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대국 日서 ‘웹툰 대박’···카카오페이지 ‘애니팡 전략’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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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이진수 카카오페이지 대표가 1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카카오페이지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이 대표는 "일본 시장을 거점으로 올해 글로벌 진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올해 중국, 대만, 태국 등 아시아는 물론 북미 진출을 위한 발판을 공고히 다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이진수 카카오페이지 대표가 1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카카오페이지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이 대표는 "일본 시장을 거점으로 올해 글로벌 진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올해 중국, 대만, 태국 등 아시아는 물론 북미 진출을 위한 발판을 공고히 다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다들 혀를 찼다. 만화대국 일본에서 한국 웹툰으로 돈을 벌겠다고? ‘어림없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회의적인 전망에도 카카오페이지는 2016년 4월 웹툰 플랫폼 픽코마를 일본 시장에 띄웠다.

이진수 카카오페이지 대표 #유료화 성공 이끈 ‘미보유’ #“하루이틀 기다리면 무료지만 #미리 보고싶은 사람은 돈 낸다” #현지화로 거부감 없앤 ‘무국적’ #“이태원 클라쓰→롯폰기 클라쓰 #한국서 검증되면 일본서도 통해”

그 후로 4년. 픽코마는 누적 2000만명이 다운로드한 일본 내 대표 스토리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나 혼자만 레벨업', '달빛 조각사' 등 카카오페이지 오리지널 IP(지식재산) 수는 전체 작품 중 1~2%지만 픽코마 거래액의 30%를 차지할 정도다. '나 혼자만 레벨업' 한 작품만 지금까지 190억 원 이상(국내외 통합)을 벌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지난 1일에는 국내외 통합 IP 기준 하루 거래액이 사상 처음 20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카카오페이지는 어떻게 세계 1위 만화 시장 일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지난 11일 경기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본사에서 만난 이진수(47) 대표는 “초경쟁 시장인 한국에서 검증받은 ‘IP파이프라인’이 일본에서도 통했다”고 말했다. NHN 마케팅센터장을 지낸 이 대표는 2010년 카카오페이지 전신인 포도트리를 창업했다. 2015년 회사를 카카오에 매각한 뒤 2018년 8월부터 카카오페이지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만화강국 일본에서 성과가 좋다.
2013년 당시 포도트리의 하루 거래액은 몇 십만 원 수준이었다. 그렇게 작았던 시장이 몇천만원으로, 다시 1억, 3억, 5억원으로 커지면서 국내에 웹툰·웹소설 초경쟁(超競爭) 시장이 형성됐다. 웹툰과 웹소설은 작품 소비 주기가 아주 짧다. 금방 다 봐버린다. 그래서 흡입력 있는 콘텐트를 대량으로 빨리 공급하지 못하면 생존이 어렵다. 이 작업을 우리는 5~6년 간 해왔고 여기서 수많은 IP가 치열하게 경쟁해 옥석이 가려졌다.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은 ‘파이프라인 IP’를 가지고 일본 시장을 두드렸다. 한국에서 검증된 노래와 춤으로 세계시장을 휩쓰는 ‘케이(K)팝’과 비슷하다.
카카오페이지 오리지널 IP 일거래액.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카카오페이지 오리지널 IP 일거래액.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국에서 인기 끈 웹툰이 일본에서도 인기인가.
그렇다. 일본 1위 매출 '나 혼자만 레벨업'은 하루 최대 82만명이 열람했다. 일본뿐만이 아니다. 올해 초 인도네시아 서비스도 시작했는데 급성장 중이다. 인도네시아 매출 1위가 한국 웹툰 ‘사내맞선’이다.
디지털 콘텐트는 공짜라는 인식을 깨고 유료화에도 성공했다.  
2010년 창업 후 정말 어려웠다. 유료로 팔리는 콘텐트가 성인물과 입시 콘텐트 말고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게임 '애니팡'이 인기를 끄는 걸 봤다. 같은 모양 캐릭터 3개를 맞추면 터지는 게임은 애니팡 이전에도 수만 개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니팡만 돈을 벌었다. 기다리면 무료 이용권이 충전되는데, 사람들은 그 잠깐을 기다리지 않고 이용권을 샀다. 그때 깨달았다. 그저 재밌다고 유익하다고 500원 내라고 권하면 안 낸다는 걸. 세상은 재미있는 걸로 꽉 차 있어서다. 대신 시간을 아끼는 데에는 돈을 낸다. 이런 방식은 리니지 등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서도 검증됐다. 노력하면 얻을 수 있지만 게임 속에서 ‘노가다’ 하기 싫으니 돈을 내고 아이템을 산다. 게임 비즈니스가 이미 ‘사용자의 시간’이 최고의 재화라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우리는 이 모델을 2014년 세계 최초로 웹툰·웹소설에 도입했다. 하루나 이틀 기다리면 무료로 볼 수 있지만, 먼저 보고 싶은 사람에게 '유료 결제'라는 선택권을 준 것이다.
한국 웹툰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
만화 시장의 주류는 판타지다. 일본의 인기만화 '드래곤볼'에 국적이 없듯이 우리 '나 혼자만 레벨업'에도 국적이 없다. 또 우리는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한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인기 웹툰 '이태원 클라쓰'는 일본에선 ‘롯폰기 클라쓰’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카카오페이지의 대표 IP 이태원클라쓰. 일본에선 롯폰기 클라쓰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사진 카카오페이지]

