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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성호의 현문우답

PC게임 매니어 원제스님 깨달음 “한 사람의 영웅 시대 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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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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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의 선원은 폐쇄적이다 #당송 시대 선어록 법문만 고집해 #밥 먹고 똥 싸는 게 진리 아닌가 #자기 일상 드러낼 때 소통도 가능

경북 김천의 수도산은 해발 1317m다. 수도산 봉우리에서 네 줄기의 곡(谷)이 떨어져 만나는 자리에 법당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수도암의 대적광전이다. 수도암은 신라 도선국사 때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수도암의 선방은 해발 950m에 위치해 있다. 지난해 문을 연 평창 오대산의 상왕선원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선원이다.

경북 김천 시내에서 차를 타고 1시간 가량 수도산으로 들어가면 수도암이 있다. 수도암은 해발 950m에 있다.

경북 김천 시내에서 차를 타고 1시간 가량 수도산으로 들어가면 수도암이 있다. 수도암은 해발 950m에 있다.

20일 서울에서 3시간30분 차를 달렸다. 신록으로 온 산이 출렁이는 수도암으로 갔다. 코로나19로 인해 조계종은 올해 부처님오신날 봉축 행사를 한 달 늦추어 5월 30일에 연다. 마침 음력으로 윤달이 있어 명분도 있다. 부처님오신날 봉축을 앞두고 수도암에서 원제(41) 스님을 만났다. 그에게 젊은 수행승이 바라보는 ‘불교의 앞날’을 물었다.

그동안 제방선원에서 20안거를 났다. 동안거와 하안거, 1년에 여섯 달씩, 꼬박 10년이다. 무엇을 느꼈나.
“저는 기본적으로 선원 수좌다. 선원에 속한 입장에서 과감하게 이야기해 보겠다. 지금 한국 불교의 선원은 폐쇄적이다. ‘이 공부를 끝내기 전에는 외부 활동도 하지 않고, 법도 펴지 않고, 수행자로서만 살겠다’고 생각하는 수행자도 많다. 좋게 말하면 겸손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저는 달리 본다.”
어떻게 달리 보나.
“큰스님들이 하시는 법문도 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최상승(最上乘) 법문이다. 깨달은 이들만 알아듣는 법문이다. 일반인들이 ‘탁!’  이해하고 알아먹기는 힘들다. 게다가 법문 내용의 대부분이 당ㆍ송 시대 선사들의 선어록이다. 이런 방식이 후학을 배려한 간절한 염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졌다. 요즘은 그런 말로 제도하고 가르치기 힘든 세상이 아닌가.”
그럼 어찌해야 하나.
“저는 아는 만큼, 깨달은 만큼 나누어야 한다고 본다. 이건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선사들은 말한다. ‘밥 먹고 똥 싸는 게 진리다.’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의 일상을 매개로 소통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큰 스님들께서 법에 대한 이야기는 다 하는데, 자신의 삶은 안 드러낸다. 그걸 드러내는 분은 무척 드물다.”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게 왜 중요한가.
“사람 사는 모습이 다 진리니까. 그걸 스스로 확신한다면 두려울 게 없다. 우리는 승(僧)과 속(俗)을 나누고, 출가자와 재가자를 나누지 않나.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나. 그런데 그 둘이 서로 소통하려면 ‘각자의 삶’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다고 본다.”
원제 스님은 어떤가. 자신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사나.
“저는 숨기지 않는다. PC게임을 즐기는 것도 책에다 다 썼고, 세계일주 다녀온 이야기도 다 한다. 어떤 도반은 제게 ‘스님이 게임 하는 게 부끄럽지 않나?’라고 묻더라. 저는 부끄럽지 않다. 출가한 수행자이지만, 저는 다 드러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경험’은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이다. 각자의 일상을 드러낼 때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 그렇게 드러내는 우리의 일상 속에 이미 진리의 면면이 다 들어가 있다. 밥 먹고 똥 싸는 게 진리라고 하지 않나.”

