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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뉴딜 성공하려면 다음 세대 위해 기득권 절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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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상협 KAIST 글로벌전략연구소 지속발전센터장전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

김상협 KAIST 글로벌전략연구소 지속발전센터장전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에 ‘그린 뉴딜’ 추가 방침을 밝힌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무엇을, 왜, 어떻게 할지 분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녹색성장과 지속발전 전략을 고민해온 사람으로서 그린 뉴딜 성공을 위한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문 대통령의 그린 뉴딜 정책 환영 #청와대, 이해당사자 조정 역할해야

먼저, 그린 뉴딜이 왜 필요한지 이유와 목적이 선명해야 한다. 뉴딜은 비상한 경제위기 때 정당화되는 특단의 대규모 재정 투입 전략이다. 하지만 대규모 재정 투입이 뉴딜이 되는 건 아니다. 뉴딜에는 이해당사자 간 ‘새로운 거래’가 있어야 한다.

그린 뉴딜의 목적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경제·사회 전반을 ‘저탄소 녹색체제’로 전환하는 데 있다. 이는 평상시라면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인데 코로나19 위기가 그 계기를 만들고 있다. 신종 전염병의 배후에 기후변화라는 더 큰 위험이 내재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코로나19로부터 회복되려면 ‘깨끗한 녹색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성명을 내놓은 건 그래서다.

그 같은 전환은 화석연료인 석탄·석유·가스가 내뿜는 온실가스를 파격적으로 감축해야 가능하다. 여기에 드는 막대한 재원을 재정으로 뒷받침하고, 기존 산업과 일자리 전반을 탈 탄소의 선순환으로 바꾸자는 것이 거래의 핵심이다. 유럽연합(EU)이 올 초 1조 유로(약 1353조원) 규모의 그린 뉴딜 계획을 공식화한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전 지구적으로 퍼져야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만큼 여기에 동참할 국가를 찾는 것이 필수적이다.

구테헤스 사무총장이 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바이러스 대응을 선도한 K 방역처럼 한국이 그린 뉴딜도 선도해 달라”고 촉구했다. 여기에는 2009년 1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50조원 규모의 그린 뉴딜을 단행했던 한국의 전례도 작용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 사회는 녹색성장을 주도했던 한국을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그린 뉴딜이 한 차원 높게 발전하려면 다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첫째, 국정 최고 수준의 설계자와 조정기구가 필요하다. 그린 뉴딜은 단순한 환경보호 운동이 아니라 경제시스템 전반을 저탄소 방향으로 바꾸는 만큼 고도의 통찰력과 폭넓은 식견을 갖춘 인물과 팀이 이끌어야 한다. 범정부적 조정 역할도 긴요하다. 그린 뉴딜은 특성상 환경·에너지 부처는 물론 거의 모든 부처가 관련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전문가 그룹을 토대로 시민사회를 포함한 이해당사자의 종합적 조정자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둘째, 지속가능한 청정 인프라 구축과 일자리 창출에 주력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그린 뉴딜 인프라는 에너지·물·교통·통신은 물론 방역과 미세먼지, 쓰레기 처리까지 포괄하는 ‘청정 순환경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런 통합 인프라 구축을 토목공사로 매도하거나 특정 분야에 치중하는 건 곤란하다. 빌 게이츠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해서라도 온실가스 배출 제로인 원전을 해체하는 게 합리적인지도 재검토해야 한다.

셋째, 다음 정권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중장기 그린 뉴딜이 돼야 한다. 그린 뉴딜은 최소 2030년, 나아가 2050년 탄소 중립 시계를 두고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계속 추진돼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필자가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그린 뉴딜을 입안할 당시 『글로벌 그린 뉴딜』을 쓴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20년 이상 지속할 거버넌스가 중요하다”고 말해줬지만, 2013년 정권이 바뀌자 중단된 아픈 사례가 있다. 그린 뉴딜은 다음 선거의 표를 위한 거래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 기득권 욕구를 절제하자는 거래이기 때문이다.

김상협 KAIST 글로벌전략연구소 지속발전센터장·전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