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시간에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부산지법은 2일 열린 영장 실질심사에서 “불구속 수사 원칙과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고, 주거가 일정해 도망의 염려가 없다”며 오 전 시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부산 동래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돼 있던 오 전 시장은 이날 오후 8시 25분쯤 풀려났다. 오 전 시장은 자택이 있는 부산 해운대구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지법 “증거인멸·도주 우려 없다”며 영장 기각 #유치장 입감된 오거돈 이날 오후 8시 30분쯤 풀려나 #강제추행 혐의로 검찰 송치하면 곧 기소될 듯 #역대 부산시장 4번째로 재판장에 서는 불명예
오 전 시장은 이날 오전 11시 15분부터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우발적인 범행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업무시간에 부하직원을 집무실로 불러 강제추행한 오 전 시장의 범행은 계획적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오 전 시장은 심문에서 혐의를 대부분 시인하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으며 스스로 범행이 용납이 안 돼 시장직에서 물러났다”며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막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인 측은 오 전 시장이 도주 우려나 증거 인멸 우려가 없으며 주거도 일정하기 때문에 구속영장이 기각돼야 한다는 주장을 줄곧 펼쳤다.
법원이 구속 영장을 기각함에 따라 오 전 시장은 부산시장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구속되는 불명예를 면했다. 앞서 고 안상영 부산시장이 2004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았다. 안 시장이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당시 부산시 행정부시장이었던 오 전 시장이 시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오 전 시장은 구속을 면했지만, 곧 재판장에 설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오 전 시장의 올해 성추행 사건만 분리해 송치할 가능성이 크다. 오 전 시장이 지난해 성추행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 다른 혐의는 부인하고 있어 수사에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이 올해 성추행 사건은 혐의를 인정하고, 공증 등 증거물을 확보한 상황이어서 검찰 송치 후 기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산경찰청은 오 전 시장의 강제추행 외 다른 의혹은 계속해서 엄정하게 수사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오 전 시장이 기소되면 민선 부산시장 출신 중 역대 네 번째로 법의 심판대에 오른다. 문정수 전 부산시장은 1997년 청탁과 함께 현금 2억 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불구속기소 된 뒤 1, 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고 안상영 시장은 2004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수사 중 ‘동성여객 게이트’에 연루돼 구치소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2017년에는 허남식 전 시장이 엘시티 금품수수 혐의에 연루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항소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48년생인 오 전 시장은 1971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2001년 고 안상영 시장 시절 부산시 행정부시장에 임명됐다. 오 전 시장은 2004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2005∼2006년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2006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낙선한 오 전 시장은 2014년에는 야권의 지원을 받아 무소속 시장 후보로 나섰다. 자유한국당 서병수 후보에게 고배를 마신 뒤 제8대 동명대 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 전 시장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4번째 도전 끝에 당선됐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