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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 논설위원이 간다

“환경부가 과도한 법 적용”…소송 불사한 경상북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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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낙동강 상류 석포제련소 갈등 새 국면

환경부가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영풍그룹 석포제련소에 대해 환경 관련법 위반으로 120일 조업 정지를 내리자 경상북도가 이의를 제기 했다. 경북도는 무리한 처분이라며 환경부의 이행 명령에 대해 취소 소송을 냈다. 경북 봉화군 석포제련소 전경. [사진 영풍그룹]

환경부가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영풍그룹 석포제련소에 대해 환경 관련법 위반으로 120일 조업 정지를 내리자 경상북도가 이의를 제기 했다. 경북도는 무리한 처분이라며 환경부의 이행 명령에 대해 취소 소송을 냈다. 경북 봉화군 석포제련소 전경. [사진 영풍그룹]

영풍그룹 소속의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는 세계 4위, 국내 2위(1위는 고려아연)의 아연 공장이다. 한해 아연괴(塊·덩어리) 37만t 등을 생산해 약 1조3000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아연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카드뮴 등이 낙동강 수질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환경단체의 공격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제련소 측은 “환경 관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환경 오염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근거 없다”며 맞서고 있다. 석포제련소는 재작년 환경부로부터 폐수를 방출했다는 이유로 조업정지 20일 처분을 받고 현재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1심에서 제련소가 졌고, 지금은 2심이 진행 중이다. 기자는 1년 반 전 이 공장을 찾아 이 문제를 다뤘다〈중앙일보 2018년 12월 27일 자〉.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 폐수 방출 #조업정지 20일 후 또 120일 처분 #환경부 “위반 누적으로 가중 처벌” #경북도 “실제 강으로 유출은 없어”

이 공장이 다시 쟁점의 중심에 섰다. 환경부가 그 후 또 공장에 대한 조사를 벌여 이번엔 120일의 조업정지 처분을 내리면서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북도가 환경부의 처분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환경부 대 제련소’ 대립에서 경북도가 제련소 편에 선 것이다. 경북도는 환경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벌이는 등 정면충돌도 불사하고 있다.

빗물용 이중옹벽조가 발단

제련소 담장 안쪽에 설치된 빗물용 이중옹벽조. 폭 3.2m, 깊이 3.7m, 길이 7.4m의 옹벽조가 37개 이어져 있다. [사진 영풍그룹]

제련소 담장 안쪽에 설치된 빗물용 이중옹벽조. 폭 3.2m, 깊이 3.7m, 길이 7.4m의 옹벽조가 37개 이어져 있다. [사진 영풍그룹]

환경부 중앙기동단속반이 이 공장을 다시 조사한 것은 작년 4월이었다. 재작년 2월 내려진 ‘20일 조업정지’를 놓고 행정소송 1심이 진행 중이던 때였다. 공장 하류 쪽에서 기준을 초과한 카드뮴이 검출되자 단속반이 사흘 동안 공장을 뒤졌다. 그 결과 폐수 중 일부가 넘쳐 공장 내 빗물용 이중옹벽조(二重擁壁槽)로 흘러 들어간 사실이 적발됐다. 폐수를 이중옹벽조로 흘려보내는 배관 시설이 불법이라고 본 환경부는 120일 조업정지 결정을 내리고, 이의 행정 처분을 경북도에 의뢰했다. 환경부는 “첫 적발이라면 20일 조업정지 수준의 위반이지만, 위반 행위 누적에 따라 가중 처벌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처분을 의뢰받은 경북도는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배관 자체는 위법일지 몰라도, 이중옹벽조에서 하천으로 폐수가 유출됐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경북도의 입장은 재작년 ‘20일 조업정지’ 결정이 내려졌을 때와는 180도 달라졌다. 그때는 폐수 유출이 확인됐기 때문에 환경부 처분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었으나,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공장 측도 “많은 비가 내릴 경우 폐수 침전조에서 넘친 물이 이중옹벽조로 흘러가긴 하지만, 이 물은 다시 폐수 처리 시설로 되돌아온다”고 주장했다. 이중옹벽조 자체도 과거 관련 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설치된 시설이라는 것이 공장 측 설명이다. 최대진 경북 환경산림자원국장은 “과징금 정도면 충분할 일에 대해 장기간 조업정지 처분은 과도하다는 것이 도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이행명령, 도는 취소 소송

경북도는 처분 의뢰를 받은 직후 행정처분이 적정한지 환경부에 질의했다. 이후 청문회와 2차 질의를 거쳤으나 환경부와 경북도의 이견은 해소되지 않았다. 도는 결국 지난해 11월 법제처에 법령 해석을 요청했다. 넉 달 만에 돌아온 법제처의 회신은 애매했다. 법 위반 여부는 법령 해석 대상이 아니지만, ‘법 위반이 맞는다면’ 위반 횟수 누적으로 가중 처분하는 것은 타당하다는 답변이었다.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한 경북도는 급기야 지난 4월 초 행정협의조정위원회 조정을 신청했다. 행정협의조정위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사무 처리 의견이 다를 때 이를 조정하기 위한 기구다. 소속은 총리실이지만, 주관은 안전행정부 몫이다.

