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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잘못 밝히고, 운동 바꿔라”…이용수 할머니의 말 옳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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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용수 할머니가 어제 기자회견에서 한 말은 크게 두 갈래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윤미향(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씨 범죄 의혹은 검찰 수사로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위안부’ 피해 여성과 관련한 시민단체 운동이 한국과 일본 양국의 청년세대에 대한 교육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90세 넘은 노인이 윤씨 문제로 불거진 사회적 논란에 대해 이처럼 명쾌하게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의혹 규명 검찰 수사, 미래지향적 운동 주문 #이 할머니 제시 해법에 사회가 귀 기울여야

이 할머니는 “해외에 갈 때 (윤씨 개인계좌로) 모금했다는 사실도 몰랐다”며 기부금 착복 의혹을 뒷받침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윤씨의 횡령·배임 의혹에 대해서는 대체로 말을 아꼈다. “(언론 보도로) 생각도 못했던 것이 많이 나왔는데, (그것은)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검찰이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못이 드러나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옳은 주장이다. 검찰이 윤씨가 이사장이었던  ‘정의기억연대’를 압수수색하자 “수상한 의도” 운운하며 막아서는 모습을 보인 여권 정치인들과 윤씨 주변 인사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회견 내용 중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할머니는 “한·일 양국의 청년들이 왕래하고 교류하면서 과거를 기억하고 나아갈 길을 말하게 하자”고 했다.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제 강점기 피해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의 운동은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데만 집중됐다. 고발과 시위가 중심이 됐고, 피해 회복 방법에 대한 다른 의견은 설 자리가 없었다. 몇몇 활동가가 방향을 정하면 정부는 보조금으로, 시민들은 기부금으로 그대로 따라가는 형식으로 운동이 이뤄져 왔다. 물론 과거사 문제에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아 온 일본 정부의 탓이 크지만, 한국 사회 역시 반성할 부분이 없지 않았다. 비난과 성토에 매몰돼 이 할머니가 말한 ‘미래 세대의 기억과 협력을 위한 노력’은 등한시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할 필요가 있다.

이 할머니는 어제 “(위안부 피해자들이) 만두 속 고명 같은 존재였다”며 울먹였다. 이 할머니와 동료들이 소모품처럼 활용됐다는 주장이다. 위안부 피해는 식민지 역사 중 한국인의 감정선을 가장 자극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줄곧 반일(反日) 운동의 소재가 돼 왔다. 하지만 이 사안은 한·일 양국의 과거사를 넘어선 보편적 인류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성 인권, 전쟁 범죄, 성 윤리 등으로 범위를 넓혀 전 세계의 미래 세대가 반면(反面)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이 할머니가 말한 ‘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피해의식에 머무르지 않고 후대의 삶을 걱정하는 훌륭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가 제시한 숙제에 우리 사회가 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