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금지법 이어 넷플릭스법···"20대 국회 막판까지 고춧가루"

중앙일보

입력 2020.05.27 06:31

"황당하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분명 '국내 망 비용 비싸다'고 지적하지 않았나. 그런데 망 비용을 아예 못 낮추는 법을 통과시켰다. 네이버·통신3사 같은 대기업에 유리한 법들만 통과됐다."

이른바 '넷플릭스 규제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한 국내 스타트업의 하소연이다. 개정안엔 포털·소셜미디어(SNS)·동영상업체 등 부가통신사업자에게 '서비스 안정성'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내용이 담겼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콘텐트 사업자(CP)는 매년 통신사 등 인터넷 사업자(ISP)에 수백억원의 인터넷 접속료를 지불하는데, 구글·넷플릭스 등 해외CP는 무임승차한다는 역차별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2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8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8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스타트업계는 허탈해하는 분위기다. 거대CP와 거대ISP의 역차별 프레임에 밀려, 해외보다 2~8배 비싼 국내 인터넷 접속료 문제는 손도 대지 못했다. 중소CP가 부담하기 힘든 금액이 어떻게 산정되는지도 따져보지 못했다. '통신사가 요구하는 망 사용료를 내더라도 산정 기준은 알고 내고 싶다'는 것은 인터넷업계의 오랜 요구였다. 영국 IT시장 조사기관 텔레지오그래피에 따르면 서울의 인터넷 접속료는 프랑스 파리보다 8배, 미국 뉴욕보다 5배 비싸다.사단법인 오픈넷 박경신 이사는 "가정용 초고속인터넷은 비교적 저렴하지만, 기업용 전용회선료가 너무 비싸 평균 비용이 높아진 탓"이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국감에 출석했던 박태훈 왓챠 대표는 "4K 영상을 서비스할 준비가 끝났지만 막대한 망 비용 때문에 (스타트업으로선)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아프리카TV가 2017년 통신사들에 지불한 인터넷 접속료는 약 150억원으로 알려져있다. 같은 해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183억원이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 회의록. 사진 국회회의록

지난해 10월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 회의록. 사진 국회회의록

지난해 10월 발의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노웅래 의원 대표발의)은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방통위에 망 비용 실태조사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20대 국회가 '합의 가능한 부분'만 추리는 과정에서 이 부분은 슬그머니 빠졌다.

세계 인터넷 접속료 비교. 그래픽=신재민 기자

세계 인터넷 접속료 비교. 그래픽=신재민 기자

스타트업들은 불안하다. 통과된 법안에 망 안정성 부담을 져야하는 CP에 대한 명확한 적용 기준이 없어서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부가통신사업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한 서비스 안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 전부다.

정부와 ISP 측은 "중소CP는 망 안정성 의무 적용 대상이 아니다", "스타트업과의 상생을 중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타트업 업계는 냉소적이다. "말로만 끝날 수 있어 믿기 어렵다(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고 한다. 중소CP도 부가통신사업자이니 '대통령령'에 따르면 언제든지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단 것이다.

의심이 깊을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악성 댓글(악플)을 막자는 취지로 시행한 '인터넷 실명제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법은 2007년 도입 당시 '하루 방문자 30만명 이상인 사이트' 37곳에만 적용됐지만, 2년 뒤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 범위를 '하루 방문자 10만명 이상인 사이트'로 확대하면서 180곳에 적용됐다. 국내 중소CP들도 규제 대상이 된 것. 정작 페이스북·트위터 등 해외 SNS는 이 법의 무풍지대에 있었다. 결국 2012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후 해당 법은 폐기됐다.

지난달 10일 차고지에 멈춰있는 타다 차량 1500대. 연합뉴스

지난달 10일 차고지에 멈춰있는 타다 차량 1500대. 연합뉴스

벤처기업협회는 지난 12일 '규제입법 졸속처리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통신사란 기득권의 지대 요구에 입법부·행정부가 동조한다면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과 벤처기업의 의욕은 좌절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스타트업 업계는 지난 3월 20대 국회에서 통과된 '타다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도 '스타트업의 혁신 시도가 가로막힌 상징'으로 기억한다.

개정된 법은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지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지난 두 달 새 통과된 '타다금지법'과 '넷플릭스법'이 혁신창업국가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타트업들이 묻고 있다.

김정민 산업기획팀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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