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지갑' 직장인이 봉? 보편증세 위해 깨야 할 세금신화 셋

중앙일보

입력 2020.05.26 17:43

업데이트 2020.05.26 20:40

세금 이미지. [셔터스톡]

세금 이미지. [셔터스톡]

'전시재정' 선언에 증세론 꿈틀

정부가 코로나 위기 대응을 위해 ‘전시(戰時) 재정’을 선언하면서, 증세 논의도 꿈틀대고 있다. '실탄' 없이는 지출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점과 폭의 문제만 남았을 뿐이다. 재정 전문가들은 증세를 피할 수 없다면 이 기회에 기형적 세입구조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한국 사회가 깨야 할 '세금 신화'를 크게 3가지로 든다.

신화① 직장인은 봉 

우선 '유리 지갑'으로 불리는 직장인(임금노동자)만 봉이라는 신화다. 국민 대다수는 소득을 숨기기 어려운 임금노동자는 소득세율(6~42%)에 따라 또박또박 세금을 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들은 각종 소득공제 혜택도 많이 받다 보니 월급을 받고도 세금을 내지 않는 근로소득 면세자만 10명 중 4명(2018년 귀속 소득 기준 38.9%)에 이른다. 미국(30.7%)·영국(2.1%)·일본(15.5%) 등 세계 주요국에 비하면 한국이 가장 높다.

소득세 내지 않는 근로자 비중.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소득세 내지 않는 근로자 비중.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세금을 내더라도 각종 공제 혜택을 빼고 실제 납부하는 세율(실효세율)이 10%가 안 되는 근로자가 대부분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19년 조세수첩'에 따르면 연간 과세표준 소득 4600만~8800만원 구간 임금노동자(140만명)는 원래 세율대로면 근로소득의 24%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하지만 실효세율은 8.5%에 그친다. 1200만~4600만원 구간 노동자(661만명)의 실효세율은 2.8%다. 반면 3억~5억원 정도 버는 고소득 근로자 1만명의 실효세율은 27.9%로 훌쩍 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대학원 교수는 "2014년 직장인들의 '연말정산 조세저항' 이후 기부금·의료비 등에 대한 근로소득 특별공제제도가 소득공제(비용을 소득에서 차감)에서 세액공제(비용을 세액에서 일정 비율로 차감)로 바뀌면서 근로소득세 면세자가 크게 증가했다"며 "이를 원위치하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고 말했다.

신화② 간접세 증세=양극화 

두 번째는 '부자도, 빈자도 소주 1병'으로 요약되는 간접세 신화다. 술·담배와 같은 재화에 붙는 부가가치세 등 소비세를 높이면 가난한 사람이 부담하는 조세 비중이 늘어 소득 양극화 해소에 역행한다는 주장이 보편화했다. 그러나 덴마크(25%)·핀란드(24%)·노르웨이(25%) 등 유럽 복지국가 대부분은 간접세 세율은 물론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간접세 세수 비중이 높다. 한국의 GDP 대비 부가세 부담은 4.1%(2017년)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7.2%다. 장제우 전 균형사회연구센터 연구원은 저서『세금수업』에서 "간접세를 훨씬 많이 걷는 북유럽 국가가 저소득층 복지도 잘 챙긴다"며 "국민을 위한 길은 복지에 필요한 세금을 확보하는 것이지 간접세 증세를 배척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주요국부가가치세비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주요국부가가치세비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신화③ '부자 증세'면 만사 OK 

재정적자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등장하는 '부자 증세' 주장도 신화에 가깝다. 고소득자에게 높은 세율을 매기는 건 원칙적으로 옳다. 그러나 한국은 현재도 고소득자의 세 부담이 큰 나라에 속한다. 한국은 소득 상위 10% 계층이 전체 소득의 36.8%를 차지하는 데 반해 소득세는 전체의 78.5%를 낸다. 미국과 일본의 상위 10%는 전체 소득에서 각각 47.7%, 51.4%를 차지하지만, 소득세 부담 비중은 70.1%, 75.8%로 한국보다 낮다.
또 실효세율이 낮아 세율을 올릴 여력이 있는 연간 과세표준 소득 8800만원 미만인 노동자는 인구(1760만명)가 많아 세율을 1%만 올려도 5조5170억원이 걷힌다. 그러나 8800만원 이상인 고소득 노동자는 인구(40만명) 자체가 적어 세율을 1% 올리면 7710억원이 더 걷히는 데 그친다. 세수 측면에서도 부자 증세보다 보편 증세가 효과적이다.

주요국고소득층소득세비중.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주요국고소득층소득세비중.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보편 조세로 복지 시스템 바꿔야" 

전문가들은 '현금 살포 후 부자 증세'와 같은 포퓰리즘적 패턴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모든 국민이 세금을 부담(개세주의)해 저출산·보육·교육·주거·빈곤·고령화 등 생애 주기적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복지 시스템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것이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능력에 다른 과세에만 치중해 온 조세 정책을 근로자 면세 비중 감축 등 보편 복지를 위한 정책으로 확장해야 한다"며 "복지 이외의 재정 지출도 선진국 못지않은 수준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줄여서 복지 지출 증가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금을 걷는 속도는 재정을 푸는 속도보다 느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에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근로자 면세 비중 감축은 정치적 민감성 탓에 서서히 낮출 수 밖에 없다"며 "당장 재정을 확대해야 할 상황이라면 불필요한 지출을 구조조정하는 것부터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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