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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동해안 산불 20년, 숲 되살리는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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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지난달 27일 강원도 속초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20㎞를 달려 도착한 고성군 죽왕면 구성리의 산자락. 남쪽으로 멀리 설악산 울산바위가 보이는 이곳은 1996년과 2000년에 두 차례 산불 피해를 본 곳이다. 특히 지난 2000년 4월 14일부터 9일간 고성과 강릉을 중심으로 산불이 퍼지면서 서울시 면적의 40%에 해당하는 2만3794㏊의 숲이 피해를 보았다. 역대 최악의 피해였다.

서울 면적 40% 한꺼번에 불에 타 #피해복구 방법 놓고 논쟁 벌어져 #종 다양성은 자연 복원지가 우세 #10~15년 있어야 완전 회복 가능

당시 산림 전문가들은 산불 발생 20년 후 숲이 되살아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숲은 되살아났을까.

취재팀이 찾은 죽왕면 구성리는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고성 산불 피해지 연구조사지역이다. 피해지역 대부분에 소나무 등을 심었지만, 축구경기장 100개 정도에 해당하는 70㏊에 이르는 이곳은 자연 복원이 이뤄지도록 나무를 심지 않았다. 자연 복원지에는 신갈나무·굴참나무 등 참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풀과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계곡 쪽에는 높이가 10m가 넘는 큰 나무도 눈에 띄었다. 타다 남은 소나무 줄기가 눈에 띄기도 했지만,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상처 대부분은 숲이 덮고 있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보전복원연구과 강원석 박사는 “자연 복원지 대부분은 참나무 종류가 자리를 차지했다”며 “땅이 척박한 암석 지역이나 능선 부분에만 소나무가 일부 자라고 있지만 키는 작은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구성리에 위치한 고성 산불 피해지 연구 조사지역. 골프장 너머 동해 바다가 보인다. 2000년 4월 14일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돼 동해안 지역으로 번진 산불은 열흘 가까이 지속되며 산림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20년이 지난 지금 푸른 숲으로 되살아났다. 장진영 기자

지난달 27일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구성리에 위치한 고성 산불 피해지 연구 조사지역. 골프장 너머 동해 바다가 보인다. 2000년 4월 14일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돼 동해안 지역으로 번진 산불은 열흘 가까이 지속되며 산림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20년이 지난 지금 푸른 숲으로 되살아났다. 장진영 기자

동쪽 경사면의 소나무 조림지는 자연 복원지와 뚜렷이 구별됐다. 산불 발생 후 1~2년 뒤 심은 소나무는 키가 10m가 넘게 훌쩍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다. 간벌작업과 풀·나무 제거작업이 이뤄져 숲속으로 들어가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강 박사는 “조림지 소나무의 생장 속도는 조건이 비슷한 일반적인 강원도 소나무의 약 70~80% 수준”이라며 “10~15년 후에는 비슷한 수준으로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피해 산림 복구 방법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산사태 방지를 위해 조림사업으로 신속히 복구해야 한다는 입장과 자연 복원이 이뤄지도록 손을 대면 안 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당시 임업연구원 산림생태과장으로 조율에 나섰던 신준환 동양대 산림비즈니스학과 교수는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지역별 산림복원 방안을 마련했는데, 절반은 조림하고 절반은 자연 복원하기로 어렵게 합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는 않았다.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이규송 교수는 “실제 산림 복원은 시·군이나 산주(산림조합)의 의사에 따라 정해지는데, 80~90%는 소나무와 자작나무 위주로 복원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소나무 숲에서 송이 채취를 원하는 주민 의사가 반영됐다.

연도별 산불피해면적 .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연도별 산불피해면적 .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자연 복원을 주장했던 강원대 생명과학과 정연숙 교수는 “동해안 지역은 바람이 강해서 산불이 반복되는 데다 토양이 척박해 목재 생산이 어렵고 산불에도 취약한 소나무 숲을 예산을 들여 조림할 이유가 없다”며 “전체 피해 면적의 81%는 자연 복원하더라도 산림 생태계가 회복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20년이 지난 지금 자연의 복원력이 확인됐다”며 “산불 발생 후 토양침식만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수준으로 내버려 두면 숲이 복원된다”고 강조했다. 자연 복원지에서는 산불 발생 전 관찰됐던 식물 종수의 81%가 곧바로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식물은 물론 조류·포유류 등도 자연 복원지에서 더 많이 관찰됐다. 2006~2011년 산림과학원의 조사 결과, 고성 자연복원 지역에서는 5년간 관찰된 조류의 평균 종수가 미(未)피해지역의 101%로 거의 동일했으나, 인공조림지역은 미피해지역의 87% 수준을 보였다.

서울대 산림과학부 이우신 명예교수는 “조림지보다 자연 복원지에서는 도토리 같은 종자가 먹이가 되기 때문에 설치류 등 야생동물 종수도 많이 관찰된다”고 말했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조림지에 하층 식생이 복원되면 자연 복원지 사이의 차이는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동해안에서는 지난해 4월에도 530㏊가 불에 타는 등 동해안에서는 해마다 크고 작은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복원사업에도 요즘은 산불 예방이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산림과학원에서는 2018년 산불이 발생했던 고성군 동해면 장기리 지역 0.8㏊에 지난 4월 굴참나무 묘목을 심었다. 강 박사는 “굴참나무의 경우 코르크층이 두터워 산불이 발생해도 잘 견디기 때문에 산불 진행을 차단하는 내화수림대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굴참나무가 잘 자라는 조건을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조건을 주면서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은 “산불과 기후변화에 취약하기 때문에 침엽수인 소나무를 조림할 이유는 없다”며 “조림할 경우 지역에 맞는 향토 수종과 활엽수를 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향후 산불 피해지 복원에서는 지형 조건이나 산림의 이용 목적에 맞게 자연 복원과 조림을 적절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