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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메르스 최악의 조합···'괴물' 바이러스 출현할 수도"

중앙일보

입력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의 중간 숙주인 단봉낙타. 2012년 출현한 메르스 바이러스는 2015년 한국으로 건너와 큰 피해를 내기도 했다. 사진=세계보건기구(WHO)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의 중간 숙주인 단봉낙타. 2012년 출현한 메르스 바이러스는 2015년 한국으로 건너와 큰 피해를 내기도 했다. 사진=세계보건기구(WHO)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이 바이러스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가 뒤섞인 새로운 '괴물'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메르스 바이러스가 한꺼번에 한 세포를 동시에 감염(침입)했을 때 유전물질인 RNA(리보핵산) 가닥의 일부를 서로 교환하는 재조합(recombination)이 일어나 새로운 바이러스가 탄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높은 전파력을 가진 코로나19 바이러스 특성과 높은 치명률(중동지역 기준 최대 37%)을 가진 메르스 바이러스 특성이 합쳐져 상승작용 일으키는 '최악의 조합'이 현실화된다면 지금의 코로나19 대유행(pandemic)이 더 위험한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재조합 바이러스 출현 가능성.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재조합 바이러스 출현 가능성.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치명률 높은 메르스를 등에 업는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대학 부속 중난병원 의료진. 로이터=연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대학 부속 중난병원 의료진. 로이터=연합

캐나다 맥마스터·워털루·토론토 대학, 미국 하버드 의대, 일본 오키나와 과기대학원 대학연구소 등에 소속된 전문가들은 최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SSRN에 생물정보학적 분석 결과를 담은 논문을 올리고 재조합 바이러스의 탄생 가능성을 경고했다.

메르스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최대 37%, 2015년 한국에서도 20%의 치명률을 기록했다.
코로나19는 중국에서 치명률 1.38%, 한국에서는 2.38%로 메르스에 비해서는 낮다.

반면 메르스의 경우 재생산지수(확진자 1명이 옮긴 사람 숫자)가 0.9명인데 비해 코로나19는 3.15명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치명률이 높아지면 전파력은 떨어지지만, 세계적으로 540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34만5000명이 사망한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치명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진다면 희생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두 바이러스가 같은 세포로 들어간다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중앙포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중앙포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중앙포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중앙포토

연구팀은 우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코로나19와 메르스가 동시에 유행하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낙타를 중간 숙주로 하는 메르스는 2012년 처음 출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계절적 유행(4~12월)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월까지 사우디에서는 최소 34명의 환자가 발생, 13명 이상이 숨졌다.

코로나19도 심각하다. 25일 현재 사우디에서는 7만2560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보고됐다.

사우디에서는 한 사람이 두 바이러스에 동시에 감염되는 사례도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사람의 신장(腎腸)과 대장·소장 상피세포 세포막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침투 경로(수용체)인 앤지오텐신 전환 효소 2(ACE2) 수용체와 메르스 바이러스 침투경로인 디펩티딜 펩티데이즈-4(DPP-4) 효소 수용체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두 수용체가 많은 소장 세포에서는 두 바이러스가 동시에 감염 가능성이 크다.
호흡기 세포에서도 동시 감염 가능성은 존재한다.

일단 두 바이러스가 한 세포에서 복제를 시작하면 각각의 RNA 가닥이 여러 개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RNA 가닥 하나가 단백질 껍질 속으로 들어가 바이러스 입자로 조립되는데, 이 과정에서 RNA 가닥 일부분이 다른 바이러스 RNA로 바뀌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즉, 일부분은 코로나19바이러스 RNA, 나머지 부분은 메르스 바이러스 RNA로 이뤄지는 '재조합'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두 바이러스가 유전적으로 90% 이상 일치하는 구역을 가진 ORF 1ab (RNA 중합 효소) 유전자 내에서 재조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재조합 바이러스 출현 사례 있어

바이러스의 주요 단백질 구조 비교. 왼쪽부터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 19),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바이러스. 코로나19와 메르스는 ORF1a와 b 단백질에서 일부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자료=미국 뉴잉글랜드대학 메간 메이 박사 등 (2020년 논문)

바이러스의 주요 단백질 구조 비교. 왼쪽부터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 19),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바이러스. 코로나19와 메르스는 ORF1a와 b 단백질에서 일부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자료=미국 뉴잉글랜드대학 메간 메이 박사 등 (2020년 논문)

연구팀은 재조합 바이러스의 출현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제시했으나,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존재해 무게감을 더해준다.

개에 감염한 코로나바이러스와 소에 감염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재조합된 사례가 있고, 사람의 코로나바이러스 OC43과 HKU1이 재조합된 사례가 보고됐다.

2003년 유행한 사스(SARS·급성 중증호흡기증후군)도 기존 코로나바이러스의 재조합 산물로 알려져 있고, 메르스 자체도 재조합으로 탄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재조합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포유류에서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람에게서 고양이나 다른 포유류로 감염된 사례도 계속 보고 되고 있다.

메르스 숙주인 단봉낙타가 코로나19에 감염되는지, 코로나19에 걸리는 고양이가 메르스에 걸리는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한 상황이다.

사우디에서만 문제 될까

지난 2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한 쇼핑몰에서 보안요원이 고객의 체온을 체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지난 2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한 쇼핑몰에서 보안요원이 고객의 체온을 체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물론 재조합 RNA와 거기서 만들어진 '괴물(chimeric) 단백질'이 바이러스 증식 과정에서 제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변형된 단백질로 인해 바이러스 증식이 안 될 수도 있다. 오히려 감염성이 떨어지고 치명률도 낮아지는 조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문제는 괴물 단백질이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도, 변형으로 인해 코로나19나 메르스 치료제의 공격에서 벗어나는 조합이 나타나면 최악이다.
더욱이 재조합 바이러스가 탄생할 경우 코로나19나 메르스에 한 번 감염됐던 사람도 항체가 역할을 못 해 재감염 위험에 놓일 수도 있다.

연구팀은 "다양한 분석 결과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메르스 바이러스의 재조합이 일어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며 "사우디 같은 위험지역에서는 코로나19 환자와 메르스 환자를 분리 입원시켜야 하고, 환자 시료에서 재조합 바이러스를 진단하는 등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단 재조합 바이러스가 출현한다면 순식간에 세계 다른 지역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중동지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이 문제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과거 사스 때와 2015년 한국의 메르스 사례, 그리고 지금의 코로나19도 그렇게 전파됐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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