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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발해도 '홍콩 사망선고'···시진핑 세게 나가게한 美 약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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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사실상의 사망 선고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인대 회의에서 홍콩보안법 투표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인대 회의에서 홍콩보안법 투표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자유무역의 상징, 홍콩은 죽었다. 28일 중국은 ‘홍콩판 국가보안법’을 압도적 지지로 통과시켰다.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全人大) 제3차 전체회의 폐막 자리에서다. 2885명의 전인대 위원 중 2878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반대 1명, 기권은 6명이었다. 찬성률 99.76%다.

28일 중국은 베이징에서 열린 전인대 회의에서 압도적 찬성률로 홍콩보안법을 통과시켰다. [AP=연합뉴스]

28일 중국은 베이징에서 열린 전인대 회의에서 압도적 찬성률로 홍콩보안법을 통과시켰다. [AP=연합뉴스]

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홍콩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예방, 단속 처벌하겠다는 거다. 중요한 건 홍콩보안법 제정 권한을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갖는다는 점이다. 중국이 직접 홍콩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규정하고 처벌 방식도 정한다는 거다.

28일 홍콩의 한 쇼핑몰에서 홍콩 독립이란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가 스마트폰 불빛을 비추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AFP=연합뉴스]

28일 홍콩의 한 쇼핑몰에서 홍콩 독립이란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가 스마트폰 불빛을 비추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AFP=연합뉴스]

이는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인 항인치항(港人治港), 대륙과 홍콩 두 체제의 공존인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이 유명무실해 진다는 걸 의미한다. 쉽게 말해 홍콩은 중국의 여느 도시와 다를 게 없게 됐다. 홍콩에 사실상의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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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앞으로다. 중국은 ‘돈줄 창구’를 잃을 수 있다. 홍콩은 아시아에서의 특별한 지위를 보유했다. 중국 대륙과 서방의 가교 말이다. 지역은 중국, 체제는 자본주의인 점을 활용해 냉전 시절 중국이 서방의 돈을 받는 창구로 자리했다. 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에도 이는 유지됐다.

다국적 로펌 클리퍼드 챈스 소속의 이석준 변호사는 “해외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면서도 위안을 가진 건 상당수 계약이 홍콩에서 이뤄지고, 중국 당국도 홍콩 사법시스템 결정을 따른 것에 기인했다”며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시스템을 바꾸지 않은 채 해외 투자자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홍콩이 이 역할을 절묘하게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28일 홍콩의 한 쇼핑몰에서 홍콩 독립을 지지하는 여성 2명이 미국 국기와 트럼프 대통령을 그린 포스터를 들고 서 있다.[AFP=연합뉴스]

28일 홍콩의 한 쇼핑몰에서 홍콩 독립을 지지하는 여성 2명이 미국 국기와 트럼프 대통령을 그린 포스터를 들고 서 있다.[AFP=연합뉴스]

미국은 홍콩의 기능을 중요하게 여긴 대표적 나라 중 하나다. 홍콩을 중국과 별개인 세계 금융 중심지로 여겼다. 무역, 관세, 투자상 혜택을 제공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부터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그랬다. 중국 기업에 제재를 가해도 홍콩은 뺐다.

지난 2010~2018년 이뤄진 중국 기업의 해외 기업공개(IPO) 73%는 홍콩에서 이뤄졌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홍콩을 통해 중국 주식을 매입하면 낮은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어 홍콩 증시를 통해 중국 기업 주식을 많이 샀다. 중국은 홍콩을 국제금융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는 통로로 철저히 활용했다.

발끈한 트럼프 "홍콩 특별지위 박탈하겠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고 홍콩에 대한 모든 특별대우를 폐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고 홍콩에 대한 모든 특별대우를 폐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관세 및 무비자 입국을 포한한 홍콩에 대한 모든 특별대우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에 반발해 홍콩에 준 특별 지위를 없애겠다고 공개 선언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 물품에 적용한 관세가 홍콩산에도 같이 적용된다. 홍콩법인으로 미국과 유리한 거래를 해 온 중국 기업엔 큰 타격이다. 이석준 변호사는 “중국의 돈 창구인 홍콩이 어려워지면 중국에도 큰 손해이기 때문에 미국이 이 같은 수단을 쓰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문제는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이 미국에도 손해라는 점이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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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홍콩에 중국보다 낮은 관세를 매긴다. 그런데 홍콩은 미국산 수입품에 아예 무관세다. 덕분에 홍콩은 미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다. 미국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와인을 많이 수출하는 곳이 홍콩이다. 소고기는 4위, 농산물도 7위 수출 지역이다. 연간 양측 무역액만 670억 달러(82조 9700억 원) 규모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의 홍콩 직접투자 금액은 825억 달러(102조 1300억 원)다. 홍콩의 특별지위가 박탈되면, 미국의 무역수지 역시 손해를 입는다는 얘기다. 여기에 홍콩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1300개 미국 기업도 곤란해진다.

미국의 속내를 알고 있나. 중국도 자신만만하다. 

 지난 22일 정협에 나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신화=연합뉴스]

지난 22일 정협에 나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신화=연합뉴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8일 "미국의 제재 수단은 매우 제한적이고 미국이 중국을 겁박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강조했다. 환구시보도 "우리는 미국의 기고만장한 기세에 맞서 점점 더 심적인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며 "장기적인 대응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했다.

"어차피 미국은 우리를 계속 압박할 것이다. 그럴 바엔 보안법으로 홍콩을 제대로 붙잡아 놓고, 장기항전을 벌이는 게 낫다."

지난 28일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 전광판에서 중국 전인대 회의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8일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 전광판에서 중국 전인대 회의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이게 시진핑의 속내다. '홍콩의 죽음'으로 돈줄이 끊기더라도 홍콩 사안만큼은 이번에 확실히 정리하겠다는 뜻이다. 미·중 충돌은 더 극렬해질 것이 뻔하다.

지난 27일 홍콩보안법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홍콩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AP=연합뉴스]

지난 27일 홍콩보안법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홍콩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AP=연합뉴스]

이래저래 홍콩엔 암울한 미래다. 미국이 특별지위를 없애지 않더라도 중국 정부의 입김이 강해진 홍콩에 해외 기업들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서방과 중국을 잇는 가교 역할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28일 홍콩에서 한 여성이 홍콩 증권거래소 주가지수가 표시된 전광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AP=연합뉴스]

28일 홍콩에서 한 여성이 홍콩 증권거래소 주가지수가 표시된 전광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AP=연합뉴스]

씁쓸하게도 누군가의 불행이 다른 누구에겐 기회다. 미국 싱크탱크 해리티지재단 창립자인 에드윈 퓰러 박사는 28일 “미국이나 유럽에 본사를 둔 기업인들은 홍콩을 대체할 아시아의 (금융) 허브 대안을 찾는 것 같다”며 “홍콩에서 싱가포르나 태국으로 옮기겠다는 회사도 있고 도쿄나 서울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이번 사건을 엄중하면서도 매섭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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