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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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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준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준영 중앙홀딩스 커뮤니케이션팀 기자

김준영 중앙홀딩스 커뮤니케이션팀 기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2018)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지구 평면론자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격인 마크 서전트를 비롯한 지구 평면론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지구는 북극을 중심으로 한 원반 모양이며 그 끝은 약 60m 높이의 남극 얼음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원반 가장자리 위로는 돔 형태의 유리막이 쳐져 있고, 태양과 달이 그 유리막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낮과 밤이 생긴다고 한다.

극소수 괴짜들의 무시할만한 주장 같지만, 문제는 실제 미국 일각에서 확산하는 주장이란 점이다. 미국의 유명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2%(650만여명)가 지구 평면설을 믿는다고 한다. 지난 2월엔 한 미국인이 지구 평면설을 입증하기 위해 사제 로켓을 타고 하늘로 치솟았다가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이들의 믿음은 꽤 진지하다.

기원전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인공위성 5000여개가 우주에 떠 있는 2020년이 되기까지 지구가 둥글다는 무수한 증거들이 쏟아졌는데도 이렇다. 이들은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 등 각종 증거를 “권력자들이 조작한 것”이라고 치부하고, 수평선이 육안상 일자로 보이니 지구는 평평하다는 식의 그들만의 주장을 맹신한다.

지구 평면론자들이 주장하는 지구의 모습. [유튜브 캡처]

지구 평면론자들이 주장하는 지구의 모습. [유튜브 캡처]

“전 세계 과학자들이 어떻게 수천년간 내부고발자 없이 일관된 조작을 해올 수 있었느냐”는 질문이 나올 땐, 이렇게 답한다. “내가 믿고 싶은 걸 믿는 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잖아요.” 이는 지구 평면론자들이 방해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확대·재생산시키는 맥락이자, 지구 평면설이 정통 과학계에서 일찍이 버림받은 이유기도 하다.

물론 모두가 옳다고 해서, 의심하고 검증하지 말란 법은 없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존의 상식들과 모순 없이 조화를 이룰 때야 가능한 일이다. 그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유튜브를 돌려보며 ‘지구가 둥글지 않다’를 입증(?)할 모호한 정보의 파편들을 수집하고 그 패턴을 맞춰나가는 방식으론 불가능이다. 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기성 권력의 하수인’ 쯤으로 여기는 데까지 나아가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런데도 마냥 이단아 취급하기엔 씁쓸한 대목이 있다. 마크의 마지막 말이다. “만약 평면론이 사실이 아니라고 입증되더라도 저는 여기를 떠날 수 없습니다.” 한번 생겨난 집단의 믿음을 누군가 무너뜨리려 할 때마다, 그들은 그들만의 연대감으로 배타적 지구를 더욱 공고히 쌓아 올렸다.

거대한 상식을 거부하고 조그마한 조각 맞추기에 집중하다 언젠가부터 “내 편 아니면 여당” “내 편 아니면 친중파”라고 핏대를 세우는 국내의 일부 선거 조작론자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준영 중앙홀딩스 커뮤니케이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