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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전 국민 고용보험은 복지국가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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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 무엇보다 270명이 넘는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더 근본적으로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과 섣부른 희망의 불씨를 잃었다. 이런 상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얻은 값진 자산이 있다.

대한민국이 ‘표준’이 되고 있다는 자부심은 코로나19 방역에 한정된다. 대신 우리의 복지 시스템이 얼마나 부실한지 여실히 드러났다. 코로나19 확진자나 자가 격리자 중 상당수는 최소한의 생계유지가 쉽지 않았다. 상병 수당이 없어서다. 봉급생활자 중 절반 이상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실업부조제도 없다. 장기 실직자에겐 마땅한 지원제도가 없다는 뜻이다.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회 서비스 등 사회 안전망이 허술했다. 국민의 고통은 상대적으로 컸고 국가 재정 투여의 효용성은 그만큼 낮았다.

노동의 미래가 어떨지에 대한 체감 효과도 얻었다. 비대면 사회에서 일자리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 틈바구니를 채우는 게 디지털 생산과 소비 양식이다. 노동자로서도, 소비자로서도 위상이 추락할 것을 예고한다. 재택근무와 유연근무로 포장하고 있지만 기존의 탄탄한 고용관계는 급속히 해체될 것이다. 작업장에서 노동자의 보호장치도 느슨해진다. 온라인 거래가 급증하면서 플랫폼 노동자가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쿠팡·구글 같은 거대한 플랫폼 자본의 이윤추구 과정에서 소비자는 자신의 경험·감정·태도 등 개인정보를 제공한다. 소비자는 이른바 ‘공유부’(공동의 것으로 돌려야 할 수익)의 생산자지만 그 이익은 배분받지 못한다.

이런 관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 등 일부 정치인이 제시한 ‘전 국민 고용보험제’가 주목된다. 일하는 모든 이들을 고용보험에 포괄하겠다는 선의의 제도 이상이다. 사회보장제를 이젠 고용이 아니라 ‘소득’에 기초해 전면 재설계해야 함을 의미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소득에 기초한다면 소득세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 일하는 이들에게 부과하는 소득세와 기업·소상공인의 영업이익에 붙는 세금이다. 공유부라는 외부효과를 누리면서도 직접 고용하지 않는 플랫폼 기업도 고용보험 기여금을 부담해야 한다. 소득이 있든 없든 공유부 생산에 기여한 것도 유의미한 노동 활동이다. 따라서 소득이 없어도 고용보험 수급권을 인정받는다. 이것이 복지국가의 미래를 재설계하는 출발점이다. 기본소득제가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이다. 복지국가의 끊임없는 진화만이 노동의 미래에 대한 답이다.

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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