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포르투갈의 마지막 밤, 아쉬움에 눈물까지

중앙일보

입력 2020.05.29 13: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43)

어떤 순간이 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도 마치 지금인 듯 생생히 떠오르는 그런 순간. 포르투갈길 도보 순례를 하면서 폰테데리마(Ponte de Lima)를 마주했던 그 오후의 때가 그랬다.

태초의 세상이라고 느껴졌던 산꼭대기의 수만 년 전 빙하 호수를 바라봤던 날처럼, 지구 밖 행성에 도착한 거라고 상상했던 사암 계곡만큼이나 햇살이 떨어져 조각조각 황금빛으로 반짝이던 강물을 잊을 수 없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중세도시라고는 해도 기억하면 가슴이 찌릿할 만한 특별한 무엇은 없는 곳이었는데도 그렇다. 폰테데리마는 내 몸속 어딘가에 기억되어 있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폰테데리마. [사진 박재희]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폰테데리마. [사진 박재희]

리마 강 위의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답게 강도 다리도 아름답다.

리마 강 위의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답게 강도 다리도 아름답다.

폰테데리마가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하는데 언제든, 어디서든, 어느 종목이든 ‘최고’를 붙이는 경쟁의 논란은 어찌나 흔한지. 이웃한 바르셀로스(Barcelos)도 가장 오래된 도시임을 주장해 다툰다.

리마 강 위의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답게 강도 다리도 아름답다. 로마시대 서기 1세기에 처음 놓인 다리를 1369년에 다시 지었다는데 길이가 300m, 폭은 4m가 넘어 21세기의 규모에도 밀리지 않는다. 수천 년 전 양방향으로 마차가 지나기에도 충분했을 것이다. 도시에는 바로크 양식의 대저택이 많아 상가와 숙박시설로 쓴다.

넉넉하고 풍요로운 느낌의 도시, 매몰차거나 배척하는 기운이 없는 따스한 거리를 사람들은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 특별할 것이라고 없던 가을 오후였는데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포르투갈길 도보 순례를 하면서 폰테 데 리마(Ponte de Lima)를 마주했던 그 오후를 잊을 수가 없다.

포르투갈길 도보 순례를 하면서 폰테 데 리마(Ponte de Lima)를 마주했던 그 오후를 잊을 수가 없다.

넉넉하고 풍요로운 느낌의 도시, 따스한 거리를 사람들은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

넉넉하고 풍요로운 느낌의 도시, 따스한 거리를 사람들은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

“오늘은 와인을 마셔야 해. 이 지역 비노 베르데(Vinho Verde)라는 와인이 유명하거든.”

포르투갈 북부지역 특산 와인은 싱그럽고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와인 시음은 주요한 여행 프로그램으로도 자리 잡았다고 한다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가 와인을 마시지 않은 날이 있던가? 도보 순례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와인을 마셔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비가 와서, 비가 오지 않고 화창해서, 유난히 힘이 들어서, 각별히 수월하게 지난 하루를 축복하려고, 누구의 생일이라서, 심지어 그 누구의 생일도 아니라서 순례자들은 ‘순례자의 피’ 와인을 마신다.

오늘은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와인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였다. 비노 베르데가 어떤 맛이었냐고? ‘첫 맛에 미네랄이 너무 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귤 맛이 느껴졌다’라고 그날 일기에 멋 부려 적혀있다. 우리는 첫 잔 이후 다른 지역의 평범한 와인을 마시며 취했다고도.

도보순례 23일차에 폰테데리마에서 루비아에스(Rubiaes)까지 18km를 걸었다. 20km가 안 되는 비교적 짧은 거리지만 산을 하나 넘는 코스라 ‘쉽지 않은 날’로 분류된다. 아름다운 강변 마을에서 하루 쉴까 했는데 다음 날 비 예보가 있다. ‘화창한 오늘 산을 오른다’ 아니면 ‘며칠 이 마을에서 쉰다’ 사이에서 고민이 이어졌다. 퇴실 마감 시간에 청소하시는 분들이 들어와 겨우 일어났다.

지난 이틀 무리했는데 바로 산을 넘는 코스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마음이 오락가락 몸도 뒤뚱 그럴 때는 해결방안은 단연코 하나다. 일단 먹기. 아침 먹을 카페를 찾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리앙을 만났다.

“텅 빈 신발장에 딱 한 켤레가 남아있었어요. 나보다 더 늦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위안을 주더라고요.”

