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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틈타 권력 키웠다···성별변경 금지시킨 '동유럽 트럼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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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9일(현지시간) 동유럽 국가 헝가리에서 성별 변경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돼 온 유럽이 난리가 났습니다. 의회에서 찬성 134표, 반대 56표로 압도적인 차이로 가결됐거든요.

인권 단체들은 들고 일어섰습니다. 성전환자들의 성별 선택권을 철저히 무시한 법안이란 지적이었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선 차별이 더욱 심해질 것이란 두려움이 퍼지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인권 보호 비정부기구)는 성명을 내고 "성소수자의 권리를 짓밟은 결정"이라며 "이 법안으로 이들은 더 큰 적대감과 차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 비판했죠.

헝가리에선 지난 3월 3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지법'도 통과됐는데요. 이 역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총리가 국가 비상사태를 무기한 연장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거든요. 총리에게 지나친 권한을 실어주는 법이었죠. 실제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유언비어' 혐의로 수사 중인 사건만 수십 건을 넘어섰다고 AFP통신 등은 보도했습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지난 3월 코로나19 대응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지난 3월 코로나19 대응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있습니다. 일명 '동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정치인이죠.

별칭만 봐도 감이 오시겠지만, 오르반 총리는 자극적이고 때로는 선동적인 발언으로 유명합니다. 추진하는 정책도 그렇고요. 그래서 유럽연합(EU)에선 그를 '독재자'라 비난하고 있습니다.

올해 57세인 오르반 총리가 집권한 건 2010년입니다. 11년째 장기 집권 중이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유럽의 '장수 총리'로 꼽히는데, 성향은 정반대입니다.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오르반 총리는 학생운동으로 정치 활동에 발 디딘 후 1990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며 본격적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소련이 몰락하고 헝가리 내에서도 공산주의가 종식된 때였죠. 그는 소속당인 '피데스'를 우파 포퓰리즘 당으로 만들었고, 1998년 총리 자리에 오릅니다. 겨우 35세 때였죠.

그러나 영광은 잠시. 2002년, 2006년 선거에서 연이어 패하고 맙니다. 그는 절치부심 끝에 2010년 선거에서 당을 승리로 이끌어 다시 총리가 됐는데요. '경제 성장'을 기치로 내건 덕이 컸습니다. 세계 금융위기(2008년) 이후 심각한 경제 위기로 고생할 때였거든요.

경제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끈 덕에 오르반 총리는 2014년, 2018년 선거에서도 연이어 승리합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왼쪽)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모습. 둘 다 유럽의 '장수 총리'지만 성향은 극과 극이다. [AP=연합뉴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왼쪽)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모습. 둘 다 유럽의 '장수 총리'지만 성향은 극과 극이다. [AP=연합뉴스]

연륜만 더해졌다면 좋았을 텐데…. 그의 극우 성향 역시 점점 강해졌습니다. 특히 '난민 수용 결사반대'를 외치며 강력한 반(反)이민 정책을 내세워 난민을 분산 수용해야 하는 유럽연합(EU)의 속을 썩이고 있죠. 국경 지역에 장벽을 세웠을 정도인데,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 중인 트럼프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입니다.

오르반 총리가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새 유럽에서 난민에 대한 반감이 점점 심해졌거든요. 그는 "헝가리인의 일자리를 빼앗지 말라"는 프레임으로 확고한 지지층을 확보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언론을 장악하고 반대파를 탄압하는 등 독재적인 행보마저 보인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빅테이터(빅토르와 독재자를 뜻하는 dictator를 합친 말)'란 별명까지 붙었죠.

현재까지 헝가리에서 나온 코로나 확진자는 약 3600여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수십만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 비하면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죠. 다행인 상황이지만, 이를 핑계로 한 오르반 총리의 고집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EU가 헝가리의 '코로나19 방지법'을 두고 토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오르반 총리는 이를 거절했거든요.

코로나19 봉쇄령이 해제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코로나19 봉쇄령이 해제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국제사회의 우려는 쏟아지고 있습니다. "헝가리는 EU 회원국이지만 오르반 총리는 '마이 웨이'를 고집해 EU와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CNN), "오르반 총리는 독재자가 될 길을 터놨다"(인디펜던트)는 지적이죠.

그리고 가장 씁쓸한 분석은, 헝가리 사회가 당분간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얘기일 겁니다.

"오르반 총리가 집권한 지난 10년간 헝가리 사회는 근본적으로 바뀌고 말았다. 언론의 자유는 심각하게 훼손돼 이제 더는 이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로 볼 수 없다는 분석마저 나온다."(파이낸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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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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