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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 빠졌던 대구 시민, 불편한 감정의 ‘기능’ 살피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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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8호 22면

[대한명상의학회와 함께하는 코로나 명상] 팬데믹 전화 상담

코로나 사태 직격탄을 맞은 대구는 지난 2월 중순 이후 3개월 이상 침묵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감염자가 계속 나온 달서구 소재 한 아파트는 통째로 격리됐다. [사진 대구광역시 의사회]

코로나 사태 직격탄을 맞은 대구는 지난 2월 중순 이후 3개월 이상 침묵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감염자가 계속 나온 달서구 소재 한 아파트는 통째로 격리됐다. [사진 대구광역시 의사회]

필자는 대구에 사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다. 올해 초 대구의 겨울과 봄은 유난히 길었다. 대구는 2월 18일 31번째 환자가 확진되고 나서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버렸다. 2월을 지나 3월을 거치는 동안 연일 확진자가 600~700명에 이르렀다. 대구와 인근 경북지역이 전체 누적확진자의 거의 90%를 차지할 정도였으니, 전염병의 창궐이 거의 공황의 수준에 다다랐다.

온갖 불편한 감정들도 생존에 필요 #불안감의 기능 설명하니 “그러네요” #눈을 감고 심호흡하면 몸이 이완 #스트레스 반응에서 벗어나게 돼 #다른 생각, 다른 것에 집중하면 #이전의 생각들은 자연히 소멸돼

낮인데도 도로 위 차량이나 행인은 현저히 줄었고 버스는 노선을 따라가지만 승객은 보이지 않았다. 상당수 가게는 아예 열지도 않았으며 퇴근 시간만 지나면 대구 전체가 침묵과 어둠에 빠져들었다. 그 위를 앰뷸런스들이 고요를 깨우며 수도 없이 질주한다. 누군가의 가족이 실려 가고 있다. 나도 언제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 두려움, 공포는 대구 시민 전부를 숨죽이게 하였다.

죄책감 등 털고 스스로 안정 찾게 도와

경북대병원 음압 중환자실에서의 중증 환자 진료. [사진 대구광역시]

경북대병원 음압 중환자실에서의 중증 환자 진료. [사진 대구광역시]

대구에서는 장례가 있어도 오라고 하지 않았고, 안가도 허물이 되지 않았다. 수천 명의 환자를 위해 대형병원 하나가 통째로 제공되고, 모든 의료 인프라가 몰려드는 환자들을 위해 준비되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경증자를 위한 생활치료시설을 여러 개 급조했다. 중증환자는 전국의 음압시설을 갖춘 병원으로 긴급 후송했다. 판단은 빨랐고 행동은 민첩했다. 전선에 투입되는 장병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사투를 벌인 의료진,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 시민, 궂은일을 도맡아 헌신한 자원봉사자와 공무원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지원과 지지를 보내준 국민이 없었다면, 아직도 대구는 소리 없는 아귀의 세상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5월 20일 기준으로 대구의 집계를 보면 전체 누적확진자의 62%, 사망자의 69%이다. 4월 8일 확진자가 9명으로 줄어든 이래 한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고 신규 확진자가 0명인 날도 제법 많아 이제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확진자 수의 작은 변화에도 마음을 쓸어 내려야 한다.

감염병 재난의 특성상 심리상담은 허가된 사람만 전화로 진행한다. 대구시는 정신건강전문요원 총 106명으로 구성된 통합심리지원단을 꾸려 감염자와 그 가족들에게 24시간 상담을 제공하였다. 전화 상담에서 필자는 마인드풀니스 기반의 여러 명상 기법을 치료에 활용했다.

3.1절 오후인데 번화가인 동성로 일대가 한산하다. [뉴스1]

3.1절 오후인데 번화가인 동성로 일대가 한산하다. [뉴스1]

마인드풀니스 기반의 심리치료에서는 치료자 자신의 마음부터 먼저 돌볼 것을 권고한다. 전화 전에 내가 먼저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의 편안함이 내가 상담하는 이에게도 전달되기를 소망했다.

“힘드시죠, 어떠신가요?” 낯선 목소리에도 금방 힘든 감정을 털어놓는다. 며칠 동안 혼자 지내다 보니 조금의 위로에도 감정이 왈칵 쏟아지는 모양이다. 감염 상황에 대한 이야기, 자신이 감염을 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이야기 등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 불안, 분노, 죄책감, 두려움, 우울의 감정이었다.

“힘드신 데도, 참 잘하고 계시네요” 불편한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여쭈어 보면, 의외로 잘하고 계신 분이 많다. 명상에서는 부족한 것은 채우고 넘치면 내려놓도록 가르친다. 재난 상황에서는 한정적인 자원으로 많은 분에게 도움을 드려야 하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스스로를 어느 정도 관리하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잘하고 있으면 그냥 놔두면 된다. “저보다 낫습니다.” 이렇게 잘하고 계시다는 확신만 드려도 매우 만족해한다.

