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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 마련 대책없는 '확장 재정'… ‘부자증세’ 로 이어지나

중앙일보

입력

“뼈를 깎는 지출 구조조정이 필수적이다. 정부부터 허리띠를 졸라매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 청와대에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 청와대에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이렇게 말했다. 재정 확대를 강력하게 지시하면서 지출 구조조정 외 이렇다 할 재원 방법 마련을 내놓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이미 마른 수건까지 짜낸 상황에서 지출 조정만으로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증세론'이 스멀스멀 불거져 나오는 이유다.

예산 절반이 의무지출...쥐어짤 여지도 없어

우선 현재 예산 구조에선 돈이 나올 구멍이 거의 없다. 정부는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서 8조8000억원 규모를 세출 조정했다. 향후 추가 조정 여지가 많지 않아 3차 추경 재원의 대부분은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게다가 가파른 저출산‧고령화로 향후 지출을 쉽게 줄이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가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한 '2019~2023 중기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전체 예산(본예산 기준)에서 의무지출 비중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49.8%, 2021년 49.5%, 2022년 50.3%, 2023년 50.1%다. 법으로 정한 복지 예산이 최근 들어 늘어나며 의무지출 비중도 커졌다. 의무지출은 법적으로 지출 규모를 정해 놓은 예산이어서 이를 탄력적으로 줄이기가 쉽지 않다. 실질적으로 지출 구조조정 여지가 있는 예산은 나머지 절반인 재량 지출뿐이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증세 불가피...운 띄운 KDI  

결국 증세가 불가피하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미 운을 띄웠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 20일 ‘상반기 경제전망’을 발표하며 “재정을 늘려서 썼으면 나중에 갚아야 한다”며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증세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증세'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정부도 묘한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22일 "위기대응 과정에서 필요한 재정 여력 확보와 미래세대의 재정부담 축소를 위해 여러 대안 중 하나로 사회적 연대를 활용한 방안이 강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장은 “지출 구조조정으로는 한계가 있는 데다가 경기 부진으로 세입 상황도 녹록지 않아 결국 증세 이외의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핀셋 증세'로는 효과 제한적...'편가르기'에 불과 

증세 형태는 '보편 증세'가 아닌 '핀셋 증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증세를 하더라도 초(超)고소득층과 초 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라며 ‘보편 증세’의 문을 스스로 닫았다. 그러면서 현 정부는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종합부동산세 강화 등 부자들을 대상으로만 세금을 더 걷어왔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대학원 교수는 “경기 부진 대응 및 복지 재원 조달을 위해 세원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증세 방침을 밝히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작업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자 증세는 세수 효과는 미비한 ‘편 가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인세·소득세 등의 상당 부분을 이미 고소득층이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로 볼 때 정부가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러나 부자 증세를 해봐야 세수는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세 정책을 경제가 아닌 지지층을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해 온 행태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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