 집어삼킨, 일면 질릴 만큼 TV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요즘 6·25 노래 중 가장 서글픈 곡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작사 반야월, 작곡 이재호, 노래 이해연)가 아닐까 싶다. 지난해 이맘때 트로트 열풍 시발점이 된 ‘미스 트롯’ 결승 무대에서 송가인이 불러 시청자들을 후벼팠다. 가인(歌人) 송창식이 “송가인처럼 트로트를 제대로 해내는 사람은 없었다”고 격찬한 송가인은 이 곡을 “죽기 직전에 부르고 싶은 노래”로 꼽기도 했다.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 특별전을 지난주 초 찾았을 때 전시장 들머리에서 들려온 곡조도 ‘미아리 눈물 고개 임이 넘던 이별 고개’였다. ‘화약연기’ ‘철사줄’ ‘북풍한설’ ‘감옥살이’ 등의 가사가 전쟁의 참혹함을 새삼 일깨웠다. 또 1, 2절 중간에 들어간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부디 살아서 돌아오세요. 넷! 여보! 여보!’ 대사는 얼마나 애절한가. 남편과 떨어진 부인의 사무친 그리움을 헤아려보기가 어렵다.

6·25 휴전 직후 유행한 ‘늴리리 맘보’ 가 실린 음반.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6·25 휴전 직후 유행한 ‘늴리리 맘보’ 가 실린 음반.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가요계의 전설’로 남은 반야월이 노랫말을 붙인 곡절도 말 그대로 단장(斷腸), 즉 창자를 끊어내는 고통이었다. 그는 생전에 “9·28 수복이 돼서 서울에 올라와 집사람 얘기를 들어보니 다섯 살짜리 딸이 미아리 고개를 넘던 중 영양실조로 눈을 감았다고 했다. 아이를 이불에 싸 호미로 땅을 파서 묻었다고 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어디 미아리뿐이었을까. 한국전쟁 당시 국토의 4분의 3이 전쟁터였다. 어림잡아 500만 희생자, 1000만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당시 노래는 전쟁의 상처를 잠시나마 달래주는 쉼표가 됐다. ‘굳세어라 금순아’의 흥남부두·국제시장, ‘경상도 아가씨’의 사십계단·영도다리, ‘처녀 뱃사공’의 낙동강 등 구체적 지명이 자주 등장했다. 사람들은 이별과 실향의 유행가로 불안한 나날을 이겨냈고, ‘아내의 노래’ ‘임 계신 전선’ ‘승리의 노래’ ‘전선야곡’ 등 진중가요로 전장터의 남편과 가족을 응원했다. 한국 대중가요를 연구해온 단국대 장유정 교수는 “한국전쟁 관련 노래는 대부분 트로트에 집중됐다”며 “전쟁 중 수많은 군가가 불린 가운데 대중가요는 고향·어머니·임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토해내며 호응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국립한글박물관서 노랫말 100년 특별전

반야월

반야월

전쟁 속에도 노래는 끊이지 않았다. 많은 가수·배우들이 전장을 찾아 병사들의 사기를 돋웠고, 일반인들은 구슬픈 곡조 하나로 총성의 시름을 잊었다. 부산·대구 등 피난지에선 도미도레코드·미도파레코드·오리엔트레코드 등이 활동하며 우리 가요의 맥을 이어갔다. 군가부터 이별가까지 6·25 관련 애창곡을 두루 작곡한 박시춘은 생전에 “좋은 군가는 대포소리에도 지지 않는 예술적 무기”라고 말했다.

6·25 휴전 이후 가요 동네에는 외국 선율이 본격적으로 유입됐다. 미국 대중문화와 미8군 무대의 영향을 받아 ‘슈샤인 보이’ 같은 재즈 음악, ‘늴리리 맘보’ 같은 춤 노래가 유행했다. 전쟁으로 무거워진 사회 분위기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아리조나 카우보이’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은 물론 ‘인도의 향불’ ‘페르샤 왕자’ ‘홍콩 아가씨’ 등 이국적 취향이 두드러졌다. 가요연구가 이영미는 “전쟁 직후 한국인은 아직 미국식 음악과 문화를 체득하기 힘들었고, 그런 상황에서 일제 말기에 익숙해진 아시아적인 이국성을 띤 노래에 기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기성세대는 여전히 70년 전의 옛 노래를 부르고 있다. 세계를 주름잡는 K팝의 이면에도 우리의 지난 자취가 담겨 있다. 최근 기세등등한 트로트가 어떻게 변모할지도 주목거리다. 한국가요 1세대 작사가 반야월의 말이다. “‘흘러간 가요’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흘러온 가요’라고 해야 한다.” 가요평론가 박성서는 이 말을 이렇게 이어받았다. “대중가요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한류의 중심이다. 우리 가요의 역사는 ‘흘러간 가요’가 아닌 ‘지금도 흐르고 있는 노래’다.”

‘아리랑’부터 BTS까지, 어떻게 변해왔을까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1926)에 주제곡으로 삽입된 대중가요 ‘아리랑’은 일제에 의해 금지곡으로 묶였다. 가사가 불온해 치안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1931년 나온 『조선가요선집』에는 ‘아리랑’ 악보와 함께 노랫말이 실렸는데, 5절의 ‘싸호다싸호다 아니되면 이 세상에다 불을 질으자’라는 부분이 검게 지워져 있다.

‘사공의 뱃노래~’로 시작하는 이난영의 명곡 ‘목포의 눈물’(1935) 2절은 ‘삼백연(三伯淵) 원안풍(願安風) 노적봉 밑에’인데, 여기서 원래 가사는 ‘삼백년 원한 품은’이었다.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발음만 비슷한 다른 표현으로 수정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10월 18일까지 열리는 ‘노랫말 특별전’(코로나19로 14일까지 임시 휴관)은 지난 100년 한국인의 일상을 노랫말로 짚어본다. ‘아리랑’부터 BTS의 ‘아이돌’까지 20세기 대중가요사를 노랫말로 집중 조명하기는 처음이다. 전시장 자체가 커다란 음악다방처럼 느껴진다. 한글박물관 김미미 학예사는 “우리가 지내온 격동의 시간을 시대별로 정리했다”며 “음반·가사지·유성기·책 등 다양한 자료로 한국인의 어제와 오늘을 체감할 수 있게 꾸몄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24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선 단국대 장유정 교수의 ‘한국전쟁과 가요’를 주제로 한 강연 및 콘서트가 열린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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