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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기업 80% 급감” 헤드헌팅 시장 말라붙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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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코스닥 상장사인 A사는 올해 초 마케팅 인력 2~3명을 충원하려던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 회사의 전 직원은 80명가량. 경쟁사보다는 낫다곤 하지만 1분기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하반기 전망도 불투명해지면서 일단 채용 프로세스를 멈췄다. 올 1ㆍ2분기 재택근무의 경험 역시 ‘굳이 사람을 뽑아야 하나’란 근본적인 물음의 원인이 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실적도 실적이지만, 회사 전체적으로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다시 점검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 아니냐는 내부 공감대가 컸다”고 전했다.

올초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채용정보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관련 상담을 받는 모습. [연합뉴스]

올초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채용정보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관련 상담을 받는 모습. [연합뉴스]

대졸 신입 공채는 물론 경력직 채용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부진과 재택근무 경험 등으로 인해 인력 효율성을 재점검해보자는 인식 등이 원인이 됐다. 24일 헤드헌팅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에선 "외국계 기업은 20% 이하, 국내 기업은 50% 이하"라는 말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지난해와 비교할 때 경력직 구직 의뢰가 외국계는 80%가, 국내 기업은 50%가 줄었단 의미다. 외국계 기업의 경력직 채용 감소는 본사가 있는 유럽이나 미국의 코로나19 타격이 한국보다 훨씬 큰 것이 원인으로 풀이된다.

[기업딥톡?]코로나 불황에 꽁꽁 얼어붙은 경력직 채용

헤드헌팅 업체도 구조조정  

경력직 채용 시장의 부진은 이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헤드헌팅 업계엔 직격탄이다. 최근 외국계 B 헤드헌팅 업체는 30여 명의 헤드헌터 중 30%가량을 물갈이했다. 성과가 떨어지는 헤드헌터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를 신규 인력으로 채웠다. 이 회사 출신으로 최근 IT기업에 이직한 조미경(가명) 씨는 “헤드헌팅 업계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성사시킨 채용 실적에 맞춰 성과급을 받는 보상 구조이긴 하지만, 요즘엔 더 엄격하게 성과 잣대를 적용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대기업 내 계열사 간 이동인 소위 '내부 이직'도 얼어붙었다. 한 예로 롯데그룹이나 GS그룹을 비롯한 국내 주요 대기업의 경우 일정 기간 그룹 지주회사 등에서 근무하면 원래 소속 계열사나 그룹 주력사 등으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이들 그룹 내 일부 계열사들의 실적이 악화하면서 계열사에 있던 인원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재계 관계자는 "이젠 주력 계열사라도 한 치 앞을 바라보기 힘든 상황인 만큼 무작정 위에서 내려보내는 인원을 받긴 어렵다"며 "코로나19로 국가 간 무역장벽뿐 아니라 계열사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50대 이직자가 직격탄 맞았다  

경력직 구직에 드는 기간도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최근 취업플랫폼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최근 1년간 이직에 성공한 직장인 536명을 대상으로 ‘전 직장을 퇴사하고 새 직장에 취업하기까지의 이직 준비 기간’을 물은 결과 평균 4개월로 집계됐다. 반면, 이들이 생각하는 적정 이직 공백 기간은 평균 2.5개월이었다. 특히 40대 직장인의 이직 공백기는 4개월, 50대는 평균 5.3개월로 각각 조사됐다. 변지성 잡코리아 팀장은 "이직 준비를 할 때도 첫 직장에 취업할 때만큼 충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자료 잡코리아ㆍ알바몬

자료 잡코리아ㆍ알바몬

이런 와중에서 가장 취약한 건 50대 이상 구직자다. 올 초 중견기업 임원으로 퇴사한 김종국(가명) 씨 역시 “매일 헤드헌터에서 이력서를 보내고, 취업 사이트를 살펴보고 있지만, 헤드헌터들에게서 전화 한 통 없다”고 했다. 본인의 경력 등에 비춰볼 때 한참이나 떨어지는 지방 소재 기업ㆍ기관 등에까지 지원했지만, 고배를 맛봤다. 생각보다 구직 경쟁이 치열했던 탓이다. 그는 “마음을 편안히 갖고 재충전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불쑥 불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경력직 심사 잣대 더 엄격해져 

SK이노베이션 관계자들이 언택트 채용을 위한 모의 화상면접을 진행 중이다. 사진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관계자들이 언택트 채용을 위한 모의 화상면접을 진행 중이다. 사진 SK이노베이션

물론 삼성그룹과 SK그룹 등 일부 대기업과 네이버ㆍ카카오 같은 정보기술(IT)업체들은 예정대로 경력직 채용을 이어가고 있다. 한 예로 올 1분기 사상 최악의 적자로 어려움을 겪었던 SK이노베이션도 경력직 채용을 진행 중이다.

물론 한가지 확연히 달라진 게 있다. 익명을 원한 헤드헌팅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크게 학력ㆍ경력ㆍ업무실적 중 한 가지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눈에 띄는 장점이 있다면 채용했다"며 "이제는 평가 항목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한 점이 있으면 선발하지 않는다. 경력직 채용에 있어 확실히 매수자(기업) 우위의 시장이 됐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러니 경력 지원자 중 과거에 자신이 다녔던 회사로 복귀하는 ‘연어족’도 늘고 있다. 최근 IT업체에서 이전 직장이었던 금융기업으로 이직한 김 모 씨도 그랬다. 김 씨는 “IT업체로 갔지만, 기대했던 분위기나 실적과는 거리가 멀었다”며 “다시 원래 회사로 오면서 직급은 IT업체에서보다 낮아졌지만, 계속 있다가 회사와 함께 공멸하는 것보단 다소 손해를 보고서라도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올 3분기 경력직 보릿고개 온다 

업종을 떠나서 올 3분기가 ‘경력직 채용시장’의 진짜 불황기가 될 것이란 데엔 이견이 적다. 경력직 채용의 경우 평균 2~3개월 이상이 걸린다. 올 1ㆍ2분기엔 이뤄진 채용은 지난해 말 공고된 것들이 많다는 얘기다. 반면 올 상반기엔 구인 희망 기업이 극히 적어 3분기 경력직 일자리 보릿고개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글로벌 헤드헌팅 업체인 NGS코리아의 양영호 대표는 “이직을 희망한다면 현재 재직 중인 기업에서 성과 와 평판을 더 단단히 다져둬야 한다”며 “어쨌든 당분간은 섣불리 이직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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