원제 스님은 PC게임 매니어다. 특히 ‘문명’이란 게임을 즐긴다. 인도 타지마할, 페루 마추픽추, 중국 자금성, 이집트 피라미드 등 60개에 달하는 세계 문명이 게임에 등장한다. 원제 스님은 출가해 선방에서 6년간 수행할 때였다. 당시 수행의 진도는 생각처럼 팍팍 나가지 않았다. 하안거가 끝난 2012년 가을에 그는 세계 일주를 떠났다. 답답한 마음을 털기 위함이었다. 2년간 5대륙 45개국을 돌아다녔다. 15달러 이하의 숙소에서만 자면서 고생도 많이 했다.

당시 원제 스님은 게임에 등장하는 문명의 현장을 찾아가 게임 동호회에 탐방기를 올렸다. 현장과 경험과 사색을 녹인 글이었다. 동호회에선 호평이 쏟아졌다. 결국 글 쓰는 특별 코너를 하나 받았다. 원제 스님은 거기서 청년들과 소통하고 있다. 네이버의 게임카페 ‘문명 메트로폴리스’에서 그의 닉네임은 ‘몽크 원제’다. 원제 스님은 “이제는 신화가 아니라 일상을 중심에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왜 신화가 아니라 일상인가.
“과거에는 한 사람의 영웅이 있었다. 최고의 지도자가 있었다. 다들 그 영웅을 본받고 따르고자 했다. 지금 시대는 프레임이 바뀌었다. ‘권력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평등의 프레임’으로 변했다. 이제는 모두, 각자, 하나 하나가 영웅이다. 이게 불법(佛法)의 원래 모습과도 맞다. 누군가를 선망하고, 누군가를 따라서 그 사람처럼 사는 게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고, 내가 나로써 온전히 사는 것이다. 그게 인간의 존재 방식이자, 수행의 귀향점이라고 본다. 한국 불교도 이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 이제는 신화가 아니라 일상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부처님오신날이다. ‘부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대학(서강대 종교학과) 2학년 때 불교를 처음 만났다. 저는 부처님이 처음부터 사람처럼 느껴졌다. 깨달은 분이라기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다가왔다. ‘아, 이 사람. 거짓말 안 하는구나!’ 그렇게 진정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왜냐하면 저도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결국 병든 사자만이 수행을 하더라. 삶의 아픔을 아는 사람들. 삶의 고통을 자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수도암(김천)=글·사진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대학 시절 원제 스님의 꿈은 출가자 아닌 소설가

 원제 스님은 서강대 종교학과 00학번이다. 삼수를 한 끝에 대학생이 됐다. 대학 2학년 때 종교학계 석학으로 꼽히는 길희성 교수의 수업을 들었다. 과목명은  ‘불교의 이해’. 그 수업을 들으면서 그는 불교를 처음 접하게 됐다. 수업은 그에게 별이 됐다. 삶의 방향성을 어디에 둘지 방황하던 그에게 일종의 북극성이 됐다.

3학년 때는 가톨릭 예수회 소속인 서명원 신부의 수업을 들었다. 과목명은 ‘참선과 삶’. 프랑스계 캐나다 사람인 서 신부는 가톨릭 신부이면서도 한국 불교의 간화선 수행에 대한 조예가 깊은 인물이다. 27년 넘게 몸소 화두 참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서 신부의 수업에서 처음 참선을 배웠다.

사실 대학 시절 원제 스님의 꿈은 출가자가 아니었다. 소설가였다. 실력이 탄탄한 문인들과 동인 활동까지 하며 소설가 등단을 꿈꾸던 문학도였다. 그런 그가 서 신부의 ‘참선과 삶’이란 수업을 듣고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 수업을 듣고 집에 가서 좌선을 했다. 난생 처음이었다. 그런데 무려 3시간 동안 혼자 앉아 있었다.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다. 그런데 ‘아, 여기에 뭔가 있긴 있구나’ . 그건 알겠더라.”

그건 결정적 계기였다. 그는 삶의 방향을 틀었다. 등단의 가능성이 높다며 촉망받던 문학도는 동인에서 절필을 선언했다. 그리고 머리를 깎고 출가의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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