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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매일 편의점에서 같은 물건 사는 할머니, 왜 그런가 했더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52)

90세 이상 일본 고령자 중 절반이 치매 환자다. 어쩌면 치매는 노화 과정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질병이다. 그렇다면 장수시대에 누구라도 언젠가 치매에 걸린다는 가정에 따라 치매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치매 환자를 수용하고, 치매에 걸려도 활기차고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치매 환자가 사회에 참여하도록 배려하려면 생활환경의 모든 요소를 치매 환자에게 적합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의료와 병간호 지원체제는 물론 공공시설, 교통수단, 쇼핑·식사·외출 등 생활지원 서비스가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역 주민이 주도적으로 치매 대책에 참여하고, 기업·대학· NPO 등 폭넓은 민간사업자의 기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후생노동성은 2019년 3월 미즈호 파이낸셜 그룹, 이온, 오 다큐멘터리 전철 등 대표적인 민간기업과 치매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다양한 산업계의 의견을 반영하고 관민 협력으로 치매 대책을 추진하고자 경제·산업계 등 약 100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치매 관민협의회’를 설립하였다.

도쿄는 마치다 정상회담 개최 이후 지역단체와 기업의 제휴가 활발해졌다. 스타벅스, 은행, 우체국은 지역포괄지원센터와 제휴하여 치매환자를 배려하는 공동대책을 논의하고, 지역사회와 다양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Pixabay]

도쿄는 마치다 정상회담 개최 이후 지역단체와 기업의 제휴가 활발해졌다. 스타벅스, 은행, 우체국은 지역포괄지원센터와 제휴하여 치매환자를 배려하는 공동대책을 논의하고, 지역사회와 다양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Pixabay]

이에 앞서 일부 지자체는 조례 제정, 기업선언서 제정 등 독자적인 치매 대책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민간기업과 제휴해 생활과 밀착된  치매 대책을 추진하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도쿄 마치다시는 ‘치매를 배려하는 마을 만들기’ 대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행정만으로 치매 대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2018년 11월 24일 지역사회의 다양한 관계자가 참여하는 ‘마치다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지역의 기업·의료복지법인·지역단체가 함께 모여 선진적인 치매 대책을 논의하고, 주민들에게 치매에 관한 계몽 활동을 하였다. 치매 당사자가 연사로 나서 치매 현상을 설명하는 강연회와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치매 당사자가 공개석상의 토론회에 참가해 치매 대책과 현상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는 등 매우 이례적인 모임이었다. 복지·병간호사업자·기업(11개)· 철도사업자·카페(스타벅스)·대학·우체국은 저마다 특색 있는 치매 대책 활동을 소개하였다. 남녀노소 무려 400명 이상의 시민이 모여 치매 대책을 논의한 마치다 정상회의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마치다 정상회의가 개최된 이후 지역단체와 기업의 제휴가 활발해졌다. 도쿄 급행 전철㈜ 등 철도사업자와 협정을 체결하고, 치매 환자가 행방불명이 될 때 협력하기로 했다. 스타벅스, 은행, 우체국은 지역포괄지원센터와 제휴해 치매 환자를 배려하는 공동대책을 논의하고, 지역사회와 다양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후쿠오카현 오무타시는 2003년부터 지역사회 다수의 주민과 단체가 참여하는 ‘치매 SOS 네트워크 모의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치매 환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가정에 따라 지역사회 SOS 네트워크를 활용해 통보·수색·발견 및 보호까지 실험하고 검증하는 훈련이다. 주로 치매 고령자의 안전과 SOS 네트워크가 효과적으로 기능할지 모의 훈련 수색을 통해 검증한다. 치매 고령자 배역을 맡은 사람이 걸어가는 동선과 시간은 네트워크 협력단체와 주민에게 알리지 않는다. 가족이 전달한 본인 정보가 확실히 네트워크에 전달되었는지, 정보전달방법과 경로는 적절한지, 협력단체와 주민의 참여와 관심도는 충분한지, 발견·보호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등을 검증하고 개선하려는 대책이다.

모의훈련은 초등학교 단위의 사무국에서 주관한다. 사무국 산하의 모의훈련 운영추진 회의에는 주민, 행정, 지역 포괄 케어 센터, 병간호사업자로 구성되어 있다. 한 번의 훈련에 병간호사업자, 지역단체, 상점, 주민 등 약 3000명이 참여한다. 매년 대규모의 주민이 참여하기 때문에 치매에 대한 계몽 활동과 치매 대책을 추진하는데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다.

훈련 후에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반성회와 교류회를 개최하고 네트워크의 과제와 개선점을 검토한다. 무엇보다 모의훈련은 그 준비단계부터 실행, 피드백 과정을 통해 주민이 치매를 더욱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모의훈련 후에 치매 환자의 행동(배회)을 이해하려는 시민이 많이 늘어났다.

