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인 낳고 신내림 받아…딸이 잘 벌어도 굿은 해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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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달 28일 ‘진도씻김굿’ 중 한 대목인 ‘손님풀이’를 시연한 송순단 명인.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지난달 28일 ‘진도씻김굿’ 중 한 대목인 ‘손님풀이’를 시연한 송순단 명인.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밤새 해도 부족할 굿인디, 짧은 시간 안에 하라 허니 좀 답답하긴 하요만~.”

‘진도씻김굿’ 전수조교 송순단 명인 #세습무 텃세 넘어 무형문화재 전승 #매달 5~6회 전국 돌며 망자 위한 굿 #코로나 역신 퇴치 ‘쉘위풍류’ 공연 #송가인 “가수 발판은 엄마의 소리”

하얀 고깔에 소복 차림 명인은 웃음기 섞은 인사말로 운을 뗐다. 이어 장구와 아쟁 가락에 얹은 소리가 계곡물처럼 흘렀다. 판소리 같기도, 곡(哭) 같기도 한 음률엔 슬픔보다 진한 먹먹함이 배어났다. 굿이라기보단 한편의 이별가를 듣는 듯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화재재단 창립40주년 기념 특별공연 ‘쉘위풍류’. 경복궁 수문군의 북소리로 시작된 무대가 역신을 물리치는 처용과 함께 달아올랐을 때 송순단(60) 명인이 등장했다. 그가 이날 선사한 것은 진도씻김굿 중 ‘손님풀이’. 천연두나 홍역 같은 역신을 청한 뒤, 해 끼치지 말고 좋게 가라고 축원하는 내용이다. 이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았다. 8분 남짓 울림이 끝나자 자리에 함께한 주한 외국 대사 10여 명 등 430여 관객들이 갈채를 보냈다.

공연 뒤 어머니 송순단 명인을 찾아온 트로트 가수 송가인.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공연 뒤 어머니 송순단 명인을 찾아온 트로트 가수 송가인.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요즘은 ‘미스트롯’ 송가인의 어머니로 더 유명하지만, 나라가 인정한 건 송 명인이 먼저다. 2001년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인간문화재의 전 단계)가 됐다. 1980년 국가무형문화재(제72호)로 지정된 진도씻김굿은 현재 악사 부문 보유자는 있지만, 무가(巫歌) 부문은 송 명인을 포함해 전수조교만 둘이다. 공연에 앞서 만난 송 명인은 “(굿판에 입문하고) 첫 3년은 그냥 하다 이왕이면 남보다 잘하고 싶어 씻김굿보존회에 찾아가 피 나는 고통 끝에 배웠다”고 돌아봤다.

진도씻김굿은 대대로 ‘세습무’(대물림된 무당)가 전승했다. 여기에 강신무(신내림 받은 무당)인 송씨가 찾아왔으니 ‘텃세’가 만만치 않았던 것. 타고난 목청은 인정받았으나 굿거리의 핵심인 사설(가사)을 안 가르쳐주니 애가 탔다. “다행히 선생 한 분(고 이완순 명인)이 받아줬다. 일 있으면 같이 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혼자 익혔다. 처음엔 끼워주지도 않던 이들이 차츰 나를 찾더라.”

진도씻김굿은 작두를 타는 강신무 굿과는 다르다. 불교에서 죽은 사람의 천도(薦度)를 위하여 지내는 제와 성격이 비슷하다. 송 명인은 “조상 앞에 상 차린 기분으로 소리에 열중하고. 영가(망자)들이 감동하길 바라며 (굿을) 한다”고 했다.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씻김굿은 가·무·악 일체의 원형적 예술로서 가장 최근까지 성행한 곳이 진도다. 쟁쟁한 무녀들이 돌아가시고 송 선생 소리가 더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신병을 앓은 건 28세 때. 전남 진도군 지산면의 농부 아내로서 아들 형제, 딸 은심(송가인 본명)을 기르던 중이었다. 3년을 버티다 31세에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 “애들 아빠가 많이 반대했다. 느닷없이 신 받아서 굿하러 다니고 밤새고 오니 오해도 받고. 하지만 안 하면 몸이 아프니까. 결국 이걸로 애들 대학 뒷바라지까지 했다.”

요즘도 매달 5~6차례 의뢰받아 전국을 다닌단다. “엊그제는 묘 이장을 한 집인데, 아들이 폐암 말기더라. 폐암 낫게 해주라고 빌었다. 내 할 바는 다했으니, 좋은 기분으로 치료받으라 일렀다.”

그는 ‘미신’이란 시선을 거부한다. “미신이 아니라, 사람 살아가는 이치라 생각한다. 아픈 사람이 이것저것 해보는데, 굿해서 나은 사람도 실제 있다. 조상한테 좋은 음식 대접하고 새 옷 갈아입고 더 멋진 곳으로 가시라고 비는 거다. 그러면서 마음이 편해진다. 나도 매년 한 차례 사람을 불러 가족을 위한 굿을 한다.” 송 명인은 “딸(송가인)이 돈을 잘 버니까 굿을 안 하는 거 아니냐 묻는데, 내가 필요해 부르는데 안 한다 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실망하겠나. (그래서) 놀 수가 없고 힘닿는 데까지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송가인도 이날 객석에 2시간여 자리했다. 송가인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소리에 익숙했던 게 국악을 전공하고 트로트 가수로 나아간 발판이 됐다”면서 “굿도 우리 전통의 일부다. 현장에서 직접 접할 때 감동이 훨씬 크니 이런 행사를 통해 많은 분이 전통문화로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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