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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도 모르는 칠곡 할매, 영어로 감사편지 138통 그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최삼자 할머니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생존용사들을 위해 쓴 영문 손편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경북 칠곡군]

최삼자 할머니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생존용사들을 위해 쓴 영문 손편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경북 칠곡군]

“우리는 에티오피아를 잊지 않을 겁니다. 멀고 먼 나라 한국 전쟁 때 목숨을 걸고 자유를 지키려 온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 칠곡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고생하는 에티오피아에 마스크 보내기 운동에 참여하게 돼 참 기쁩니다.”

최삼자씨 “Thank you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에 마스크 보내기 동참 #며느리가 번역해준 편지 베껴 써

한국전쟁 70주년을 앞두고 70대 시골 할머니가 해외 참전용사에게 손편지 138통을 썼다. 주인공은 경북 칠곡군 석적읍에 사는 최삼자(73) 할머니. 최 할머니는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용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손편지 138통을 일일이 썼다.

최 할머니는 최근 칠곡군이 추진 중인 ‘6037 캠페인’ 소식을 접하고 손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6037 캠페인’은 6·25 참전 에티오피아 용사와 유가족에게 마스크를 전달하는 캠페인. ‘6037’은 당시 참전한 용사들 숫자다. 이중 생존 참전용사는 138명. 최 할머니가 편지 138통을 쓴 이유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에티오피아는 검사 장비와 마스크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달 이 캠페인을 제안한 백선기 칠곡 군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70년 전 전쟁에 참전한 6037명의 에티오피아 젊은이는 253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켰다”며 “지금 에티오피아는 코로나19로 더 큰 어려움에 부닥쳐있다. 검사 키트와 마스크조차 없다. 이제 우리도 마음을 모아 6037장의 마스크를 보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글로 쓴 손편지. 이 편지를 며느리가 번역해 줬다. [사진 경북 칠곡군]

한글로 쓴 손편지. 이 편지를 며느리가 번역해 줬다. [사진 경북 칠곡군]

영어를 모르는 최 할머니는 우선 한글로 편지를 쓰고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며느리 권지영 교수에게 번역을 맡겼다. 그렇게 번역된 영어 편지를 보고 최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듯 영문 편지를 썼다고 한다. 138통을 다 쓰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편지에는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겠다는 감사의 마음과 필터 교체형 면 마스크 사용법이 적혀 있다. 최 할머니는 “동봉한 필터를 매일 바꿔서 사용하시고 늘 건강하시고 코로나19를 이겨내십시오. 행복하십시오. 사랑합니다”라고 썼다.

이렇게 작성된 편지는 지난 23일 칠곡군에 전달됐다. ‘칠곡 할매’의 특별한 손편지는 다음 달 초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을 통해 마스크와 함께 참전용사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최 할머니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번영과 행복은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에게 응원과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기회를 준 칠곡군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백선기 군수는 “전국 각지에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위한 마음과 정성이 칠곡군에 모이고 있다”며 “앞으로도 6·25 전쟁 당시 평화와 자유를 지켜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숭고한 기여와 희생에 대해 결초보은할 것”이라고 전했다. 칠곡군은 6·25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다. 다부동 등 전적지가 곳곳에 있다. 군사 전략적 요충지에 있어 6·25 전쟁뿐 아니라 임진왜란·병자호란 당시에도 격전지로 꼽혔다.

칠곡=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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