도보순례 중 만난 줄리앙은 자기가 꼴찌일 거라고, 모든 사람이 다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신발장에 진정한 꼴찌의 신발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걱정되어 기다렸다고 햇다.

도보순례 중 만난 줄리앙은 자기가 꼴찌일 거라고, 모든 사람이 다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신발장에 진정한 꼴찌의 신발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걱정되어 기다렸다고 햇다.

뒤뚱 어그적 거리는 폼이 딱 내 상태와 비슷해 보이는 줄리앙은 연이틀 70km를 걸었다고 했다. 자기가 꼴찌일 거라고, 모든 사람이 다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신발장에 진정한 꼴찌의 신발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이 걱정되어 기다렸다는 것이다.

“내일은 비가 온대요. 오늘 산을 넘어야죠. 저랑 함께 천천히 가요!”

뮌헨에서 왔다는 스물한 살 청년은 자기보다 더 느리고 힘들어한다는 이유로 나를 찜했다. 자신도 힘이 드는데 오히려 내 힘이 필요한 사람을 찾고, 기다려주는 마음의 작동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 필요할 때는 그 필요한 그것이 나타나는 것만큼 까미노의 신비다. 까미노에서는 그렇다. 그러므로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줄리앙과 나는 그날 하나의 원칙에 합의했다. ‘카페가 나타날 때마다 들어가서 쉬고 간다.’ 종일 쉬는 것처럼 걸었다. 본격적으로 산길이 나오기 전까지 카페가 나오는 곳마다 들어가 쉬고 무언가 먹었다. 해발 405m의 언덕이면 북한산의 반도 되지 않는 높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거의 제로 지점에서 시작되는 오르막은 만만치 않고 의외로 숲은 깊다. 알토다포르텔라(Alto da Portela)에 올라 포르투갈길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루비아에스 타운 표지가 보이는 길목에 알베르게가 나타났다. 여기서 쉬자는 나와 2km쯤 더 걸어서 무료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숙소로 가자는 줄리앙이 쉽게 합의할 수 없던 지점이다.

“여기서 일단 커피 마시며 쉬고 걸을 수 있으면 함께 가요.”

라타와 함께 커피와 와인을 마셨더니 내 몸 천근은 만근이 되어버렸다. 무릎과 발목이 아프다면서도 내게 속도를 맞추고 끌어주며 내내 보호자를 자처해준 줄리앙이었지만 더이상 함께하기는 불가능했다.

루비아에스에서 16km를 조금 넘게 걸어온 지점 발렌까(Valenca)에서.

루비아에스에서 16km를 조금 넘게 걸어온 지점 발렌까(Valenca)에서.

“너랑 끝까지 같이 가고 싶은데 난 오늘 도저히 더 못 가겠어.”

순례길이 아니었다면 그의 예산에 벗어나는 10유로쯤 내가 보태며 쉬자고 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럴 수 없다. 자기 몸에 맞게, 자기 예산에 맞춰서 걷는 길이니까.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해 무리를 하거나 무리 제안하거나 누구에게 맞추면 후회가 남을 테니까 아쉬워도 헤어지는 것이 좋다. 거푸 뒤돌아보며 줄리앙이 떠났다. 힘들고 아픈 날 함께한 친구라서일까? 단 하루를 함께 보냈는데 헤어짐이 짜르르 쓰리다.

줄리앙을 보내고 나는 13유로의 사치를 누리기로 했다. 8유로짜리 숙소에서 세탁과 건조에 5유로를 쓰는 것을 사치라고? 순례길에서는 그렇게 기준이 다르다. 관광객 모드로 여행하면서 유명 맛집에서 저녁 한 끼 식사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60유로를 내는 사람도 순례자가 되니 5유로에도 10유로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사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다음 날의 루트는 포르투갈을 떠나 스페인 Tui(뚜이)에 입성하는 것이었다. 한 달 전, 똥 많고 개 많고 온통 시멘트 길이라고 그렇게 불평을 했으면서, 게다가 리스본에서는 소매치기 도둑에게 모든 현금과 여권까지 몽땅 털리는 사고를 겪었건만 이제 포르투갈을 떠나기가 아쉽다. 이토록 아쉬울 줄은 몰랐다. 포르투갈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나려 하는데 그 아쉬움을 어찌 그냥 덮을까. 강을 넘지 않았다. 루비아에스에서 16km를 조금 넘게 걸어온 지점 발렌까(Valenca)에서 가방을 내리며 도보순례 24일차를 마감한다.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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