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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과외 뛰는 변호사들 "서초동 로펌출신, 1시간 20만원"

중앙일보

입력

로스쿨 학생이 답안 작성을 연습하는 모습. 박지영 인턴

로스쿨 학생이 답안 작성을 연습하는 모습. 박지영 인턴

“안정적인 점수로 합격했고, 서초동 로펌 근무경력 있습니다. 합격의 지름길을 알려드립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연락해주세요.”

현직 변호사들이 로스쿨 학생을 대상으로 과외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로스쿨 학생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변호사가 올린 과외 모집 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과외 종류도 다양하다. 변호사 시험(변시) 합격을 위한 답안지 첨삭, 형사소송법 등 특정 과목 과외, 로스쿨 내신 성적 관리 위한 과외 등이다.

변호사시험 성적표 캡쳐해 올리기도

'대한민국 로스쿨 취업 박람회' 모습. 중앙포토

'대한민국 로스쿨 취업 박람회' 모습. 중앙포토

서울대 법대를 나온 A변호사(변시7회)는 “2018년에 처음 과외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경쟁자들이 별로 없었는데 몇 년 사이 경쟁자들이 늘어난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했다. A변호사는 현재 대기업 법무팀에 근무하면서 과외를 병행하고 있다.

학생을 모집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서울대 법대 출신’ ‘SKY 로스쿨 출신’ ‘서초동 로펌 근무’ ‘사시 2차 경험 있음’ 등 학력·이력을 상세히 늘어놓고 학생을 모집한다. 변호사들이 올린 글을 살펴보면 ‘805점을 받아 불합격했던 학생이 과외받고 925점으로 합격했다’ ‘내가 쓴 합격노트를 직접 보여주겠다’ 등의 내용이 있다. 일부는 변호사 시험 성적표를 캡쳐해 올리기도 한다. 우수한 성적을 어필하기 위해서다. ‘연락을 주면 변호사 자격증과 성적표를 인증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가격은 시간당 10만~20만원대다. 로스쿨 3학년 김모(27)씨는 “이력에 따라 가격대가 크게 다른 것 같진 않지만, 아무래도 서울대·서초동 로펌 출신이라고 하면 더 끌리는 게 사실”이라며 “서울대는 자신 있게 출신학교를 밝히고 나머지는 ‘인서울 미니’ ‘지거국 로스쿨’ 등으로 뭉뚱그려 표시한다”고 전했다.

“변호사 늘고, 변시 합격률은 떨어져”

2020년도 제9회 변호사시험이 실시된 1월 8일 오전 한 응시생이 고사장인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도 제9회 변호사시험이 실시된 1월 8일 오전 한 응시생이 고사장인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변호사들은 “과외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법학적성시험(LEET) 과외나 변호사시험 학원은 로스쿨 도입 초창기부터 활성화됐지만, 변호사들이 로스쿨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과외가 활발해진 건 최근 일이라고 한다.

A변호사는 “과외는 부업일 뿐”이라면서도 “로스쿨 도입 후 변호사 시험 합격률도 낮아지고, 변호사들의 공급도 늘어 시장이 포화되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게 아니겠냐”고 했다.

서울권 대형 로스쿨 출신 B변호사는 “1년에 10건 정도 과외를 하고 있다”며 “사법시험 시절엔 독학하거나 일부만 학원을 갔는데 요즘은 수험생들이 학원이나 인터넷강의는 필수로 생각하고 과외까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엔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변호사시험 학원에서 채점 위원 등을 하는 동료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등록 변호사 수 3만명 넘어”

2015년 이후로 법원에 접수된 사건의 건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9 사법연감 캡쳐]

2015년 이후로 법원에 접수된 사건의 건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9 사법연감 캡쳐]

실제 최근 변시 합격률은 50% 내외다. 지난 4월 발표된 2020년 제9회 변호사 시험의 합격률은 53.3%로, 2019년과 2018년엔 각각 50.78%, 49.35%였다. 변호사 시험 응시생 중 절반은 합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로스쿨이 도입된 후 변호사는 매년 약 1500~1600명씩 배출되고 있다. 지난 3월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한 변호사 수는 3만명을 넘어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소송 건수는 점점 줄어드는데 변호사 수는 너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법원행정처가 발행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법원에 접수된 사건 건수는 2015년 약 2060만 건에서 꾸준히 감소해 2018년 약 1765만 건이다.

“확대해석 금물” “로스쿨생 부담 줄여야”

로스쿨 재학생의 책상. 박지영 인턴

로스쿨 재학생의 책상. 박지영 인턴

변시 과외 시장 두고 확대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형사법 기록형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고범준 변호사(변시 5회)는 “변호사들의 사정이 어려운 건 아니고, 변시 합격률이 낮아지면서 과외를 찾는 학생들이 늘어나니까 이 시장에 뛰는 변호사도 많아지는 것뿐”이라며 “공무원시험, 행정고시 등 모든 시험에는 사교육 시장에 있듯 변시 과외 시장이 특이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외가 등장한 건 학생들의 부담이 크다는 뜻”이라며 “시험의 합격률을 총 지원자의 70%로 늘리고, 조문이나 판례까지 다 외워야 하는 선택형 과목은 없애거나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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