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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현옥의 시시각각

나의 호의가 당신의 권리가 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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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영국 런던에서 연수 중이던 2017년 늦은 봄,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우편물이 하나 날아왔다. ‘내 인생에 이때 아니면 이렇게 수준 높은 공연을 이 가격에 다시 볼 기회는 없다’며 온갖 공연을 찾아봤던 터라 뒤늦게 도착한 공연 표려니 했다. 열어 보니 ‘당신만의 좌석을 갖게 되는 특별한 경험’이란 문구를 앞세운 ‘좌석 기부(Name a seat)’ 안내문이 동봉돼 있었다.

기부금 유용 의혹, 참여 강요까지 #선의의 발로인 기부 의미는 퇴색 #나의 호의가 목적에 맞게 쓰여야

좌석 기부는 개인 맞춤형 ‘메세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공연장 내 좌석 위쪽 황동 명판에 자신이나 혹은 기억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다. 좌석의 위치에 따라 가격은 1000파운드(약 151만원)~1만 파운드(약 1511만원)로 다양하다(당시 가격은 좀 더 쌌던 듯하다). 언감생심이지만 3초쯤 ‘괜찮네’라고 생각했다. 물론 얇은 지갑을 여는 데는 실패했지만, ‘문화적 허영심’을 제대로 저격한 기부 마케팅은 놀라웠다.

선의와 호의를 겨냥한 맹공에 백기를 든 적도 있다. 2000년대 초반 해외 아동 후원 단체와 함께 간 캄보디아 취재에서 열 살도 안 된 여자아이들이 매춘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후원자의 길에 들어섰다. 또 다른 후원 단체의 출장에 동행한 뒤엔 작은 후원금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다소 순진한 믿음으로 결연했다.

기부의 대표적인 연관 검색어는 ‘연말정산 소득공제’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기부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기꺼이 지갑과 주머니를 여는 선의와 호의를 베풀게 하는 동기가 있게 마련이다. 독일 경제학자 하노 벡은 ‘기부의 즐거움’과 ‘감정의 면죄부’를 주요 동인으로 꼽았다. 감사와 칭찬,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한 감정이 즐거움에 맞닿아 있다면,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행복을 기꺼이 나눌 마음을 먹는 것은 ‘감정의 면죄부용’ 기부인 셈이다. 사람들이 백기를 드는 지점이다. 이에 더해 다소 속물적이지만 내가 3초간 고민했던 ‘과시용 기부’도 있을 터다.

어떤 의미에서 기부는 독특한 행위다. 사실 누군가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또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대가를 치르거나 상당한 마찰을 겪어야 한다. 노동을 제공해 돈을 옮겨 오면 밥벌이가 된다. 밥벌이의 고단함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속이거나 몰래, 혹은 완력을 써서 남의 것을 가져가거나 남의 것을 빼돌려 내 것으로 만들면 사기나 절도·강도·횡령죄 등 각종 재산죄를 저지른 것이 돼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심지어 내 것을 자식에게 넘겨줘도 증여세나 상속세를 내야 한다.

기부는 이런 마찰에서 비켜서 있다. 감사와 칭찬이 따르고, 돈이 옮겨감에도 제동이 걸리기보다 장려의 대상이 된다. 한국의 경우 지정기부금 단체에 기부한 사람은 세액공제(15%)를 받을 수 있다. 기업도 필요 경비로 인정돼 세금을 줄일 수 있다. 기부를 받는 곳은 ‘좋은 일’을 하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설 수 있다. 아름다운 결론이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다. ‘나의 호의’가 ‘누군가의 권리’가 될 때다. 호의가 눈먼 돈이 되고, 기부의 의미는 퇴색한다. 최근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의 부실 회계와 기부금 유용 의혹이 그 위험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사상 유례없는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에 따라붙은 ‘자발적’ 기부도 그렇다. 대통령과 기관장·기업 대표 등이 기부 대열에 합류하며 실려 오는 압박의 무게 탓에 아무리 ‘자발’이란 말을 앞세워도 누군가가 ‘나의 호의’를 ‘자신의 권리’인 양 호도하는 듯 느껴진다.

‘나의 호의’가 ‘나의 권리’란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호의’가 ‘그들의 권리’가 되는 것을 방관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것이 기부든, 기부 중단이든, 재난지원금 소비든 우리의 호의가 그 목적을 향해 가게 해야 한다. 호의에도 냉정함이 필요하다.

하현옥 복지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