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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아이콘 된 윤미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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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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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레온 트로츠키(1879~1940)에겐 흑역사가 있다. 정치적·경제적으로 궁핍하던 시절(1917년), 아내가 내어놓은 반지를 들고 전당포를 찾아갔다. 흥정 끝에 26루블을 받아들고 나오다 동네 깡패들을 만나 돈을 뺏길 위기에 처했다. 수모를 당하고 있을 때 볼셰비키를 지지하는 수병 니콜라이 마르킨 일당이 나타나 구해줬다. 이후 마르킨은 트로츠키의 측근이 됐고 큰 도움을 줬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내전 와중에 마르킨을 사지로 보냈다. 자기 인생 최악의 순간을 목격했고 다른 이와 달리 우상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마르킨이 못마땅해서였다. 명령을 따른 마르킨은 죽기 직전 배신감에 치를 떨었을 가능성이 크다.

윤미향, 위안부 문제 둔 채 국회행 #이용수 할머니, 배신감에 비위 폭로 #국회·청와대행 시민단체에 경종

배신감의 측면에서 보면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전 대표)에 대해 92세의 이용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느낀 배신감의 강도는 죽음을 목전에 뒀던 마르킨에 못지않을 것 같다. 이 할머니는 “윤씨가 데모(수요집회) 때마다 애들(대학생) 돼지(저금통) 턴 돈을 모금할 때 안타까웠다” “농구 행사에 할머니 동원해서 모금함 돌릴 때도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25일 기자회견에서도 “모금 행사가 끝나고 배고프다고 했더니 돈 없다고 하더라”며 누구를 위한 정대협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꾹꾹 눌러왔던 울분이 폭발한 건 윤씨가 국회의원이 된다고 했을 때였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거절했어야지), 사리사욕 챙기려고 다 미뤄놓고.”

서소문 포럼 5/26

서소문 포럼 5/26

수십 년을 동고동락해온 위안부 활동가가 총선에 출마해 정치인이 되는 건 변절이고 배신이라고 이 할머니는 받아들였다. 할머니들과 할머니들을 위해 봉직해야 할 정대협의 관계도 주객이 전도된 상태였다. 이 할머니가 “할머니 개인들만이 아니라 국민들한테도, 세계 사람들한테도 배신”이라고 지탄한 이유다. 위안부 활동가라고 하더니 본질은 평균적 인간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열여섯 소녀 때 꿈이 무참하게 짓밟힌 것도 평생의 한(恨)일진대, 90대 할머니가 되어 일본제국주의 역사적 대죄의 상징임에도 ‘피해자 중심주의’의 외피를 쓴 윤미향의 시민단체에 의해 이런저런 모금 행사에 강제(?) 동원될 때는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을까.

이런 변절과 배신은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넘쳐 난다. 정부의 실정과 권력의 횡포를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 간부들이 일말의 죄책감 없이 권력 주변으로 몰려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참여연대·경실련은 물론이고 각종 환경단체의 간부들도 앞다퉈 행정부나 국회로 진출, 정부 정책 감시가 아닌 정책 집행과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이 할머니의 문제 제기가 순수한 의도와 초심을 버리고 감시자에서 직접 세상을 바꾸겠다는 미명아래 권력을 좇는 ‘시민단체 철새’에 대한 일갈로도 들리는 이유다.

6년 전의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97년 전 위안부의 비극은 국가적 재난이다. 세월호는 선주인 유병언 일가의 탐욕과 정부의 부실한 위기대응능력이 사고 원인으로 질타 됐고 위안부는 가해자가 분명했다. 위안부 문제는 18명의 생존 할머니들의 숨이 다 멎은 이후에도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이 있기 전에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대협 사태에 대한 윤씨의 대응은 비상식적이다. 무수히 쏟아지는 의혹도 친일파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며 메시지의 본질은 무시한 채 메신저의 성향을 더 부각시킨다. 이쯤 되면 “부덕의 소치”라고 할만도 한데 회계 오류를 일부 시인한 외에 사과나 반성도 없다. 아베의 일본과 뭣이 다른가. 대통령의 침묵도 길어지고 있다. 김학의, 조주빈 사건 등에서 즉각 철저 수사를 지시하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네 편은 무시하고 내 편만 안고 간다는 전략이라면 반쪽의 나라가 될 수 있기에 걱정스럽다. 무관심과 방관하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

중국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중은(中隱)’이라는 장편시에서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사는 법을 소개했다. ‘대은(大隱)은 고위 관직에 올라 큰 도시에 사는 건데 너무 시끄럽고 소은(小隱)은 자연 속에 은거하는 것인데 너무 쓸쓸하다. 차라리 한직에서 생계를 꾸리며 은일하는 중은(中隱)이 낫다’는 거였다. 청와대 관료를 지낸 지인 K는 더 나갔다. “관직에 대한 미련도 버렸어요. 변하지 않는 세상에 실망하기보다 물러나 앉아 관망하는게 속 편하지. 우리 가문이 예로부터 벼슬이랑 인연이 없대요. 한 200년간 관직에 안 나가기도 했다는데 뭐.”

조강수 콘텐트제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