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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마지막 동굴 마을, 그들은 왜 어둠을 고집할까

중앙일보

입력

구이저우성의 중동묘채(中洞苗寨)는 중국의 마지막 동굴 부락이다. 이곳은 카르스트 동굴로 넓이 115m, 높이 50m, 깊이 230m로 중국 소수민족 먀오족(苗族) 100여 명이 살고 있다.

척박한 땅과 대도시로부터 떨어진 접근성, 빈약한 수입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이곳에 산다. 정부는 그들에게 좀 더 나은 주거환경을 제안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로 했다.

구이저우(貴州)성의 안순(安順)시 인근의 ‘중동(中洞·가운데 동굴이라는 의미)’ ⓒLea Li/SCMP

구이저우(貴州)성의 안순(安順)시 인근의 ‘중동(中洞·가운데 동굴이라는 의미)’ ⓒLea Li/SCMP

이곳에서 40년 이상 거주한 노인 뤄덩광은 "이곳에서의 삶이 아주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는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더위를 크게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며, 정부 관리들이 여러번 이곳을 찾아 이주를 권유했지만 단지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번거롭기 때문에 이곳에 계속 머무른다고 답했다.

1949년 중국 내전 끝날 무렵, 도적 피해 동굴로..

해발 1800m에 위치한 이 동굴은 쯔윈에서 1시간 거리인 패채촌(坝寨村)에 도착한 뒤, 산길을 달려 고채(高寨)에 닿을 무렵 시야에 등장한다. 또 다시 오솔길을 걸어 40분을 걸어야 마을에 도착한다. 뤄씨는 1949년 중국 내전이 끝날 무렵 마을 사람들이 산적, 도적을 피해 이 동굴에 처음 들어오게 됐다고 말한다.

외부와 단절된 이곳 생활은 비교적 단순하다. 그들은 자급자족한다. 나무와 대나무로 지어진 집은 대부분 동굴 앞쪽에 지어져있고 동굴 깊숙한 곳은 대부분 비어있다.

해발 1800m에 위치한 이 동굴은 쯔윈에서 1시간 거리인 패채촌(坝寨村)에 도착한 뒤, 산길을 달려 고채(高寨)에 닿을 무렵 시야에 등장한다. 또 다시 오솔길을 걸어 40분을 걸어야 마을에 도착한다. 뤄씨는 1949년 중국 내전이 끝날 무렵 마을 사람들이 산적, 도적을 피해 이 동굴에 처음 들어오게 됐다고 말한다.

외부와 단절된 이곳 생활은 비교적 단순하다. 그들은 자급자족한다. 나무와 대나무로 지어진 집은 대부분 동굴 앞쪽에 지어져있고 동굴 깊숙한 곳은 대부분 비어있다. 이 동굴에는 닭, 개, 소, 돼지 등의 가축도 있다. 식수는 동굴에서 형성돼 떨어지는 물을 받아 해결한다. 물이 고여 만들어진 작은 웅덩이도 있다. 사람들은 이 동굴촌의 환경을 두고 "에어컨이 있는 큰 방에서 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구이저우성의 중동묘채(中洞苗寨)

구이저우성의 중동묘채(中洞苗寨)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이킹 하던 미국인이 동굴마을을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그는 동굴 안에 전기가 공급되도록 가구당 800위안을 제공하고, 학교 교사에게 급여도 제공했다. 또 종종 선물을 갖고 오는 등 이 마을에 여러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학교는 현재 문을 닫았다. ‘중국은 혈거인(穴居人·동굴 속에 사는 사람들) 사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폐쇄된 것. 학생들은 걸어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로 등하교를 하고 있다.

구이저우성의 중동묘채(中洞苗寨)

구이저우성의 중동묘채(中洞苗寨)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빈곤을 종식시키고 외딴 산촌을 개간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지난 7년 간 800만 명 이상의 사람을 도시로 이주시켰다. 특히 이 동굴마을 주민의 연평균 수입은 약 540달러(한화로 65만원, 하루 1,830원)로 세계은행의 국제 빈곤선(육체적 능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생활수준)인 하루 1.9달러(한화 약 2300원)를 밑돌았다. 지역 주민들이 재배하는 주요 작물인 옥수수는 가끔 이 지역에 서식하는 원숭이들에게 뺏기는 일이 다반사다.

구이저우성의 중동묘채(中洞苗寨)

구이저우성의 중동묘채(中洞苗寨)

이 동굴은 쯔윈거투허촨동(Ziyun Getuhe Chuandong, 紫云格凸河穿洞)을 방문한 관광객이 아주 가끔 들리는 수준이다. 소수의 관광객은 이들에게 점심을 사기 위해 잠깐 머무른다. 자급자족, 국가의 지원 외에는 수입처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지방정부는 이곳 사람들에게 동굴을 관광자원으로 만들어 관광소득 일부는 나눠주고, 현재 갖고 있는 농토 소유도 인정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도시로 나간다고 해서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산다는 보장이 없다"며 거부의사를 나타냈다고 한다.

정부에서 지어준 벽돌집으로의 이주도 한 차례 있었으나, 이들은 동굴에서 살 때와 달리 각종 유지비가 드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고, 비가 올 때, 더운 한 여름에 극심한 불편을 겪었다. 대부분은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그러나 2020년이 되자 이곳 주민은 정부의 이주 정책에 큰 압박을 느끼고 있다. 무위도식, 안빈낙도의 삶이 체질이기 때문일까? 눈을 감으면 오롯이 '자연의 소리'만 동굴에 울려 퍼진다는 이곳. 도시인들이 보기엔 불편 투성이인 이곳이 고향이고 삶의 터전인 그들은 미래는 어떻게 될까.

차이나랩 임서영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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