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만삭 위안부 구출 순간 "만세!"···영상으로 보는 그날의 소녀들

중앙일보

입력 2020.05.31 17:55

업데이트 2020.05.31 20:19

“만세”, “만세”  

1944년 9월, 일본군 위안부에서 구출된 한 여성이 이렇게 외쳤다. 앳된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 만삭의 배가 눈에 띈다. 여성은 경계하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지만 금세 환하게 웃는다. 밝고 명랑한 소녀로 돌아간 모습이다.

'만삭의 위안부'로 알려진 고 박영심 할머니(당시 22세). 박 할머니는 1939년 일본군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왔다가 1944년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미중 연합군에 의해 구출됐다.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 영상 캡처]

'만삭의 위안부'로 알려진 고 박영심 할머니(당시 22세). 박 할머니는 1939년 일본군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왔다가 1944년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미중 연합군에 의해 구출됐다.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 영상 캡처]

‘만삭의 위안부’로 알려진 고(故) 박영심 할머니의 구출 당시 상황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미·중 연합군에게 구출되는 장면이 발굴됐다.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된 12분 분량의 영상에서다.

영상 속 박 할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군에게 붙잡히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눈빛에는 적대감이 가득하다.

하지만 중국군 병사로 보이는 남성들이 할머니 옆에서 “만세”를 외치며 즐거워하자 곧바로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는 양팔을 치켜세우고 “만세”를 따라 외쳤다. 표정은 여전히 어리둥절했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번졌다. 박 할머니는 영상 촬영 이후 사산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할머니는 1939년, 17살에 중국 난징 등 전장으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5년간 고통 받았다. 이후 2000년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찍은 사진 속 '만삭' 여성이 자신이라고 밝힌 뒤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박 할머니는 지난 2006년 평양에서 숨을 거뒀다.

 '만삭의 위안부'로 알려진 고 박영심 할머니(당시 22세)가 1944년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미중 연합군에 의해 구출되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 영상 캡처]

'만삭의 위안부'로 알려진 고 박영심 할머니(당시 22세)가 1944년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미중 연합군에 의해 구출되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 영상 캡처]

이 영상에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일본군에 함께 잡혀 있던 위안부 피해 여성들은 힘없이 주저앉았고, 얼굴은 심하게 다쳐 피투성이가 됐고, 눈도 부어서 뜨지 못했다.

그동안 일본군의 만행과 위안부 피해를 알린 자료는 주로 문서나 사진이었다. 박 할머니가 만삭으로 등장한 사진이 대표적이다. 이후에도 관련 문서나 사진의 존재가 밝혀졌지만, 영상은 희귀했다. 지난 2017년 서울대 연구팀이 최초로 발굴한 18초 영상이 전부였다. 당시 영상은 구출된 이후의 상황이었고, 이번 영상에는 구출 과정이 담겼다.

이 영상은 1944년 9월 7일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중 연합군이 중국 서남부 윈난성 쑹산에서 일본군 진지를 함락한 날이다. 촬영자는 미군 사진병이었던 에드워드 페이 병장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민정 기자,
영상=공성룡·여운하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