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마라(Don’t do It)!” 나이키가 대표 슬로건을 바꾼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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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발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서 시위가 확산 중이다. 이 가운데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도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5월 31일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나이키 매장 앞에서 군중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REUTERS=연합뉴스

지난 5월 31일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나이키 매장 앞에서 군중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REUTERS=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캠페인 ‘이번 한 번만은, 하지 마라! (For Once, Don’t do It)’를 공식 SNS 계정에 공개했다. 나이키의 대표 슬로건인 ‘Just do it(그냥 해)’을 변형한 문구다. 검정 바탕에 흰색 글씨로 명료한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는 캠페인 영상에는 “이번 한 번만은 하지 말자. 미국에 문제가 없다는 듯 굴지 말자. 인종 차별에 등을 돌리지 말자. 무고한 생명이 빼앗기는 것을 받아들이지 말자. 더 이상의 예외를 만들지 말자. 이 일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자. 뒤로 물러서거나 침묵하지 말자. 당신이 변화의 중심이 될 순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경쟁 브랜드인 아디다스도 나이키와 뜻을 같이했다. 트위터에서 나이키의 해당 캠페인을 리트윗한 데 이어 31일 공식 SNS 계정에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공개했다. 인종주의를 뜻하는 ‘RACISM’이라는 단어 가운데에 붉은색 선을 그어 반대의 목소리를 낸 것. 동시에 “행동해라,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또 다른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도 검정 바탕에 흰 글씨로 ‘우리는 평등을 지지한다’라는 문구를 로고와 함께 게시해 같은 뜻을 전했다.

지난 1일 미국 뉴욕 웨스트 브로드웨이의 아디다스 매장. 전날 시위로 인해 유리창이 깨진채 폐쇄됐다. 사진 EPA=연합뉴스

지난 1일 미국 뉴욕 웨스트 브로드웨이의 아디다스 매장. 전날 시위로 인해 유리창이 깨진채 폐쇄됐다. 사진 EPA=연합뉴스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는 작가 겸 예술가인 클레오 웨이드(Cleo Wade)의 시구를 공식 SNS 계정에 올리고 ‘인종 차별을 끝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난해 초 구찌는 흑인 얼굴을 형상화한 스웨터를 출시해 인종 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논란이 격화되자 구찌는 ‘북미 글로벌 체인지 메이커 프로그램’을 론칭하고 북미 지역의 유색 인종 청년을 지원하는 데 500만 달러(약 61억 원)의 기금을 마련한 바 있다. 흑인 예술가 클레오 웨이드는 해당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체인지 메이커 협의회의 공동 의장이다.

한편 프랑스 브랜드 루이 비통은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된 지난 금요일 새로운 핸드백을 공개하는 캠페인을 공식 SNS 계정에 게시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이에 바로 다음 날 루이 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질 아블로가 제작한 비디오와 함께 ‘변화를 만들어라. 인종 차별로부터 평화를 향한 자유’라는 메시지를 올리고 논란을 불식시켰다. 해당 게시물에는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해시태그(#)도 달았다.

루이 비통의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또 다른 패션 브랜드 오프 화이트의 수장인 버질 아블로는 자신의 개인 인스타그램에 같은 해시태그를 게시하고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여러 게시물을 올렸다. 또한 이번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흑인을 지원하는 조직인 펨파워(Fempower)에 50달러(약 6만 원)를 기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가 판매하는 옷의 평균 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작은 기부 금액으로 쓴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밖에 미국 패션 브랜드 마이클 코어스도 공식 SNS를 통해 인종 차별에 반대한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미국의 뷰티 브랜드 글로시에는 구조적인 인종주의에 반대해 싸울 것을 명시하며 관련 단체에 50만 달러(약 6억원)를 기부할 것을 발표했다.

그동안 패션 업계에선 사회·정치 이슈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중립적이어야 안전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브랜드를 소비하려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패션 브랜드들도 점차 사회·정치 이슈에 명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문 기업 에델만이 2018년 전 세계 8개국 소비자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3분의 2에 이르는 소비자가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문제에 대한 브랜드 입장이 구매 결정을 좌우한다고 대답했다.

패션 홍보 전문가인 함샤우트 김완준 상무는 “패션 업계에서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컨셔스 패션(Conscious fashion‧의식 있는 패션)’은 단지 환경 문제만은 아니다”라며 “요즘 젊은 세대는 인권‧생명 존중‧평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에서 자신과 생각 같은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크다”고 말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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