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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가 운전의 핵심될 것” 제주에서 '자율주행 쏘카' 움직이는 라이드플럭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쏘카-라이드플럭스가 제주국제공항 인근에서 운행하는 자율주행 셔틀. 사진 라이드플럭스

쏘카-라이드플럭스가 제주국제공항 인근에서 운행하는 자율주행 셔틀. 사진 라이드플럭스

승용차가 천천히 제주공항을 벗어났다. 깜빡이를 넣고 차선을 바꿔 시내로 진입한 뒤 몇 번의 횡단보도와 교차로를 지났다. 돌아오는 길엔 유턴도 했다. 지난 27일 탑승한 ‘제주공항-쏘카 스테이션’ 왕복 셔틀은 일반 승용차와 다를 게 없었다. 운전석의 핸들과 레버가 스스로 움직였다는 것만 빼면.

자율주행 기술 기업 라이드플럭스와 차량공유 업체 쏘카가 지난 18일부터 제주시에서 운영 중인 완전자율주행 셔틀 얘기다. 제주공항에서 쏘카 이용객을 태우고 다른 차량과 섞여 일반 도로를 달리고 있다. 쏘카 차량을 픽업할 장소까지 왕복 5km 구간이다.

라이드플럭스 자율주행차량

라이드플럭스 자율주행차량

박중희(35) 라이드플럭스 대표를 제주시 노형동 회사 차고지에서 만났다. 그는 “자율주행은 운전자의 일자리를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업(業)의 정의를 바꾸는 기술”이라고 했다.

왜 이 구간에서 시작했나?
차량이 많고 이면도로·교차로 등이 있어 난이도 있는 구간이다. 이런 다양한 상황을 겪어야 기술 수준이 높아진다. 시험 운행을 포함해 총 2000번 주행했다. 차에 블랙박스 8개를 달아 분석했다.
2000회 주행에서 뭘 배웠나.
현실과 기술의 조화랄까. 공항을 나오자마자 차선을 연속 변경해야 하는데, 제한 속도 30㎞를 우리 차만 지키더라. 규정 속도를 유지하면서 다른 차의 양보를 받고 차선을 바꾸는 걸 차량이 학습했다.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차도 피해야 한다.
사람이 무섭겠다.
자율주행차는 규칙을 지킨다. 안 지키는 건 사람이다. 그래서 예측 기술이 중요하다. 저기 섰는 사람이 건널지 멈출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만드는 정밀 지도에는 ‘무단횡단 잦은 곳’, ‘차들이 우회전하려고 나란히 서는 곳’ 같은 정보도 담긴다.
자율주행 스타트업 라이드플럭스 박중희 대표. 사진 라이드플럭스

자율주행 스타트업 라이드플럭스 박중희 대표. 사진 라이드플럭스

국내 법은 무인 자율주행을 허용하지 않는다. 라이드플럭스 차량 앞자리에는 전문 교육을 받은 안전 감독관 2명이 탄다. 만일의 위급 상황에 즉시 ‘직접 운전’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기술이 더 발달하면 1명이 맡거나, 1명이 여러 대를 원격 제어할 수 있다. 굳이 인건비를 들여가며 자율주행을 왜 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 하다. 박 대표는 “자율주행은 운전자를 없애는 게 아니라, 운전의 정의를 바꾼다”고 말했다.

자율주행 시대 운전의 핵심은 뭔가 
책임감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방심한다. 우버와 테슬라의 부분자율주행 차량이 사고를 낸 적 있는데,  탑승했던 운전자의 딴 짓 때문이었다. 빨리 가고 길을 잘 아는 능력이 아니라, 안이해지는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주의 의무를 다하는 높은 윤리의식이 요구된다.

라이드플럭스는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기계공학 박사인 박 대표와 윤호 서울대 기계항공공학 박사가 지난 2018년 창업했다. 머신러닝ㆍ로보틱스ㆍ항법ㆍ제어 등을 전공한 박사들이 주축이며 직원은 30명. 박 대표의 MIT 시절 지도교수이자 ‘앱티브’ 기술 부문 사장인 칼 이아그네마 박사가 기술 자문을 해 준다. 앱티브는 웨이모, GM에 이은 세계 3위 자율주행 기술 업체로 지난 3월 현대차와 미국에서 합작법인을 세웠다. 쏘카는 라이드플럭스에 초기 투자했고 자율주행 분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다.

부분자율주행과 완전자율주행은 뭐가 다른가
목적 자체가 다르다. 부분자율주행차는 대부분 자기 소유다. 운전자가 그걸 타고 어디든 가야 하기 때문에, 범용성이 중요하다. 반면 완전자율주행차는 운전자가 주행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차량이 특정한 지역을 완벽하게 이해한 채 운행한다. 구글의 자율주행업체 웨이모도 미국 피닉스에서 600대만 운행하고 있다.
왜 제주에서 하나
첫째는 환경이다. 섬 안에서 해안, 산악, 평지 같은 다양한 교통 환경과 기후 변화를 압축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 둘째는 서비스다. 연간 1500만 명의 관광객이, 대부분 차 없이 들어와 잘 모르는 도로를 운행하는 곳이 제주다. 자율주행차가 유용한 환경이다. 셋째로, 안전이다. 제주에 렌터카 사고 비율이 높은데,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도로에 자율주행차만 달린다면 규칙 위반이 없어 교통사고가 사라질 거다.
지자체와의 합이 중요하겠다
웨이모 본사가 캘리포니아에 있는데 운행은 아리조나주 피닉스에서 하는 이유가 그거다. 아리조나 주 정부가 가장 잘 협조해줘서다. 우리는 제주에서 서비스 지역을 넓히고, 더 큰 차종으로도 운행하려고 한다.
쏘카와는 왜 협력하나
완전자율주행이 확산되면 개인이 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다. 기술이 탑재된 차량의 단가도 비싸다보니, 필요할 때만 쓰는 게 합리적이다. 그래서 웨이모가 승차공유업체 리프트와 협력하듯, 전세계적으로 차량공유와 자율주행 기술은 같이 간다.

제주=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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