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최석원 교수 연구팀, 인공적 카이랄 현상 부여하는 기술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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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방법으로 카이랄성을 재료에 부여하는 장면의 개념도.]

[물리적 방법으로 카이랄성을 재료에 부여하는 장면의 개념도.]

경희대학교 공과대학 최석원 교수와 일본 이화학연구소 아라오카 후미토 박사의 공동 연구팀이 우리 몸의 생명현상에 관여하는 생체분자가 지니는 ‘거울상 이성질성’ 또는 ‘카이랄성(Chirality)’을 인공적으로 재료에 부여해 카이랄한 재료 특유의 광학 특성을 발현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화학적 설계나 합성 없이 재료에 인공적 카이랄 현상을 부여할 수 있다. 이 연구 결과는 재료과학 분야 저명 국제학술지인 <ACS Nano>의 온라인판에 지난 5월 26일 게재됐다.

오른손과 왼손은 구조와 모양은 같다. 하지만 오른손용 야구 글러브는 왼손에 착용할 수 없다. 이렇듯 거울로 보면 대칭구조를 이루지만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어 서로 겹칠 수 없는 분자구조나 집합구조를 ‘거울상 이성질성’ 또는 ‘카이랄성’이라고 부른다. 우리 몸의 생명현상에 관여하는 DNA나 단백질 아미노산, 단당류 등 생체분자는 대부분 카이랄성을 띤다.

재료에 카이랄성을 부여하면 그 재료가 원래 갖고 있지 않았던 기능성이 나타난다. 생체재료의 대부분은 카이랄한 재료이다. 생체재료 기작의 근본이 카이랄성으로부터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재료에 카이랄성을 부여하는 것은 재료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과도 같다.

카이랄성을 띠는 재료는 ‘광회전’, ‘원편광 이색성’ 등 독특한 특성도 나타낸다. 원편광 이색성은 재료가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빛과 왼쪽으로 회전하는 빛에 대해 흡수가 다른 현상이다. 생체재료는 특정 방향으로 회전하는 빛을 선택적으로 흡수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이를 활용해 편광제어 광소자, 바이오센서, 광 스위치, 광 저장매체 등의 다양한 분야에 활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카이랄성’을 지니는 분자는 매우 복잡한 화학 구조를 갖고 있으며 재료합성도 매우 복잡하다.

연구팀은 카이랄하지 않은 재료에 카이랄한 특성을 부여하기 위해 물리적 접근에 대한 전략을 새롭게 세웠다. 분자의 자발적인 자기 조립 현상으로 얻어지는 3차원의 나선형 섬유 가닥과 액정 물질 간의 상 분리를 이용, 다공성 매질을 제작했다. 재료 제작을 완료한 최석원 교수 연구팀은 광학재료 물성측정 분야의 권위자인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아라오카 후미토 박사 연구팀과 연계해 광학측정시스템을 확립했다.

이후 연구팀은 제작한 다공성 매질의 나노 크기의 빈 공간에 카이랄하지 않은 액정 물질을 충진해 카이랄한 재료에서나 측정할수 있는 ‘원편광 이색성’ 현상을 관측할 수 있었다. 또 이 다공성 매질을 활용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회전하는 원편광으로 발광하는 현상도 확인했다. 즉, 생명현상이 없는(카이랄하지 않은) 물질을 다공성 매질에 채워 넣어 생명이 있는(카이랄한) 물질로 변환시킨 것이다. 연구팀은 다공성 매질을 원래는 카이랄하지 않은 재료를 단지 다공성 매질에 재료를 충전시키는 것만으로 인공적으로 카이랄한 특성을 발현시킨다는 의미에서 ‘만능 카이랄 매질’이라고 이름 붙였다.

최석원 교수는 “자연계 생체분자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카이랄한 현상을 화학적 방법 없이 물리적 방법으로 재료에 부여해 카이랄한 특성이 있는 재료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라며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이어 “이번 연구에서 제작된 ‘만능 카이랄 매질’에서 발현되는 특이한 광학 현상은 디스플레이의 광소자 및 바이오센서 등의 다양한 분야로 적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기초연구사업(기본연구)과 BK21플러스 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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