예를 들면 간호인업소 주변에 있는 편의점 사장은 치매 고령자 S씨가 매일 똑같은 상품을 사러 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이 모의훈련의 영향으로 그 치매 환자의 행동을 깊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늦게 서야 S씨는 먼저 죽은 아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사러 온다는 것을 알았다. 편의점 사장은 S씨의 자식 사랑에 감명을 받고 항상 그 물건이 떨어지지 않도록 배치해두었다. 치매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치매 환자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 배경을 알면 치매 행동을 더욱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적절한 사례다.

모의훈련은 행방불명된 치매 고령자를 빨리 찾는 것보다 주민들이 참여활동을 통해 치매 환자와 함께 살아간다는 사고를 갖도록 한다. 배회를 방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안심하고 배회할 수 있도록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지역사회의 어디에서도 돌봐주는 사람이 많고, 안심하고 배회할 수 있는 거리는 범죄도 적기 때문에 자녀들의 안전한 생활에도 기여하고 있다.

교토는 어느 지자체보다 선진적인 치매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교토에는 ‘치매 환자와 그 가족 모임’ 본부가 있다. 2017년에 국제 알츠하이머병협회의 국제회의가 개최된 지역이다. 교토는 2018년 교토식 ‘오렌지 플랜’을 수립해 적극적인 치매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치매 대책에는 수치 목표와 더불어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이 바라는 사회 모습을 구체적인 성과로 제시하고 있다. 매년 치매 환자와 그 가족, 지원단체와 함께 치매 대책의 진척현황과 성과를 확인하고 있다.

교토는 이미 2013년부터 지역의 기업과 협력체제를 구축해왔다. 치매에 관한 기업 공동 선언 책정에 앞장서고, 치매 서포터 강좌, 고령자 응대 교육을 하는 기업을 “교토 고령자 안심 서포터 기업”으로 등록하고 있다. 2019년까지 2800개의 기업이 등록했다. 초기에는 대기업이 많았지만, 최근 소규모 점포도 참여하고 있다. 치매 환자가 일상적으로 자주 찾는 소매점도 직원의 치매 교육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쿄토는 이미 지역의 기업과 협력체제를 구축해왔다. 치매에 관한 기업공동 선언 책정에 앞장서고, 치매서포터 강좌, 고령자 응대교육을 실시하는 기업을 ’쿄토 고령자 안심 서포터 기업“으로 등록하고 있다. [사진 Pixabay]

쿄토는 이미 지역의 기업과 협력체제를 구축해왔다. 치매에 관한 기업공동 선언 책정에 앞장서고, 치매서포터 강좌, 고령자 응대교육을 실시하는 기업을 ’쿄토 고령자 안심 서포터 기업“으로 등록하고 있다. [사진 Pixabay]

지금까지 행정은 주로 의료·복지·병간호 관계자와 치매 대책을 논의하고 추진해왔지만,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이 지역에서 활기차고 자기답게 계속 살아가려면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기업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등록제도는 기업이 가능한 범위에서 고객에 대한 안부 서비스, 사회에 치매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 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참여기업도 고령자와 치매 환자를 지킨다는 의식이 커지고 있다. 치매 환자가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인생을 자기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 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교토는 2019년부터 ‘업종 간 연대협의회’를 설치하고 치매 관련 서비스 형태에 관한 각 산업과 업종에 공통되는 지침이 되는 기업 공동선언을 마련하였다. 기업 공동선언이란 초고령 시대에 치매 환자가 모든 업종의 서비스를 얼마나 이용하는지 고려하고, 기업이 치매 환자를 배려한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제공할 때 공통기준을 말한다. 영국은 이미 민간기업이 주도하여 업종 특유의 서비스와 관행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헌장을 마련하였다.

현재 고령자와 치매 환자에게 친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계의 18개 기업이 협의회에 참가하고 있다. 정보통신·운송·소매·금융, 부동산, 경비 업종에서 고령자를 지원하고 치매 대책에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적극적인 기업들이다. 실제로 병간호와 복지사업에 진입한 택시회사, 고령자 주택 건설에 관심이 많은 부동산회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교토의 소비자단체(NPO), 일본 의사결정 지원기구, 교토의과대학도 정책 조언자로서 이 협의회에 참가하고 있다.

또한 기업들은 구체적인 치매 대책 서비스 개발에 착수했다. 현재 치매 환자의 고민해결과 사기 피해 대책과 같은 안부 서비스가 많지만, 앞으로 기업은 치매 환자가 ‘이전과 동일한 생활을 지원하는 서비스’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협의회는 참여 기업의 독자적인 서비스 개발은 물론, 다른 업종 간 팀을 구성한 서비스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렇게 관민이 협력하여 치매 대책을 추진하는 지자체는 아직 많지 않다. 치매 환자를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모든 생활영역에서 광범위한 대책을 추진해야 하므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미 민간사업자와 함께 선구적인 치매 대책을 추진하는 지자체는 힘든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매우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일부 지자체의 선진적이고 우수한 치매 대책 사례가 전국으로 전파되면서 더 많은 지자체가 초고령사회의 심각한 과제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커리어넷 커리어 전직개발 연구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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