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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가 숨긴 곳도 10분이면 안다···전투력 세진 '질병 탐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태원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업주 등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 곳곳을 방역 중 문제가 발생한 클럽 앞을 꼼꼼하게 방역하고 있다. 뉴스1

이태원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업주 등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 곳곳을 방역 중 문제가 발생한 클럽 앞을 꼼꼼하게 방역하고 있다. 뉴스1

지난 6일 오전 10시15분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에 경기도 역학조사관이 도착했다. 수원병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격리병상이다. 현장 역학조사관은 A씨(29)의 증상 발현일과 함께 4월 말 5월 초 ‘황금연휴’ 기간 때 동선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드러난 확진자 황금연휴 동선 

코로나19는 증상 발현 이틀 전부터 바이러스의 몸 밖 배출이 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증상 발현 시점부터 격리 전까지 제대로 파악해야 정확한 접촉자 범위를 추릴 수 있다. A씨의 증상 발현일은 지난 2일이다. 공교롭게도 ‘그날’ A씨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 등 여러 곳을 오간 게 확인됐다. 이후 발생한 확진자까지 포함한 역학조사 내용을 기반으로 추가 방역대책이 세워졌다.

황금연휴 기간 앞뒤로 이태원을 다녀간 시민들에게 진단검사가 수차례 안내됐고, 익명검사 방법도 도입했다. 이태원 건과 관련해 현재 7만명 가까운 인원이 검사를 받았다. 이 가운데 219명(23일 기준)이 확진됐다. 다행히 우려했던 이태원 발(發) 환자 폭증은 발생하지 않았다.

서울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확진 소식에 시민들이 용산구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를 찾아 검사를 받고 있다. 뉴스1

서울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확진 소식에 시민들이 용산구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를 찾아 검사를 받고 있다. 뉴스1

합리적 추론·의심으로 디테일 찾아 

역학조사관은 ‘질병 탐정’으로 불린다. ‘의학 탐정’을 자처하는 이들이 확진자의 동선·접촉자·감염경로 파악에 집중하는 것은 추가 감염자를 한 명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방역당국은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바이러스와 분·초를 다투는 피 말리는 싸움을 벌인다.

역학조사의 출발은 대면조사다. 하지만 대게 환자는 “어디 어디를 방문했다” 식의 주요 장소를 중심으로 자신의 동선을 진술한다.

숨은 디테일을 찾는 게 역학조사관의 역할이다. ‘어떤 교통수단으로 이동했는지’ ‘건물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는지’ ‘심지어 밥은 누구랑 먹었는지’와 같은 상세한 내용을 확인한다. 보통 5~10명으로 한 팀을 이뤄 퍼즐을 맞춘다. 역학조사관들은 “의심과 추론으로 공간을 메우는 게 노하우”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교회와 관련한 코로나19 환자가 확인돼 임시 폐쇄된 교회. 연합뉴스

서울의 한 교회와 관련한 코로나19 환자가 확인돼 임시 폐쇄된 교회. 연합뉴스

CCTV는 실내 상황 파악할 때 

역학조사 때는 확진자의 휴대전화 위치정보, 신용카드 사용명세도 활용된다. 환자가 일부러 동선을 숨기거나 기억해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 확진자의 경우 증상 발현일로 진술한 날보다 약국 결제일이 앞섰다. 결국 이 환자는 증상이 자신이 기억한 것보다 “더 먼저 일어났다”고 바꿔 말했다.

폐쇄회로TV(CCTV)는 동선 파악보다는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는 게 핵심이다. 예를 들어 환자가 클럽을 방문한 적 있다고 진술하면 ‘환자나 주변 방문자들이 마스크를 썼는지’ ‘비말(침방울) 전파위험이 있는지’ 등을 집중해 살핀다.

코로나 19 역학조사 지원시스템 시연장면. 가상의 인물 동선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코로나 19 역학조사 지원시스템 시연장면. 가상의 인물 동선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한 단계 진화한 역학조사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국내 역학조사는 한 단계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월 26일부터 빅데이터 기반의 ‘코로나19 역학조사 지원시스템’이 보조 수단으로 가동되면서다. ‘질병 탐정’의 전투력이 한층 강화됐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경찰청에 확진자의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여신금융협회를 거쳐 신용카드사에 결제기록을 각각 요청해야 했다. 이마저도 일일이 각 기관과 기관 사이에 공문을 주고받으면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원 시스템은 클릭 한 번에 3개 통신사, 22개 신용카드사에 연계된 정보를 신청해 받을 수 있다. 덕분에 하루 이상 걸리던 확진자의 동선 파악이 10분 안팎으로 크게 단축됐다.

 코로나19 역학조사 지원시스템' 관련한 외신 브리핑. 연합뉴스

코로나19 역학조사 지원시스템' 관련한 외신 브리핑. 연합뉴스

'튕김' 현상 등 단점도 

신속·정확성은 그만큼 향상됐지만, 위치 정보 값의 수십m 오차범위가 존재한다는 게 방대본의 설명이다. 역학조사관들이 말하는 ‘튕김’ 현상도 단점이다. 흔히 대중교통을 타고 빠르게 이용할 때 이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현금 결제도 잡히지 않는다. 특히 실제 코인노래방처럼 비말(침방울)로 인한 감염위험이 크지만, 현금 계산이 많은 곳은 확진자 동선에서 누락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방대본 박영준 역학조사팀장은 “지원 시스템을 통해 ‘확진자가 어느 택시를 탔는지’ ‘어느 식당에 몇시에 갔는지’ 확인이 가능하다”며 “그만큼 역학조사가 진화한 건 맞지만 아직 적용에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시스템은 보조수단”이라고 말했다.

신천지대구교회 모습. 연합뉴스

신천지대구교회 모습. 연합뉴스

신천지 0번 감염자 여전히 오리무중 

물론 국내 역학조사의 한계도 있다. 대구·경북 지역의 코로나19 대규모 감염을 알렸던 신천지 교회 최초 감염자(31번 환자)의 감염경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4개의 시나리오는 세울 수 있었지만 의미 없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또 확진자의 동선파악은 ‘감염병 예방관리법’에 근거하지만 개인정보 침해 문제도 여전히 논란된다.

자가격리 위반자르 채우는 안심밴드. 뉴스1

자가격리 위반자르 채우는 안심밴드. 뉴스1

자가격리자 관리 엄격 

신종 감염병을 겪으면서 확진자 뿐만 아니라 자가격리자에 대한 관리방안도 마련했다. 자가격리자는 3만4624명(21일 오후 6시 기준)에 달한다.

정부는 격리자의 위치·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자가격리자 안전관리 앱’을 개발해 활용 중이다. 설치율은 93.5%다. 정부는 무단이탈자에게는 안심밴드를 채운다. 현재 안심밴드를 찬 누적 인원은 54명이다.

'K방역' 문의 쏟아져 

현재 20개가 넘는 여러 국가와 해외 기관에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문의와 요청이 이어졌다. K방역 성과로 평가받는 지점이다. 독일은 자가진단앱과 관련한 정보를, 월드뱅크는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한국의 전반적인 정책대응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보건복지부 임은정 국제협력담당관은 “해외에서 자문요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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