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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만의 모녀 상봉 만들었다···범인 대신 실종자 쫓는 이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7년 9월 30일. 중학교 2학년 이모(14)양이 실종됐다. 밤늦도록 딸이 돌아오지 않자 부모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탐문 수사에 나선 경찰은 10월 5일 이영학을 서울 망우동 자택 인근에서 범인으로 체포했다. 이영학은 딸과 함께 희귀병인 거대 백악종을 앓아 대중에게 ‘어금니 아빠’로 알려졌다. 자신의 딸에게 친구를 데려오게 해 수면제를 먹여 감금하고, 다음날 살인했다. 이양은 강원도 영월군의 한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 사건은 일선 경찰서에 실종수사 전담팀이 생긴 계기가 됐다.

[김기환의 나공?]

매년 5월 25일 ‘세계 실종 아동의 날’을 앞두고 경찰서 실종팀이 주목받는다. 16년간 경찰서 강력팀에서 일하다 2017년 실종팀 출범 당시부터 합류한 이성철(49) 서대문경찰서 실종팀장의 수사일지를 들여다봤다.

범인 대신 실종자 쫓는다

이성철 서대문경찰서 실종팀장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서대문서.

이성철 서대문경찰서 실종팀장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서대문서.

실종팀은 24시간 4교대로 돌아간다. 4명이 주간(오전 9시~오후 6시)ㆍ야간(오후 6시~오전 9시)ㆍ휴무ㆍ비번(非番)  순서로 돌아간다. 접수하는 사건은 일평균 10여건.

“112로 신고가 들어오면 각 경찰서로 사건을 내려보냅니다. 사건에 대한 정보를 찾고,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탐색하고, CCTV로 동선을 추적하고, 주변을 탐문하고…. 대상만 다르지 범인 쫓는 방식과 같습니다.”

다만 실종 사건의 경우 휴대전화를 끄고 잠적하는 경우가 많다. 추적이 어렵다는 얘기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수색 범위는 넓어지고, 생존 가능성은 작아진다. 남겨진 가족은 실종에 따른 우울감ㆍ죄책감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어금니 아빠’ 사건처럼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좌충우돌 사건 해결

한 번은 사춘기를 맞은 여중생이 부모와 불화로 가출했다. 휴대전화를 끄고 잠적했다. 실종 4일 만에 모텔에서 성인 남성 3명과 함께 발견했다. 남성들은 실종아동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여중생에겐 심리 치료를 지원했다. 1년 뒤 여중생으로부터 “덕분에 가족과도 잘 지내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다니고 있다”는 감사 인사를 받았다.

‘자살하겠다’는 메시지만 남긴 채 사라지면 더 골치 아프다. 한 번은 지방으로 발령받은 교사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하겠다는 메시지를 주변에 남기고 실종됐다. 주변 교사를 탐문하고, 가끔 휴대전화를 켰을 때 위치를 좇았다. 일주일 만에 그를 발견한 건 한강 다리에서 투신하기 직전이었다. 이런 식으로 2년 6개월 동안 실종사건 4500건을 처리했다.

52년 만에 모녀상봉

실종 사건은 곧 과학 수사의 다른 말이다. 장기 실종 사건의 경우 사전 등록한 지문ㆍ사진ㆍ신상정보를 활용할 뿐 아니라 유전자 대조까지 한다. 2018년 9월 50여년 전 미국으로 입양된 딸(57)이 “부모님을 찾고 싶다”며 실종팀을 찾았다. 이 팀장은 딸이 최초 입양된 서울 은평구 소재 영아원부터 들렀다. 어머니 소재를 찾아내 딸에게서 채취한 유전자와 대조하기 위해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딸의 친어머니와 유전자가 비슷하지만 친자 관계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이 팀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1월 친아버지를 찾아내 유전자를 채취했다. 국과수 회신 결과는 ‘딸의 유전자와 99.99% 일치’. 아버지는 “생활 형편이 어려워 딸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고, 딸을 돌봐주던 할아버지가 전라남도 함평에서 서울로 딸을 데려오던 길에 잃어버렸다”고 설명했다. 3월 다시 한국을 찾은 딸은 실종팀 사무실에서 52년 만에 친부모와 다시 만났다.

내 가족이 실종된 것처럼

이 팀장은 “가족 실종사건의 경우 대부분 ‘사라질 이유가 없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가정불화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얘기하지 않아 실종자를 추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함께 술 마시던 친구가 사라졌다는 신고에 출동해 1시간을 뒤졌습니다. 결국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잠든 친구를 발견했습니다. 신고자로부터 ‘신고했으면 빨리 찾아내야지 뭐하느냐’는 핀잔을 듣는 경우도 많습니다. 99명을 찾아내도 1명을 놓치면 안 되는 경찰의 숙명이죠.”

실종팀 사무실 벽엔 ‘내 가족이 실종된 것처럼’이란 문구가 걸려있다. 그가 현장으로 나갈 때마다 돌아보는 문구다.

김기환의 나공

[나공]은 “나는 공무원이다”의 준말입니다. 정부 부처와 공기업을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각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며 헌신하는 이들의 고충과 애환, 보람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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