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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공장? 이제 안해" 시진핑의 '자력갱생' 전략 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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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공장? 까짓 거 안 해. 우리끼리 잘 살 수 있어."

지난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제13기 제3차 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발언을 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지난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제13기 제3차 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발언을 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지난주 인민들에게 이렇게 선언한 거나 다름없다. 23일 참석한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 전국위원회 제13기 제3차 회의 경제계 위원 연석회의에서 “내수가 중국 경제의 살길”이라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론 이렇게 말했다. 시 주석은 이날 “중국은 세계 경제 불황, 국제 금융 시장의 파동, 일부 국가의 보호주의와 일방주의, 지정학적 정치 리스크 상승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다”라고 했다. 여기서 일부 국가는 사실상 미국이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화한 미국의 위협에 중국 경제가 어려움을 맞고 있다는 걸 시 주석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중요한 건 시 주석이 꺼낸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다. 그의 다음 발언이다.

중국은 내수가 지배하는 경제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내수를 출발점이자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지난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제13기 제3차 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발언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제13기 제3차 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발언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신화통신도 이날 "중국은 14억 명 이상의 인구가 거대 내수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며 시 주석 발언에 힘을 실었다.

격세지감이다. 그동안 중국을 키운 건 팔 할, 아니 그 이상이 수출이다.

지난달 중국 허베이성 한단시의 한 유모차 공장에서 직원이 조립 공정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지난달 중국 허베이성 한단시의 한 유모차 공장에서 직원이 조립 공정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했지만, 서방보다 시장도 자본도, 인프라도 일천(日淺)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속된 말로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노동력을 밑천 삼아 수출 시장에 뛰어든다.

10년쯤 지나 기회가 찾아왔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90년대다. 세계가 ‘자본주의’로 대동단결했다. 글로벌리즘(세계화) 물결이 밀려닥쳤다. ‘분업화’, ‘아웃소싱’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몸을 던진다. 초저임금 노동력을 무기로 전 세계의 하청 주문을 닥치는 대로 받아들였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2001년엔 미국의 용인하에 세계무역기구(WTO)까지 가입한다. ‘제도권’ 시장에서 제대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의 공장’ 지위도 이때 확립됐다. 이후 경제는 쾌속 질주, 2008년 올림픽까지 개최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런 중국의 선택을 '위대한 국제순환 전략(great international circulation strategy)’ 이라고 평가했다. 1990년대에 이 전략을 채택한 덕분에 중국이 세계 2위 경제 대국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26일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 앞에서 시민과 의료진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AFP=연합뉴스]

26일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 앞에서 시민과 의료진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AFP=연합뉴스]

그런데 최근 국제 환경이 변했다. 코로나19 효과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웠다. 특히 중국 경제는 2~3월 정부의 강제 셧다운 여파로 반세기 만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1분기에 기록했다. 중국이 멈추자 글로벌 기업도 휘청거렸다. 전 세계가 중국에 올인하는 건 위험하다고 여기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 미국 볼티모어에서 열린 메모리얼데이 추념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 미국 볼티모어에서 열린 메모리얼데이 추념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가속화된 미국의 적대적 공세는 더 강해졌다. 미국은 중국에 수출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타협은 없다. 무소의 뿔처럼 간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이렇기에 시진핑의 ‘내수 중심’ 발언은 그동안의 성공 방정식을 포기하면서까지 ‘제 갈 길’을 가겠다는 뜻이다. 레이먼드 융 ANZ은행 중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전략 변화는 코로나19 때문에 향후 2~3년간 세계 수요가 회복되지 못할 것이란 우려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후싱더우 베이징공대 경제학과 교수도 “중국은 미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더 나아가 서방국 전체와의 디커플링을 포함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신화망 캡처]

[신화망 캡처]

‘내수’ 키우기. 중국의 새로운 목표는 아니다. 중국 정부는 오랫동안 내수를 중국 경제의 중심에 두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수출로 돈을 벌던 경제 구조를 단번에 바꾸기 쉽지 않았다.

중국은 향후 미국과의 경제협력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신시대 서부대개발’을 추진해 그 난관을 돌파하려 한다. 사진은 중국 윈난성에서 이뤄지는 댐 건설 사업. [인민망 캡처]

중국은 향후 미국과의 경제협력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신시대 서부대개발’을 추진해 그 난관을 돌파하려 한다. 사진은 중국 윈난성에서 이뤄지는 댐 건설 사업. [인민망 캡처]

최근 전략은 크게 두 축이다. ‘서부 대개발’이 하나다. 낙후된 서부지역에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해 수출 감소로 동부 연안 지방 산업계가 받는 피해를 상쇄하겠다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중산층이 만드는 소비시장이다. 황췬후이 중국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장 연구팀은 최근 “5억~7억 명에 달하는 탄탄한 중산층이 향후 5년간 중국 경제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바탕으로 5G, AI 등의 신흥 산업까지 육성하겠다는 거다. 자력갱생이다.

지난 13일 중국 베이징의 한 일본계 기업 공장에서 중국인 노동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13일 중국 베이징의 한 일본계 기업 공장에서 중국인 노동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중요한 건 실현 가능성이다. 레이먼드 영 이코노미스트는 "시 주석 발언은 경제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며 "문제는 '어떻게' 이것을 이루느냐"라고 말한다. 자력갱생은 자칫하면 세계와 등을 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후싱더우 교수도 이를 우려한다. 그는 "중국이 역경에 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중앙정부가 모든 경제적 결정을 내리는 폐쇄적 경제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며 “중국이 현재의 세계 체제와 다른 경제 모델을 구축할 의사가 없음을 전 세계에 확신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정협 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신화=연합뉴스]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정협 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신화=연합뉴스]

대미 항전 수단으로 내수를 내세운 시진핑. 그의 전략은 과연 통할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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