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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위탁엄마의 이름으로 '세바시' 무대에 서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24)

얼마 전에 ‘세상을 바꾸는 시간(세바시), 15분’ 촬영을 했다.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처음엔 긴장과 설렘, 부담감과 의무감이 밀물과 썰물처럼 일렁였다. 그러나 위탁 엄마로서 가정위탁제도를 제대로 알릴 수만 있다면 이만한 자리도 없을 것 같았다.

그즈음, 세바시에서 보낸 메일 하나를 받았다. ‘세바시 짧은 스피치 구성 전략’이라는 파일이었는데 마치 십계명처럼 ‘세바시 강연자에게 전하는 10가지 조언’이 적혀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띈 것이 세 번째 조언이었다.

“상식에 준하는 당위나 충고는 사양합니다. 관객은 당신보다 현명합니다.”

신선한 반전이었다. 강연자가 현명한 게 아니라 듣는 관객이 현명하다는 말이었다. 그렇구나. 현명한 사람이 듣고, 현명한 사람이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구나. 그렇다면 나는 현명한 관객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딱 15분이었다. 15분 안에 가정위탁제도와 위탁가족으로서의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먼저 1년 가까이 쓴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를 모두 출력해서 읽었다.

위탁을 고민하던 때부터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돌쟁이 은지가 우유병을 빨던 때부터 일곱 살 개구쟁이가 된 지금까지. 가족이 되어가는 우리의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처럼 새롭게 읽혔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촬영 중. [사진 배은희]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촬영 중. [사진 배은희]

지난 이야기 속에서 주제를 찾아냈다. 나머지 이야기는 덜어내고 깎아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를 추렸다. 이야기를 덜어내고 깎아낼 때마다 핵심 메시지는 더 또렷해졌다.

나보다 먼저 무대에 섰던 유명 강연자들의 영상을 다시 찾아봤다. 시청자로서 볼 땐 가볍게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쉽게 잊어버렸는데. 막상 내가 그 자리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짙푸른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만의 이야기를 가장 나답게 전하는 것’ 그게 목표였다. 초고를 써서 보내고 나와 담당 PD, 작가가 화상 미팅을 했다. 원고의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어떤 것을 더 부각할지, 어떤 것을 더 깎아낼지 이야기를 나눴다.

원고를 여러 번 수정했다. 그러면서 가정위탁제도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됐다. 가정위탁제도는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주고받는’ 개념이었다. 위탁가족은 ‘사랑’을 경험하고, 위탁 아동은 ‘가족’을 경험하는 윈윈 제도였다.

촬영 전날 저녁까지 원고를 수정했다. 시간은 빠듯하고, 수정된 원고를 소화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그때 세바시 담당 작가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선생님은 며칠 동안 쓴 원고를 가지고 무대에 서는 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살아온 삶으로 무대에 서는 거예요. 그러니까 떨 필요가 없는 거죠. 당당한 거죠!” 그녀의 말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나는 원고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면서 오직 원고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원고가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으로 무대에 서는 거라고 했다.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있겠다.” 촬영 당일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한 마리 시골 쥐처럼 서울 시내를 두리번거리며 찾아갔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차 있었다. ‘그래, 난 지금까지 살아온 삶으로 설 거야!’

15분짜리 프로그램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여러 사람이 사력을 다해서 함께해야만 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기 역할을 해야만 비로소 한 편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15분짜리 프로그램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여러 사람이 사력을 다해서 함께해야만 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기 역할을 해야만 비로소 한 편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을 하고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카메라는 곳곳에 우뚝우뚝 서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큐카드를 들고 원고를 다시 읽었다. 거기서도 깎아낼 부분이 보였다. 그 자리에서 볼펜으로 쭉쭉 그었다.

카메라와 조명을 보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나답게 할 수 있을까? 다시 걱정됐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내 삶으로 무대에 서는 거니까. 유명한 강연자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위탁 엄마로서 6년간의 삶을 가지고 무대에 서는 거니까.

촬영은 코로나19 때문에 관객 없이 진행됐다. 하지만 영상이 공개되면 전국의 현명한 관객들이 귀를 기울일 것이다. PD의 사인이 떨어지고, 무대에 올라가고, 나를 비추는 조명과 카메라 앞에서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위탁 엄마예요…. 6년째 동거 중이죠….”

나만의 이야기를 가장 나답게 하려고 애썼다. 울컥울컥 안쓰러운 마음이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으하하 웃음이 나기도 했다. 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PD랑 작가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잘했어요! 딱 선생님답게 했어요.”

그 한마디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나답게 하는 게 목표였는데 나답게 했구나, 안도했다. 왼쪽 눈가에 눈물이 번져 판다처럼 보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것도 내 모습이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하루를 돌아봤다. 15분짜리 프로그램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여러 사람이 사력을 다해 함께해야만 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기 역할을 해야만 비로소 한 편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건,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게 아닐까? 나도 내 자리를 찾아 제주로 돌아왔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5월의 하늘은 유난히 찬란했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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