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민간인' 임종석, 유엔사 작심 비판에…美국무 이례적 논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7년 11월 6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희경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의원의 청와대 비서실 전대협 출신 인사 비판 발언에 대해 유감의 입장을 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11월 6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희경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의원의 청와대 비서실 전대협 출신 인사 비판 발언에 대해 유감의 입장을 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은 민간인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발언에 미국 국무부가 이례적으로 논평을 냈다. 임 전 실장이 교착 상태인 남북, 북미 관계를 풀기 위해 “미국에 일부 부정적인 견해가 있어도 문재인 대통령은 일을 만들고 밀고 가려 할 것”이라고 말한 게 발단이다. 이에 미 국무부는 “남북 협력은 비핵화에 발맞춰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美국무부, '야인' 임종석 발언에 이례적 논평 #“유엔 결의안 준수해야" "남북협력, 비핵화와 보조” #韓 5.24 무력화 등 '나홀로 돌파' 조짐…한ㆍ미 갈등 우려 #

미 국무부는 23일(현지시간) 임 전 실장의 발언에 대한 미국의 소리(VOA)의 질의에 “미국은 남북 협력을 지지한다”면서도 “남북협력은 반드시 비핵화의 진전과 발을 맞춰야(lockstep)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 정부가 현직 정부 관계자가 아닌 임 전 실장의 발언에 대해 논평을 낸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막후 실세인 임 전 실장의 발언에 그만큼 무게감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가 된다. 임 전 실장은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외교특별보좌관 직함을 달고 있지만, 엄밀히 민간인 신분이다.

 미 국무부는 또 VOA에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준수해야 한다”며 “미국과 우리의 동맹 한국은 북한에 일치된 대응(unified response)을 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도 했다. “모든 회원국은 안보리 결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은 미 정부가 한국과 대북정책의 시각차가 있을 때 내놓는 우회적인 표현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올 초 신년사를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를 띄웠을 때도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앞서 임종석 전 실장은 22일 '창작과 비평' 인터뷰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겸 부장관과 유엔사령부를 향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2018년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됐는데 꽤 압박을 가한다. 말하자면 자기가 ‘오케이’ 하기 전까지 ‘올스톱’하라는 거다”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그때 우리 내부의 모습이 극복해야 할 지점인지도 모르겠다. 외교부 스톱, 통일부도 얼음 땡…”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에서 국장급, 실장급이 안 된다 하면 우리는 아무런 결정도 못 한다”고도 했다.

 한·미 워킹그룹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제재 결의에)과도한 해석을 내세우는 워킹그룹에 통일부가 들어가 뭘 할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이 2018년 10월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면담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이 2018년 10월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면담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임 전 실장은 또 “지금처럼 제재를 너무 방어적으로 해석해서는 남쪽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며 “유엔사도 말도 안 되는 월권을 행사하려 한다”고도 했다. 앞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도 지난해 9월 한 시상식에서 “유엔사가 자꾸 제동을 걸어 한반도 평화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임 전 실장의 작심 인터뷰는 그간 물밑에 있던 청와대와 미 정부 간 대북정책의 시각차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임 전 실장의 이번 인터뷰는 한국 정부가 대북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도록 공간을 미리 만들어주려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 차를 맞아 이처럼 정부 안팎에선 미국의 의지와 별도로 대북정책을 끌고 가겠다는 ‘나홀로 돌파’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 내부의 허들로 여겨지던 '5.24 조치'에 대해선 통일부가 “역대 정부에서 유연화 조치 등을 통해 실효성이 상당 부분 상실됐다”(20일 정례 브리핑)는 입장을 이미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5.24 조치가 유명무실해졌다고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도입된 5.24 조치는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불허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다 현 정부 대북정책의 키플레이어로 꼽혀 온 임 전 실장이 외부의 허들인 미국발 대북제재를 “방어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비판하는 발언을 한 셈이다. 워싱턴 일각에서 한국에 대한 여론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조슈아 스탠튼 미 대북제재 전문 변호사는 17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임종석 전 실장과 문정인 특보를 콕 집으며 ”이들과 같은 문 정부 인사들은 북한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기도 전에 대북제재를 완화하려 한다”며 “한·미 사이에 점점 더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27일 강원 고성군 현내면 제진역에서 동해북부선 추진 기념식에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권구훈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식수 표지석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27일 강원 고성군 현내면 제진역에서 동해북부선 추진 기념식에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권구훈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식수 표지석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황준국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은 “미국과 다소간 갈등이 있더라도 북한과 뭔가 풀어나갈 수 있다면 시도해볼 만하겠지만, 현재로선 한국이 제안하는 남북 교류 사업이 북한에도 전혀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다는 게 현실”이라며 “미국과 갈등을 불사하고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미국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중국과 냉전에 돌입한 와중에 동맹국인 한국이 대북정책으로 ‘마이웨이’하는 모양새가 되면, 미국에 철저히 밀착하는 일본과도 대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유정·백희연 기자 uu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