그러나 조정위의 첫 일정도 잡히기 전에 환경부는 “5월 21일까지 처분 결과를 보고하라”는 내용의 ‘직무이행 명령’을 경북도에 내렸다. 직무이행 명령은 ‘지자체의 장이 국가위임사무의 집행 등을 게을리하는 경우’에 감독기관이 발동하는 행정법상 제도다. 경북도가 주장하는 감경 처분은 불가하다는 강경론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경북도는 ‘직무이행명령 취소 청구 소송’을 대법원에 내며 맞섰다(법률상 대법원 단심제). 공장 하나에 대한 행정 처분을 놓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에 정면 대립하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합리적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행정협의조정을 신청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이행명령을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다른 도 관계자는 “환경부 명령은 우리 도가 게으르다는 말이냐”며 감정적 반응까지 보였다.

‘환경 근본주의’ 대한 의구심까지

경북도의 대응에는 ‘환경 근본주의’ 때문에 도민의 생활 기반까지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이철우 지사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 석포제련소는 오지인 경북 봉화군의 유일한 대형 사업장이다. 협력사 29곳의 직원까지 포함하면 1200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근 주민들은 공장 이전 및 폐쇄를 반대하고 있다. 석포제련소 관계자는 “일관 화학 공정 특성상 공장을 한 번 멈추면 사전 준비와 재가동에 6개월가량 걸린다”며 “120일 조업정지는 사실상 공장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동안 석포제련소와 환경부·환경단체는 대기·수질 오염 문제 때문에 숱한 갈등을 겪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국회에서 “가능하다면 석포제련소의 폐쇄나 이전과 같은 조치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영풍 관계자는 “환경부의 120일 조업정지 결정은 일종의 보복성이 아닌지 의심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환경단체의 압력이 거세지만, 공장 폐쇄나 이전은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힘든 일이다. 이를 강제할 결정적인 근거도 부족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련소 하류 쪽 안동댐에서 발생한 왜가리 집단 폐사다. 중금속 오염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최근 경북대팀이 수행한 연구 용역에서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옛 광산지역이었던 이 지역에 산재한 폐광이 토양 및 수질 오염의 원인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석포제련소가 빌미를 제공한 면도 분명히 있다. 크고 작은 환경 위반 사실이 적발됐고, 작년에는 대기배출 수치 조작 혐의로 공장 임원이 구속된 일도 있었다. 제련소 측은 사과와 함께 무방류 시스템 구축 등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개발 시대, 낙동강 상류에 세워진 제련소는 계속해서 환경과 경제 사이의 딜레마를 낳고 있다.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한 가운데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당사자인 사업장이 책임을 다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비현실적 환경주의의 압력으로 무리한 결정을 내리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 부식 막아주는 필수 재료…한국은 아연 강국

석포제련소에서 생산하는 아연괴.

석포제련소에서 생산하는 아연괴.

아연은 자원 빈국 한국이 자급하는 거의 유일한 비철금속으로 꼽힌다. 영풍그룹 계열 형제 회사인 고려아연과 영풍(석포제련소)이 국내 아연 수요의 90% 가까이 공급한다. 이중 석포제련소는 국내 시장의 34%를 차지한다. 고려아연을 합치면 세계시장의 10%를 점유하고 있다.

아연은 녹는 점이 낮고 잘 부러져 독립된 구조 재료로는 적당하지 않다. 그러나 철강재 표면에 입히면 철의 부식을 막아 준다. 아연이 산화하면서 철의 부식을 늦추는 보호 피막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연은 현대 철 산업에서 필수 불가결한 도금 재료로 활용된다. 자동차와 조선산업, 항공기, 건축 자재 등에 널리 쓰인다. 자동차 한 대 당 평균 10㎏의 아연이 포함돼 있는데, 이 중 3㎏은 아연 도금 형태로 포함돼 있다.

영풍은 1970년 아연 광산이 있는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국내 최초의 아연 제련소를 설립했다. 그때까지는 국내 기술이 없어서 광석을 수출하고, 여기서 추출한 아연괴는 일본에서 수입해야 했다. 이후 아연 광석은 고갈돼 93년부터는 해외에서 아연정광을 수입해 제련하고 있다.

아연 제련 과정에서 금·은·황산동·인듐 등 부산물도 나와 산업용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환경 오염원이라는 달갑잖은 시선을 받으며, 환경단체나 규제 당국으로부터 집중 감시 대상이 됐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