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와 회견장 나타난 남성···그 티셔츠에 숨은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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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에서 그의 측근이 입은 티셔츠.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 그림이 새겨져 있다. 독자

25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에서 그의 측근이 입은 티셔츠.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 그림이 새겨져 있다. 독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하던 당시 그의 곁에 있던 측근 한 명은 주황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눈에 띄게 밝은 색깔의 이 티셔츠는 언뜻 보면 평범한 옷 같지만, 그 속에 숨은 뜻이 있다.

201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서 제막한 위안부 기림비 #“위안부 문제 해결 위해 나섰다는걸 보여주기 위해” #“멈춤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 뜻해…소리 없는 외침” #다시 잠행 시작한 할머니…“과도한 관심 힘들어 해”

티셔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면에 커다란 그림 하나가 새겨져 있다. 여성 세 명이 손을 잡고 둘러 서 있는 그림이다. 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다. 일제로부터 위안부 피해를 입은 한국과 중국, 필리핀 소녀를 상징하는 동상이다. 그 곁에는 위안부 참상을 고발한 고(故) 김학순(1997년 작고) 할머니의 모습도 새겨져 있다. 티셔츠에 새겨진 그림 위로 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를 뜻하는 ‘comfort women memorial san francisco’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 있는 세인트 메리(Saint Mary) 공원 내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는 앞서 2017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다인종 연합체, 위안부 정의연대(CWJC)가 시에 기증했다. 유명 조각가 스티븐 와이트(Steven Whyte)가 제작해 ‘여성 강인함의 기둥(Column of Strength)’으로 명명했다. 폭 약 90㎝, 높이 약 3m 크기다.

기림비 동판에는 ‘1931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태평양 13개국 여성과 소녀 수십만 명이 일본군에 의해 이른바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을 당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또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자행된 고통의 역사가 잊힐 것이라는 사실이 가장 두렵다’는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말씀도 담겨 있다.

2017년 9월 22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도심 한복판 세인트메리스 스퀘어파크에서 역사적인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9월 22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도심 한복판 세인트메리스 스퀘어파크에서 역사적인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 건립을 추진하던 때부터 이에 반발했다. 기림비 건립 후에는 일본 오사카(大阪)시가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설치에 반발해 57년부터 이어오던 도시 자매결연을 파기하기도 했다. “부정확하고 일방적인 주장을 역사적 사실로 (기림비에) 적어놨다”는 이유였다. 이에 샌프란시스코시는 “위안부 기림비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교훈과 사실을 일깨운다”고 반박 성명을 냈었다.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에는 이용수 할머니도 참석했다. 당시 이 할머니는 제막식 축사에서 “역사적인 날이다. 샌프란시스코 시민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역사는 잊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라며 “여러분들 덕분에 힘이 나서 200살까지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당일 이 할머니를 모셨던 이 측근은 “2017년 위안부 기림비 제막에 맞춰 제작된 이 티셔츠를 일부러 기자회견장에 입고 갔다”며 “이용수 할머니가 단순히 윤미향 당선인을 비판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이 자리에 나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그의 곁으로 미국 위안부 기림비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측근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그의 곁으로 미국 위안부 기림비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측근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이 측근은 “앞으로도 이 튀는 티셔츠를 입고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일본 침략 전쟁의 위안부 문제를 소리 없이 외치고 싶고 알리고 싶다”며 “이 티셔츠에 새겨진 위안부 기림비는 멈춤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측근은 평소 이 할머니를 지근거리에서 모시며 친분을 쌓은 인물로, 기자회견 당일 이 할머니의 운전기사로 알려진 남성과 함께 곁에서 할머니를 보좌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이 측근은 이 할머니를 대구의 모처로 모셨다. 그는 “기존에 머물던 호텔과는 다른 곳으로 이 할머니를 모셨다. 기자들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하고 심지어 숙소까지 찾아와 괴롭혀 90살이 넘은 이 할머니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몹시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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