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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어르신 삐질 땐 곤란" 5000명 이발봉사한 ‘가위손 경찰’

중앙일보

입력 2020.05.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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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어르신들 머리를 깎아드리며 말벗이 되기도 하고, 보이스피싱 예방법도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지구대 생활 특성상 야간 밤샘 근무가 잦아 몸은 피곤하지만, 어르신을 찾아뵙고 오면 오히려 엔도르핀이 솟아납니다. 이게 제 삶을 지탱시키는 힘입니다”

경기 안양 만안경찰서 김광희 경위
매달 경로당 찾아 이발사로 변신
말 벗하며 보이스피싱 예방법도 설명
2007년에 이용기술 배워 자격증 취득

경기 안양만안경찰서 김광희 경위

경기 안양만안경찰서 김광희 경위

14년간 독거 어르신과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이발 봉사를 해 온 ‘가위손 경찰관’ 김광희(56) 경위의 말이다. 경기 안양만안경찰서 박달지구대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그는, 매월 2~4차례 지역 내 경로당을 찾아 이발사로 변신한다. 그동안 만난 어르신만 5000명이 넘는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홀로 사는 어르신이 대부분이다.

김 경위는 “어르신마다 원하는 머리 스타일도 다르고, 이발 후 머리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삐지기도 해 곤란할 때도 있다”며 “그래도 어르신들 사이에선 제법 잘 자른다는 소문이 나, 옆 동네에서 찾아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경대원 120명 머리도 깎아주다 자격증까지 땄다” 

김 경위가 이발 가위를 처음 들게 된 건 서울 관악경찰서에 근무하던 2007년이다. 의경대원 관리 업무를 맡은 그는 집 떠나 군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안쓰러워 보여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은 생각에 이발을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김 경위는 “대원들의 여자 친구 얘기, 집안 얘기를 듣고 조언해 주며 그들이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며 “1년간 의경 120명의 ‘헤어스타일’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머리를 더 예쁘게 깎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발사(이용사) 자격증에도 도전했다”며 “석 달간 퇴근 후에 학원에 다니며 열심히 배웠는데, 다행히 손재주가 있었는지 한 번에 붙었다”고 덧붙였다. 머리 깎는 솜씨는 가족들도 인정한다. 김 경위는 “아내 헤어스타일도, 다 큰 아들(22세)·딸(28세) 머리도 직접 잘라준다”며 “그런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도 있듯, 난 이발소에 가서 깎는다”며 웃어 보였다.

김광희 경위가 지난 1월 안양시 만안구 박달1동 협신경로당을 방문하여 어르신에게 이발을 해주는 모습. [사진 김광희]

김광희 경위가 지난 1월 안양시 만안구 박달1동 협신경로당을 방문하여 어르신에게 이발을 해주는 모습. [사진 김광희]

2010년 안양만안경찰서로 근무지를 옮긴 뒤에도 가위를 놓지 않고 지역 경로당이나 중증장애인을 찾아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김 경위는 “거동을 못 하는 중증장애인의 덥수룩한 머리를 솜씨를 발휘해 깎아 드렸다. 머리 자르는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하니 화내고 짜증을 내셔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며 “하지만 자주 찾아뵙고 돌봐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찾다 보니 이제는 제법 친해져 눈빛만으로도 원하는 머리 스타일을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3년 전부터는 지구대 직원 4~5명과 경로당 청소봉사도 하고 있다. 김 경위는 그간의 지역사회 봉사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1월에는 경기도지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최근엔 지역 내 보이스피싱 피해가 커지자, 머리 손질하는 시간을 이용해 어르신들에게 보이스피싱 예방법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김 경위는 “검찰·은행에서 오는 전화는 끊으라고 말씀드린다”며 “일단 모르는 번호는 전화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한번은 할아버지 한 분이 검찰청에서 온 전화를 받고 바로 끊어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두 달 넘게 어르신들 못 봐…어서 뵙고 싶다”

이젠 경로당 어르신도 ‘가위손 경찰관’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를 기다리는 손님(?)은 한 번에 10~15명 가량. 김 경위는 “지난해까지 4년 동안 매달 꼬박 저를 찾아오시던 어르신이 갑자기 안 오셨는데 마을 노인회장에게 암 투병 중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며 “제가 그 분의 마지막 이발사였을 거란 생각을 하니 책임감을 되새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퇴직이 4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퇴직한 뒤에도 힘닿는 데까지 어르신들을 찾아 이발 봉사를 계속하고 싶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코로나19로 경로당이 문을 닫아 두 달 넘게 어르신들을 못 뵙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잘 계시려나, 어서 뵙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김유민 기자 kim.yoo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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