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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줄에 전성기 연 22년차 배우 김영민 “어깨에 힘들어가지 않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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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배우 김영민. 연극판에서 쌓은 연기력으로 안방극장까지 사로잡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김영민. 연극판에서 쌓은 연기력으로 안방극장까지 사로잡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마스크를 써도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지요.”

‘부부의 세계’ 바람둥이 손제혁 역 #‘사랑의 불시착’서도 대세배우로 #백상예술대상 두 부문 조연상 후보

지천명에 전성기를 맞은 데뷔 22년차 배우 김영민(49)은 “괜히 지금 잘됐다고 어깨에 힘 들어가면 안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예대 연극학과를 졸업한 뒤 1999년 연극 ‘나운규’로 데뷔한 그는 오랜 기간 대학로 연극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동안 ‘레이디 맥베스’ ‘19 그리고 80’ ‘햄릿’ ‘청춘예찬’ ‘에쿠우스’ ‘나쁜자석’ ‘레인맨’ ‘내 심장을 쏴라’ ‘엠 버터플라이’ 등 숱한 화제작에 출연하며 연극팬들에겐 익숙한 얼굴이 됐지만, 그 스스로 “작품 보신 분들만 아는, 어떻게 보면 무명”이라고 말하는 시간을 20여 년이나 보냈다.

하지만 올들어 그가 출연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부부의 세계’가 연이어 흥행 대박을 터뜨리며 그 역시 대중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장국영 캐릭터로도 호평받았고, 4일부터는 새 영화 ‘프랑스 여자’로 관객을 만난다. 오는 5일 열리는 제56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부부의 세계’)와 영화(‘찬실이는 복도 많지’) 두 부문에서 남우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으니, 명실상부한 대세 배우가 된 셈이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사진 JTBC]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사진 JTBC]

전성기가 시작된 것 같다.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 배역도 커질 것이고, 배우로서의 책임감도 있을 것이고, 작업에 대한 욕심도 생길 텐데, 그런 것들이 내게 어떻게 펼쳐질까 나도 궁금하다.”
‘사랑의 불시착’의 귀때기 정만복, ‘부부의 세계’의 바람둥이 손제혁 등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이어 소화했는데.
“대본이 가장 중요하다. 가능하면 애드립을 자제하는 편이다. 인물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작업에서 70~80%는 배우의 몫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지만, 내 생각만이 답은 아니다. 촬영 현장에서 정신 바짝 차려서 나와 좀 다른 의견이 있다면 그걸 잘 내 안으로 흡수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손제혁·고예림 부부가 결국 헤어지는 ‘부부의 세계’ 결말을 알고 있었나.
“마지막회 대본은 촬영 1, 2주 전쯤 나왔다. 슬픈 결말이지만 나는 그 결론이 마음에 무척 든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잘못된 행동과 실수들이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잘 담고 있어서다. 아무리 사랑하고 용서해도 아물지 못하는 상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덜 성숙한 인간이었던 제혁이 이제 좀 더 인생을 성숙하게 살아가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는 비극이지만 희망도 읽힌다.”
실제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이다.
“어리고 여리게 생긴 게,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게 사실 콤플렉스였다.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이 작품 속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부러웠다. 그때 선배님·선생님들이 ‘언젠가 동안 때문에 복 받는 날이 올 거다’ 하셨는데, ‘부부의 세계’도 나이보다 좀 어려 보여 캐스팅된 것 같다. 지금은 그냥 내 얼굴에 내가 충실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장점이 단점 될 수도 있고 단점이 장점 될 수도 있으니까, 그냥 지금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나가고 있다.”
‘무명’ 시절이 길었는데,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30대 초반. 자신감이 큰 거에 비해 답이 안 생기니까…. 현실적으로 연극하며 가난했고, 배우로서 발전이 없는 거 같기도 했다. 열심히 하는 만큼 발전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조금씩 올라와 있고 또 조금씩 올라와 있고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계단이 얼마나 길게 반복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가까이 있는 분들, 가족·친구·선후배들·지인들이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 주셨다. 그런 조용한 응원이 굉장히 큰 힘이 됐다. 최근 드라마가 잘 되면서 나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내가 또 많은 시간 동안 조용한 응원을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참 행복하다.”
배우로서의 강점을 꼽는다면.
“성실함이다. 대학로에서 ‘참 열심히 하는 놈’으로 인정받았던 것 같다. 연습시간에 누구보다 일찍 가서 코피 나도록 연습하는, 좀 무식하고 물리적인 성실함이 있었다. 이젠 마음가짐의 성실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불시착’ ‘부부의 세계’로 잘 됐다고 좀 들뜰 수도 있고 어깨에 힘 들어갈 수도 있는데, 그런 거에 대한 내 안의 컨트롤이 필요하다. 잘 됐다고 들뜨지 말고, 안 됐다고 슬퍼하지 말고.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성실함이 있어야 할 때 같다.” 
차기작은 하반기 JTBC 드라마 ‘사생활’이다. 계획이나 꿈은.
“거창하지 않다. 그동안 항상 열심히 했고 작품에 충실히 하려고 했는데, 결과는 내 손을 떠난 면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잘 될 때도, 안 될 때도 있을 거다. 그냥 작품 하나하나 한걸음 한걸음에 최선을 다하는 게 나에게 숙제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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