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묘소 옮긴 후 대통령 당선된 DJ···'이장' 핫플레이스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5.31 05:00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6일 낮 전남 영광군 법성면 고향 마을 인근에서 부모 묘소 이장을 마친 뒤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6일 낮 전남 영광군 법성면 고향 마을 인근에서 부모 묘소 이장을 마친 뒤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은 죽어도 땅은 영원한 법. 땅을 차지한 자 세상을 차지할 것이다.”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흥선대원군의 혈투를 다룬 영화 ‘명당’에 나오는 대사다. 실제로 흥선대원군은 충남 예산 가야사 터가 ‘왕을 내는 자리’라는 말을 믿고 아버지 묘를 이장할 정도로 풍수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예로부터 조상의 묘소를 이장하는 일은 불효로 여겨졌다. ‘자는 이의 잠자리를 옮기는 격’으로 비유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선대원군뿐 아니라 권력을 위해 부모 묘를 이장하는 사례는 현대에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6일 이낙연 민주당 코로나19국난위원장이 부모 묘소를 이장했다. 이 위원장은 묘지로 사용할 수 없는 형제의 밭(전남 영광군 법성면)에 묘소를 모셔 농지법·장사법을 위반했다. 영광군은 100만원 과태료를 부과하고 토지 원상복구를 요구했다. 이 위원장은 “최근 불법이란 사실을 알았다. 서둘러 이장할 것”이라며 의도하지 않은 이장이라는 취지의 설명을 하고 인근으로 묘소를 옮겼다. 하지만 여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의 부모 묘소 이장은 역대 대선주자들의 사례와 함께 주목받고 있다.

‘신선이 내려오는 터’ 이장 후 대권 잡은 DJ

15대 대선 다음 날인 1997년 12월 19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운데)가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왼쪽에서 둘째)와 함께 중앙선관위가 전달한 대통령 당선증을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왼쪽부터 JP의 부인인 박영옥 여사, JP, DJ, 이희호 여사, 박태준 자민련 총재. [중앙포토]

15대 대선 다음 날인 1997년 12월 19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운데)가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왼쪽에서 둘째)와 함께 중앙선관위가 전달한 대통령 당선증을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왼쪽부터 JP의 부인인 박영옥 여사, JP, DJ, 이희호 여사, 박태준 자민련 총재. [중앙포토]

이장으로 ‘덕’을 본 대표적 케이스는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DJ는 제7대(1971년), 제13대(1987년), 제14대(1992년) 대선에서 실패한 후 네 번째 도전 전 1995년 부모 묘소를 이장했다.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는 아버지 묘와 경기도 포천 천주교공원묘지에 있던 어머니 묘를 경기도 용인시 묘봉리산에 합장했다.

자리는 유명한 지관이던 육관 손석우씨가 정했다. 손 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곳을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오는 천선하강형(天仙下降形) 명당”이라고 소개했다. 이장 후 DJ는 거처도 33년간 살았던 동교동을 떠나 경기도 일산으로 옮겼다. 그 후 그는 제15대(1998년) 대선에서 당선됐다. DJ의 ‘성공’ 후 정치권에는 풍수 바람이 불었다.

이장을 가장 많이 한 인물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이 전 총재는 제16대(2002년) 대선에서 낙선 후 2004년 충남 예산군 예산읍 신양면 산성리에 있던 부친의 묘를 신양면 녹문리 야산으로 옮겼다. 당시 풍수지리 연구자 사이에서 이곳은 ‘제왕이 태어날 지세’, ‘선비가 앉아서 책을 보는 지세’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2007년에는 신양면 산성리에 있던 조부·증조·고조 등 직계조상 묘 10기를 명당으로 알려진 인근 산으로 옮겼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제17대(2007년) 대선에서 그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한다.

이 전 총재는 2010년 또 다시 부모 묘를 개장한 뒤 유골을 화장한다. 화장된 유골은 합장했던 묫자리 근처에 수목장을 했다. 이 전 총재의 세 번째 이장에 풍수지리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2012년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지만 제17대(2007년)를 마지막으로 대권 도전을 멈추며 ‘국회의원 선거 전승, 대통령 선거 전패’ 기록을 마무리했다.

충남 예산은 ‘이장’ 핫플레이스  

충남 예산군 예산읍 신양면에 이장한 인물은 이 전 총재뿐이 아니다. ‘대통령 빼고 다해본 사람’이란 별명을 가진 고(故)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대권 도전 실패 후 2001년 선친의 묘를 신양면 하천리로 옮겼다. 같은 해 민주당 내에서 유력한 차기 주자로 인정받던 한화갑 당시 민주당 대표도 전남 목포에 있던 선영의 묘를 신양면으로 옮겼다. 이 전 총재를 비롯한 세 사람의 선영은 신양면 소재지를 중심으로 반경 5㎞ 안에 모두 있다.

충남 예산은 흥선대원군이 이장을 위해 선택한 곳이기도 하다. 전통 풍수학계에는 왕의 기운이 서린 ‘자미원국(紫微垣局)’이라는 명당이 가야사 터 인근 어디쯤에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이 전 총재의 선영 등을 모두 다녀봤다는 한 풍수가는 "제왕을 낳는 하늘의 기운이 비춰진 명당을 자미원국이라고 한다"며 "하지만 주변의 인물과 백성을 섬기지 못하는 심성을 지닌 사람에게는 강력한 천지의 기운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번 대권 도전했던 이인제 전 의원은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당시 후보에게 패한 후인 2004년 충남 논산 연산면 모친 묘를 200여m 떨어진 곳으로 이장했다. 이후 제17대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지난 2016년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부친의 묘를 서울 도봉구 우이동에서 경남 함양군 유림면으로 옮겨 대선 도전이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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