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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핀테크 가고 테크핀…금융시장 어떻게 바뀔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명주의 비긴어게인(27)

실록이 아름답게 빛나는 계절 5월에 생각나는 분이 있다. 그분의 정원이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진다. 그 댁을 방문할 때마다 “어서 와요” 신발도 갈아 신지 않고 실내화발로 현관문을 활짝 열고 나와 나를 환하게 맞이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거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예쁜 실내화가 나를 반기고 있다. 예쁜 실내화를 신고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화사한 빛이 눈 부시다. 거실 넘어 정원에서 들어오는 햇살이다. 그 햇살과 꽃향기에 끌리듯 거실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간다. 지난 10년 동안 직접 손수 가꾼 정원이다. 매해 새롭게 달라져 벌써 200여 가지가 넘는 화초와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물오른 나무와 활짝 핀 꽃은 계절의 여왕 자태를 눈부시게 뽐내고 있었다. 이분의 정원이 세월이 갈수록 오히려 더 새롭게 더 생기 있게 빛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열린 정원. [일러스트 강경남]

열린 정원. [일러스트 강경남]

보험업계에서 다시 은행으로 이직했을 때 일이 생각난다. 은행, 증권, 손해보험, 생명보험 업계 등을 두루 거친 경력을 인정받아 임원으로 입사했지만 나는 그 조직의 이방인이었다. 상대적으로 나이도 어린 여성 임원이기에 보수적인 금융권에서 보기 드문 인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방을 노크할 때마다 늘 “어서 와요”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심지어 내 사무실까지 친히 찾아와 이제는 은행도 변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면서 새로운 변화에 대해 함께 자주 논의했다. 그중의 하나가 비대면 채널 활성화였다. 더 이상 사람이 필요 없는 은행이 도래하니 현재 지점망에 의존하는 관행을 과감히 깨고 변화와 혁신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했다.

그분이 퇴직하게 되었을 때 본인이 떠나는 것은 후배에게 새로운 기회라며 은행의 새로운 변화를 다 함께 이루어내기를 당부했다. 과거를 탓하지 않고 은행의 관습을 과감히 타파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 임원 한 분을 보내게 되어 가슴이 아팠다.

주판알이 대신하던 은행 업무가 전산기기를 통해 전산화되면서 1980년대 중반 금융업계에 최초로 비대면 채널이 도입됐다. 사람이 아닌 기계가 은행거래를 해주는 ATM과 폰뱅킹서비스가 소개되자 창구에서 직원이 다 알아서 해주는데 굳이 고객 스스로 힘들여 셀프서비스로 하는 이러한 불편한 비대면 채널을 누가 쓰겠느냐며 반대하던 목소리가 컸다.

1990년대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PC뱅킹, 인터넷뱅킹이 선을 보였을 때 PC만 있으면 은행거래를 할 수 있는 혁신적인 서비스였지만 폰뱅킹과 더불어 하나의 보조 채널로 자리매김할 뿐이라고 지적하는 소리가 많다. 그 지적이 맞는 듯 1999년 말 인터넷뱅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중은행에 등록된 고객 수는 고작 12만명에 불과했다.

2009년 스마트폰 기반 모바일뱅킹 서비스가 개시된 이후 금융시장은 스마트혁명이라는 급물살을 탔다. 그래도 지점망을 통한 대면 채널은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스마트뱅킹이 금융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금융에 기술이 융합되면서 핀테크 시대가 활짝 열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금융기관에 등록된 인터넷뱅킹 고객 수는 1억5923만명으로 그 중 모바일뱅킹 등록고객 수는 1억2095만명이다. 은행거래의 90% 이상이 비대면 채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창구를 찾는 고객 비율은 7% 미만으로 떨어졌다.

언택트 시대. [일러스트 강경남]

언택트 시대. [일러스트 강경남]

2020년 지금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전과 완전히 다른 일상을 체험하고 있다. 오프라인의 일상에서 비대면 일상으로 전환되었다. 새로운 시대, 바로 언택트 시대로 바뀐 것이다. 혁명으로 다가온 모바일 세상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휴대폰이나 모바일기기를 통해 대부분의 금융서비스가 처리된다. 지점은 아예 갈 생각을 안 한다. 오프라인 채널, 대면 채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기가 도래하면서 AI가 점점 금융권에 뿌리를 내리고 새싹을 피우고 있는 지금 핀테크가 아닌 테크핀이 그 여세를 몰아가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금융의 싹이 언택트시장을 점령할 채비를 하고 있다. 이제는 플랫폼만 있으면 은행이 된다. 기존 금융권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금융권의 판도가 바뀌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로 보인다.

새로운 시대이다. 과거의 관습에서 더 이상 안주할 수 없다. 과거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살아남는다. 바꾸는 것이 아니라 버려야 사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의 관습을 버리고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과 혁신 없이는 새로운 시대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미래의 문. [일러스트 강경남]

미래의 문. [일러스트 강경남]

새로운 시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자. 과거 속에서 이제 벗어나자. 아직도 오늘 과거 이야기만 한다면 우리는 과거에 갇혀있다. 미래로 가는 문이 닫힌 것이다. 금융의 역사를 함께 쓰면서 새로운 시대를 주도해온 분은 퇴직해서도 다르다. 스마트시대, 모바일 시대, 언택트시대를 적극적으로 맞이한다. 사고가 열려있다. 새로운 도전으로 내일의 문을 연다. 새로운 싹이 돋고 있다.

생기 넘치는 화사한 정원에서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나에게 묻는다. “죽은 나무와 살아 있는 나무를 어떻게 구분하는 줄 알아요?” 머뭇거리는 나에게 말한다. “새싹이에요! 새싹이 나지 않는 나무는 죽은 나무예요.”

WAA인재개발원 대표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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