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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와 위안부 다르다" 이용수 할머니가 지적한 차이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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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근로)정신대 문제에 위안부 피해자를 이용해 모금 운동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 할머니는 “공장 갔던 할머니(근로정신대)는 공장에서 일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데가 다르다”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를 맡았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위안부 피해자를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정신대와 위안부의 차이점을 그래픽으로 짚어봤다.

[그래픽텔링]

#차이점 1. 성 착취 vs 노동 착취

위안부는 일본군의 성욕 해결, 성병 예방 등을 위해 일본 정부가 일본군 점령지나 주둔지 등의 위안소에 배치한 여성을 뜻한다. 성 착취를 당한 위안부의 본질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최근에는 ‘성노예’, ‘일본군 성노예’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근로정신대는 일본과 국내의 군수 공장 등에 강제 취역했던 조선의 여성들로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차이점 2. 등장 시기

위안부 피해자는 1930년대 초반부터 발생했다. 일본군이 여성들을 동원해 설치한 시설물을 ‘위안소’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32년 전후였다. 당시 위안소에 수용된 여성을 ‘예기(藝妓)·작부(酌婦)’라 불렀다. 이어 매음부·기녀 등으로 명칭이 다양해졌다가 ‘위안부’라는 말로 수렴됐다. 문서상으로는 1939년부터 위안부로 명시되기 시작했다.

근로정신대는 1940년대부터 강제 동원되기 시작했다. 일본정부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조선 남성의 노동력을 착취하다 이마저도 부족하자 여성들까지 징용하면서 등장했다. 문서상으로는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이 제정되면서 ‘여자근로정신대’로 불리기 시작했다.

#혼용 이유

근로정신대는 노동력의 동원이라는 점에서 성적 착취가 이뤄진 일본군 위안부와는 다르지만 사실 근로정신대라고 모집해 놓고 위안부로 끌려가거나 성착취를 당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 때문에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용어가 혼용돼 사용되기도 했다.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증언하기 전까지 근로정신대라는 용어가 위안부보다 더 일반적으로 사용됐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박문각
전문가 조언: 부산일제강제동원역사관 박철규 관장

글=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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