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정배의 시사음식

K푸드의 아이돌 ‘달고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박정배 음식평론가

박정배 음식평론가

달고나(Dalgona)의 강렬한 단맛이 뜨고 있다. 구글에 따르면 ‘달고나 커피(Dalgona coffee)’는 지난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커피 종류로 집계됐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중에 방탄소년단 지민과 RM이 달고나 커피 만들기를 네이버 VLIVE에서 시연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1960년대 설탕이 부족한 시절, 설탕과 소다를 섞어 만든 과자 달고나와 커피의 결합은 K푸드의 새로운 아이돌로 태어났다. 달고나는 60년대 부산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부산은 일본과의 음식적 연관성이 많다. 일본에는 달고나와 비슷한 카르메야키(カルメ焼き)라는 과자가 있다. 단것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카라멜로(caramelo)에서 유래했다.

60년대 한국인에게 커피와 각설탕은 ‘좀 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다방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어른들은 커피에 설탕을 듬뿍 넣어 마셨다. 아이들도 달고나의 말랑한 식감에 빠져들었다. 달고나는 70년대 불량식품의 대명사이자 단것의 전도사였다. 80년대 들어 아이스크림·초콜릿 같은 세련된 단것들이 등장하면서 달고나는 추억의 음식으로 남을 뻔했다.

달고나 커피(왼쪽)와 달고나. [사진 박정배]

달고나 커피(왼쪽)와 달고나. [사진 박정배]

2000년대 말 복고 바람과 함께 달고나가 돌아왔다. 2010년대 중반 달고나를 넣은 커피가 등장했지만 한국과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건 코로나19로 집에 갇힌 사람들이 커피와 설탕을 섞어 저어 만드는 달고나 커피를 먹으면서부터다.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원했던 ‘한식의 세계화’는 아무도 예상 못 한 것에서 이뤄진 셈이다.

한식의 세계화는 2009~2014년 6년 동안 예산 1200억원이 들어갔다. 남은 것은 빈 깡통 같은 슬로건뿐이었다. 대표선수로 떡볶이가 나섰지만 결과는 같았다. 세계화는 개별성과 보편성의 두 날개를 갖춰야 한다. 떡볶이는 한국인이 좋아한다는 점에서 개별성을 지녔지만 물컹한 떡과 매운 소스를 좋아하는 외국인은 많지 않았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음식의 세계화가 지닌 폭력성이다. 음식문화는 강요할 수 없다. 이방인이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역 음식을 지키는 슬로 푸드(slow food)는 86년 이탈리아에서 패스트푸드(fast food)의 상징 맥도널드 햄버거에 대한 반대 운동으로 시작됐다.

누구나 낯선 음식은 경계한다. 생명과 문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치맥 문화가 드라마에서, 짜파구리가 영화에서, 달고나가 K팝에서 시작된 것처럼 낯선 것을 허무는 지름길은 문화와의 만남이다. 현지화 없는 세계화는 없다. 세계인이 즐기는 커피에 한국식 단맛이 결합하고 방탄소년단의 문화 파워가 가미된 달고나 커피가 명쾌한 사례다. 달고나 커피에 이어 달고나 우유에, 달고나 빙수가 나오더니 이제 한식 다이닝 식당에서는 디저트 달고나까지 등장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선순환이 시작됐다.

박정배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