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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빗발치던 좁은 통학로, 대학생들 힘합쳐 인도 넓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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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1일 광운대 학생들과 정석재 경영학과 교수(맨 왼쪽), 조선영 광운학원 이사장(왼쪽 둘째)이 폭이 1m에 불과한 서울 노원구 광운로 1길을 돌아보고 있다. 최정동 기자

지난 1일 광운대 학생들과 정석재 경영학과 교수(맨 왼쪽), 조선영 광운학원 이사장(왼쪽 둘째)이 폭이 1m에 불과한 서울 노원구 광운로 1길을 돌아보고 있다. 최정동 기자

비만 왔다 하면 사람들의 우산이 맞물려 아수라장이 됐다. 길이 317m, 폭은 1m인 외길에선 아슬아슬한 풍경이 연신 벌어졌다. 서울 노원구 광운로 1길 이야기다.

광운대 인근 폭 1m에 317m 외길 #학생 6명 2년에 걸쳐 개선안 마련 #도로 폭 감소 전신주 매립 제안 #노원구서 수용, 23억 들여 공사예정

어른 두 명이 겨우 나란히 지나갈 수 있는 이 길이 올해 달라진다. 광운대 학생 6명이 제안한 ‘도로 다이어트’ 아이디어를 도로를 관리하는 노원구가 받아들이면서다. 2년에 걸친 끈질긴 작업 끝에 대학생들이 거머쥔 성과는 컸다. 노원구는 23억원을 들여 도로를 줄이고, 대신 통행로 폭을 최대 2m로 넓히고 인근 하천에 산책로까지 만드는 공사를 올해 시작하기로 했다.

1일 오후 2시 광운로1길을 바꾼 학생들을 만났다. 광운대는 부지가 부족해 2009년 경영학부 건물 누리관을 본교 캠퍼스와 도보로 12~15분 남짓 떨어진 주택가 인근에 세웠다. 경영학부 학생 800여 명과 이곳에서 수업을 들으려는 대학생들은 광운로 1길 대신 약 5분 남짓한 시간을 아낄 수 있는 ‘지름길’을 이용했다. 문제는 이 지름길이 누리관 바로 옆에 있는 광운전자공고 운동장이라는 점이었다. 학생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다니니 체육 수업은 원활하지 못했다. 주민들도 광운로 1길이 좁고 불편하니 운동장을 길처럼 이용하고, 배달 오토바이마저 마구 다니는 상황이 되자 고등학교 측은 2017년 운동장을 폐쇄했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름길이 막히자 이번엔 대학생들이 괴로운 상황을 맞게 됐다. 길은 좁고, 바로 옆은 차도였다. 수업 간 쉬는 시간은 15분. 잰걸음으로 걸어야 겨우 시간에 맞출 수 있는 정도였다. 학교엔 ‘통학로가 비좁다’는 민원이 빗발쳤다.

경영대 학생회가 나섰다. 당시 이종현(23) 경영대 학생회장은 ‘운동장 재개방’을 요청했지만 일은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형, 누나들의 통학 거리를 위해 왜 동생들이 고생해야 하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동생’들의 학습권 이야기에 학생회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물꼬는 다른 곳에서 트였다. 조선영 광운학원 이사장은 학생회에 “전문가 자문단을 지원해줄 테니 프로젝트로 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학생회 회장인 이씨는 ‘다른 방법’을 찾는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로 했다. 팀도 꾸렸다. 경영대 학생회 부회장인 유지나(22)씨와 4학년생 허재원(23)씨, 22살 동갑내기 3학년생 최원준·이석희·박채선 씨가 뛰어들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일인 데다 취업준비, 입대까지 뒤로 미뤄야 했지만, 학생회는 통학로를 포기할 순 없었다. 비슷한 사례를 찾고 제안서를 만드는 데 꼬박 2년 남짓한 시간을 매달렸다. 정석재 경영학과 교수가 조언을 해주면서 제안서는 조금씩 구체화했다.

학생들은 지난해 노원구에 학생들과 인근 주민들을 위해 광운로1길 ‘다이어트’를 하자고 제안했다. 폭이 1m에 불과한 보도를 1.5~2m로 늘리는 대신 왕복 2차선 도로 폭을 6m로 줄이고, 시각 장애인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점자블록을 깔자고 했다. 8개나 있는 전신주와 4개의 통신주, 각종 전선은 땅속으로 묻고, 가로등 하나 없는 인근 주택가 골목길엔 태양광 가로등을 설치하자는 내용도 담았다. 조 이사장은 “구청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라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학생회는 지난해 주민과 인근 학교 학생회 등을 초청해 공청회를 열었다. 주민까지 모두 동의하자 노원구는 지난 4월 23억원을 들여 이 길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은 환호했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차도를 줄이고 보도를 넓혀 주민들이 편안하고 안전한 통행로가 되도록 보행거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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