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바다로 간다”더니 세월만 간다···롯데월드 흰고래 7개월 한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벨루가 수조. 벨루가 한 마리가 있는 수조 앞에 '북태평양, 캐나다 동부의 북극 바다에 살고 있다'고 소개하는 화면이 띄워져 있다. 김정연 기자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벨루가 수조. 벨루가 한 마리가 있는 수조 앞에 '북태평양, 캐나다 동부의 북극 바다에 살고 있다'고 소개하는 화면이 띄워져 있다. 김정연 기자

'생물다양성의 날'인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지하 2층의 대형 수조. 벨루가(흰고래) 한 마리가 파랗게 밝혀진 수조 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

이 흰고래는 8살 암컷 '벨라'다. 한때 세 마리가 함께 살던 수조에 홀로 남아 있다. 아쿠아리움 측은 2013년 러시아로부터 벨루가 세 마리를 수입해 2014년 10월부터 사육했다.

하지만 2016년 5살이던 ‘벨로’가 폐사했고, 지난해 10월 남은 두 마리 중 12살 수컷 ‘벨리’도 패혈증으로 죽었다. 개장 초기부터 몸길이 3~5m의 벨루가 세 마리를 7.5m 깊이의 실내 수조에 키우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벨루가가 초음파로 링을 쏜 뒤 부수며 지나가는 모습. 플라스틱 링 3개 외엔 다른 장난감이 없는 벨루가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놀잇감'처럼 보였다. 김정연 기자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벨루가가 초음파로 링을 쏜 뒤 부수며 지나가는 모습. 플라스틱 링 3개 외엔 다른 장난감이 없는 벨루가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놀잇감'처럼 보였다. 김정연 기자

수조를 빙빙 돌던 벨루가는 수조 벽에 붙어선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수조 벽으로 다가와 높은 '끼익' 소리를 내곤 한다. 김정연 기자

수조를 빙빙 돌던 벨루가는 수조 벽에 붙어선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수조 벽으로 다가와 높은 '끼익' 소리를 내곤 한다. 김정연 기자

결국 지난해 벨리의 폐사 직후 아쿠아리움 측은 "마지막 남은 벨루가 한 마리를 자연 방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세부 계획은 동물자유연대와 국내외 전문가 등과 논의해 마련하겠다고 했다.

관련기사

홀로 남은 벨라, 7달 동안 '독수공방'

하지만 방류 발표 이후 7개월여가 지났지만 벨라는 여전히 기존 수조에 홀로 살고 있다. 벨루가 수조는 관람객이 보이는 바깥 수조, 관람객의 눈이 닿지 않는 수조를 합해 1224톤 규모다. 수조 위로는 눈부신 조명이 비치고 있다.

벨루가가 플라스틱 튜브로 만들어진 장난감 링을 물고 있는 모습. 김정연 기자

벨루가가 플라스틱 튜브로 만들어진 장난감 링을 물고 있는 모습. 김정연 기자

기자가 1시간여 동안 지켜보는 동안 벨라가 보인 행동은 수조를 빙빙 돌거나, 플라스틱 링을 잠깐 물거나, 링에 몸을 끼우려고 하다 포기하는 게 전부였다.

가끔 유리벽에 붙어서 자신을 바라보던 아이들과 눈을 마주칠 때면 함께 쳐다보며 짧게 ‘끼익’ 우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파란 수조엔 플라스틱 장난감 링 3개가 전부였다.

이에 대해 아쿠아리움 측은 "해양생물전문 아쿠아리스트(잠수사)와 함께 공, 부표 등 행동 풍부화를 하루 10회 이상 진행하며 스트레스 예방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의 생각은 다르다. 핫핑크돌핀스의 조약골 대표는 "자연에서 수초·해면을 가지고 놀지, 아이들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고래는 없다. 너무 인간 중심의 사고"라고 비판했다.

조 대표는 "식물을 심거나 다른 물고기를 넣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감염 우려 문제인데, 그만큼 수조에 사는 돌고래가 면역력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너무 강한 인공 조명에 생체리듬이 깨지는 것도 실내 수조의 문제점"이라고 설명했다.

롯데 "절차 결정 안돼 비공개" vs 동물단체 "홍보에만 이용"

아쿠아리움 측은 진척 사항에 대해 “방류를 위해 다각도로 논의 중이지만 세부 계획이 아직 결정되지 않아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진척이 더딘 이유 중 하나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해양수산 관련 기관과의 업무도 순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쿠아리움과 함께 방류 논의를 진행 중인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 측은 “현재 진행 상황은 20% 정도이긴 한데, 롯데 측은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동물자유연대 측은 “벨루가를 포획하는 러시아에 다시 벨루가를 풀어놓는 게 맞을 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2012년 방류된 '제돌이'(남방큰돌고래)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제돌이의 경우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2년 3월 방류를 결정한 뒤 방류 계획이 세워져, 약 1년간 야생적응 훈련을 거쳐 2013년 7월 제주 앞바다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른 동물권단체, 전문가 사이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공동대표는 “중국 상하이 수족관에 있던 벨루가가 아이슬란드 벨루가 피난처로 가는 데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돌려보낸다’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해놓고 사실상 준비는 미적대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제돌이를 서울대공원에서 제주 앞바다에 방류할 때 방류위원회 구성부터 바다 가두리로 옮기기까지 1년여가 걸렸다”며 “국외로 보내는 과정이 있을 수도 있고, 준비가 다소 길어질 수는 있지만 진척 사항까지 투명하게 공개할 수 없다는 부분은 납득가지 않는다”고 했다.

씨라이프재단이 아이슬란드에 조성한 벨루가 피난처. 현재 이곳에는 상하이 수족관에 있던 벨루가 두 마리가 옮겨져 보호를 받고 있다. [씨라이프재단 홈페이지 캡쳐]

씨라이프재단이 아이슬란드에 조성한 벨루가 피난처. 현재 이곳에는 상하이 수족관에 있던 벨루가 두 마리가 옮겨져 보호를 받고 있다. [씨라이프재단 홈페이지 캡쳐]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도 “지난해 ‘선제적으로 벨루가를 은퇴시키겠다’고 발표한 뒤 시민도 반기고 관련 단체들이 환영 성명까지 냈다. 이에 걸맞게 아쿠아리움 측이 어떤 조치를 취했고 어떤 단계인지 밝힐 사회적 책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아울러 방류 절차가 진행될 때까지 기존 전시용 수조에 그대로 두는 게 최선인지, 아니면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하는 게 좋을 지 고민해야 하는데 논의가 없다. 과연 아쿠아리움에 그대로 맡겨둬야 할 지 의문”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