카카오페이지의 대표 IP 이태원클라쓰. 일본에선 롯폰기 클라쓰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사진 카카오페이지]

카카오페이지는 25일 영화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올 여름 개봉 예정인 영화 ‘승리호’의 IP를 다양하게 확장하는 내용이다. 배우 송중기, 김태리가 출연하는 승리호는 2092년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얘기를 다뤘다. 카카오페이지는 초기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투자해왔으며 오는 27일부터 웹툰을 연재한다. 이 대표는 “하나의 좋은 스토리는 웹소설-웹툰-드라마·영화-게임으로 영역을 무궁무진하게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승리호 이전에도 쌍갑포차, 이태원클라쓰, 시동 등 하나의 스토리를 여러 형태로 제작하는 일이 많았다.
카카오페이지에서 10억 원 이상 번 IP가 현재 130개다. 100억 이상 번 IP도 ‘닥터 최태수’‘템빨’ 등 6개다. 잘 터진 만화 하나면 수백억 매출이 가능한 시대다. 이걸 게임과 연결하고 영화·드라마, 굿즈로 확장하면 웹툰 하나로 1000억 매출을 만들어 내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의 출발점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IP의 잠재력을 보고 함께 확장해 나가는 걸 지향한다. 영화 대본에서 시작된 승리호가 훌륭한 웹툰·웹소설·게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확장하려면 어떻게 하나.
이 분야도 갈수록 분업화되고 있다. 우리도 여러 작가, 스튜디오와 협업해 기획 단계부터 확장을 염두에 두고 흡인력 있는 원천 스토리를 창작한다. 기획사 손 안 거치는 작품이 드문 케이팝 시스템과 비슷하다. 예전엔 강변가요제에 통기타 하나 들고 나와 가수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산업이 성숙하면서 기획사 거치지 않은 가수가 많이 줄지 않았나. 우리도 자회사, 관계사 등으로 여러 스튜디오와 협업해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웹툰 제작이 기업화되면서 비슷비슷한 웹툰만 양산한다는 지적이 있다.
연재 플랫폼에서 보여지다보니, 매회 독자 반응이 가장 중요하기는 하다. 그런데 독자들이 소재 반복에 금방 실증을 느끼는 편이라 다양한 작품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카카오페이지 플랫폼 자체가 보기 불편하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IP파이프라인 확보에 전력을 다해왔다. 플랫폼 관련 문제점은 잘 알고 있다. 앞으로 2년 동안 그간 불거진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려 할 것이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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