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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살려주세요"···평범했던 그들은 왜 10·26에 가담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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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ㆍ26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단독 범행이 아니었다. 여기엔 김 전 부장의 수행비서였던 박흥주 대령을 비롯해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 안가 경비원 이기주ㆍ김태원, 의전과장의 차량을 운전한 유성옥 등 중정 직원들도 참여했다. 그런데 1심 재판에서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사건 당일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계획을 모른 채 평범한 일상을 보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발굴! 그때 그 목소리, 10ㆍ26 ⑤

박흥주 대령은 사건 당일 오전 “큰 애가 사명당 연극하는데 선조대왕으로 뽑혔다고 해서 면류관을 하나 만들어주고 출근을 한 다음에 못봤다”고 진술했다. 사건이 일어날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의 핵심 요직에 있으면서도 성동구 행당동의 산동네에 거주하는 의외의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데가 굉장히 높은 산꼭대기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차가 못 들어가는 높은 위치”라고 답한 뒤 “평상시 생활이 결백했느냐를 알고 싶어서 물어봤다”는 변호인의 추가 질문엔 “그것을 이 자리에서 밝히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견의 주인공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과 박흥주 중장부장 비서실상 등이 사형판결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견의 주인공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과 박흥주 중장부장 비서실상 등이 사형판결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또 박선호 의전과장의 차량을 운전했던 유성옥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청첩장을 돌렸다. 이미 부인과 아들 둘을 둔 그는 미처 올리지 못한 늦은 결혼식을 약 20일 뒤인 11월 13일 치를 계획이었다.

그렇게 평범했던 이들은 왜 엄청난 범죄에 가담했을까. 이들은 육군사관학교, 해병대, 육군 부사관 등 모두가 군 출신으로 김재규 전 부장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다고 한다. 박선호 과장이 김 전 부장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과 차지철 전 경호실장을 암살하겠다는 계획을 들은 건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40분 전이었다. 박선호 전 과장은 법정 진술에서 “해병대 생활을 통해서 그렇게 체험했고 아직까지 상관의 명령에 불복해본 일도 없고 그 배신같은 거 해본 적도 없다”며 “김(재규) 부장님을 모셨다는 것을 첫째 영광으로 생각하고, 지금 또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도 저는 그 길 밖에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답했다.

10.26사태를 재연하고 있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왼쪽)과 박흥주 대령 [중앙포토]

10.26사태를 재연하고 있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왼쪽)과 박흥주 대령 [중앙포토]

김 전 부장도 이 때문에 괴로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법정 진술에서 “이 사람들은 무슨 어떤 이념이나 혹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행한 것이 아니라 졸지에 그냥 명령에 의해서 그냥 동원된 것”이라며 “이 시퍼렇게 젊은 친구들 제발 죽이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사형을 언도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편 김 전 부장은 부인 김영희씨에게 부하직원 자녀들의 학업 문제를 책임져 달라고 당부했고, 김씨는 물심양면 이를 지원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발굴! 그때 그 목소리, 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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