확진자를 병원으로 실어 나르는 차량. [연합뉴스]

확진자를 병원으로 실어 나르는 차량. [연합뉴스]

“많이 힘들어하시는군요.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알려드릴 테니 한번 해 보실래요.” 재난 상황에서는 가능하면 스스로 자신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 감염병 재난의 경우 직접 만날 수 없으니 더더욱 필요하다. 대부분은 솔깃해한다. 명상에서는 모든 감정을 그저 바라보도록 안내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명상을 모른다. 지금 휘몰아치는 감정의 바다에 빠져 헤엄치는 법도 모르는 사람에게 평형을 하라, 자유형을 하라 훈수를 둘 수가 없다. 제일 먼저 힘들어하는 감정의 본래 기능을 설명하고 지금은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차근히 설명한다.

인간에게 긍정적인 감정은 ‘기쁨’ 단 하나만 있을 뿐이다. 불편한 감정들이 훨씬 더 많다. ‘기쁨’은 생활에 필요하지만, 온갖 불편한 감정들은 생존에 필요하다. 불편한 감정들은 다가왔거나 다가오거나 다가올지도 모르는 위험에서 주인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이라는 얘기다. 그게 불편한 감정들의 본래 목적이다. 그러니 주인이 안전해질 때 까지 이 감정들은 마냥 쉴 수가 없다. 사실 고마운 일이다. 불편한 감정에 고맙다고 하라 하니 헛웃음을 치지만, 이내 “듣고 보니, 그러네요” 한다.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 것 같으면 뇌 과학을 동원해서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하여 설명을 더 한다. 기대의 수준을 낮추지 않으면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불안은 쫓아내는 게 아니고 나와 같이 있으면서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이제 저와 같이, 30초 정도만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해 볼까요? 누우셔도 되고 앉으셔도 됩니다. 가장 편한 자세를 하세요.” “무엇을 느끼셨나요” 명상에서는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 자신의 몸을 대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우리 뇌는 스트레스를 감지하면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고 몸을 스트레스에 맞서 싸우게 한다. 신경이 곤두서면서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호흡을 가쁘게 하며, 입이 마르고 밥맛을 떨어뜨리며, 잠을 안 재운다. 모두 스트레스와 관련된 자율신경계의 작동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몸은 호흡을 통하여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는 방법을 마련해 두었다. 눈을 감으면 뇌 대사가 급격히 줄면서 상당량의 에너지기 축적되기 때문에 금방 피곤이 풀리는 느낌을 준다. 또한 자율신경계가 안정되므로 스트레스 반응에서 벗어나게 된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것은 불안 반응의 해독제이다. 몸이 이완되는 것이다.

눈 감고 심호흡 땐 자율신경계 안정

대구가톨릭대병원의 확진자 병동 상황실에서 모니터링과 회의하는 장면.

대구가톨릭대병원의 확진자 병동 상황실에서 모니터링과 회의하는 장면.

“조금 전에는 몸을 이완했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이완하는 방법을 같이 해 볼게요. 조금 전처럼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쉬면서 호흡을 가장 잘 느끼는 부위를 하나 정하세요. 호흡을 한번 느껴 보세요. 생각이 올라와 방해한다 싶으면 크게 호흡을 하고 다시 느낌으로 돌아가 보세요.” 명상에서는 생각도 바라보라고 안내한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우리 뇌는 생각 또한 예민하고 부정적으로 바뀌어 좋지 않은 상황을 자꾸 제시하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이에 대비하도록 강제한다.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괴롭다고 하면서도 그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뇌는 절대 쉬지 않는다. 자극이 주어지면 이에 우선하여 반응하다가, 자극이 들어오지 않으면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일이나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고 해결하도록 강요한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으면 생각에 빠지는 시간이 많아진다. 다행히 뇌는 하나에만 집중하는 특성이 있어 다른 생각으로 옮기거나 다른 것에 집중하면 자연히 이전의 생각은 소멸하게 된다. 호흡명상은 자신의 주의와 자각을 현재 감각에 두게 하여 괴로운 생각이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감정의 바다에 빠진 사람에게 호흡명상은 쉽지 않다.

호흡명상이 어려운 분에게는 다른 방법을 안내한다. “전화 받기 전 무엇을 하셨나요. 그것을 할 때는 힘든 생각이 어떠했나요. 별로 없었다고요. 그럼 그것을 진짜 열심히 해 보세요” 마인드풀니스 기반의 치료법 중에 특히 감정조절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집중 개발된 ‘다이어렉티컬 행동치료’는 감정 위기의 순간을 탈출하는 여러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하는 생각이 안 떠오르도록 애쓰지 말고 자신이 즐겁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그것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도록 권고한다. 감정의 위기는 폭풍과 같아서 몰아치고 나면 조용해지기 때문이다.

생활치료시설에서 퇴원하셨다는 콜센터 근무자와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유쾌한 목소리로 네명이 확진되어 모두 같은 날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살아 돌아왔다고 축하해주고 케이크도 잘랐다면서 즐거워하였다. 바로 이것이구나 싶다. 급성 감염이 종료되어도 심리적 후유증은 오래 지속된다. 지금은 감염자에 대한 배려와 차별 없는 수용이 필요한 시기이다. 명상에서는 인류 보편성의 자애로운 마음으로 모든 존재를 감싸 안도록 가르친다.

원승희 경북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한명상의학회 이사. 경북대병원Wee센터 센터장. 대구학생자살예방센터 센터장. 경북대병원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 센터장. 대구광역시 정신건강복지지원단 단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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