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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누구를 위한 등교 개학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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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호 31면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들 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 결과는 운명에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행위의 결과는 우리 의지의 능력 밖에 있기 때문에 도덕성의 척도가 될 수 없고, 오직 행위자가 책임질 수 있는 의지에 대해서만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칸트의 동기론과 닮은 구석이 있는 고사성어다. 어떤 일의 원인이나 경과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결과만을 갖고 따지는 결과론과는 결이 한참 다르다.

코로나19 집단 감염 우려 다시 커져 #기존 교육의 틀 깨는 파격 고민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처법에서는 어떨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방역당국 관계자와 의료진 등의 노력과 헌신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정부·지자체 등의 코로나19 대응 정책에서는 동기나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정책의 동기나 집행 과정이 아무리 선하고 탁월해도 결과인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해가 되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야구를 비롯한 각종 프로 스포츠에서 경기 결과에 따라 감독이 용병술의 귀재가 되기도 하고 소통 부재의 원흉이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20일 간담회에서 대구 확진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 출범이 며칠 늦어진 점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대구시와 임상 전문가의 의견이 엇갈려 생활치료센터 출범이 미뤄지는 사이 집에서 세상을 떠나는 희생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결과론의 관점에서 되짚어 보면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이어진 황금연휴 때가 더욱 아쉽다. 당시 긴 연휴를 앞두고 코로나19 확진자가 확 줄었고 날씨까지 좋았다. 낙관론이 번지면서 방심한 사이 연휴가 지나갔고 결국 일이 터졌다. 이태원 클럽발 확진자가 쏟아졌다. 노래방·주점 등지에서도 집단 감염이 이어졌다. 황금연휴 전에 이미 곳곳에 퍼진 ‘스텔스 감염’의 후폭풍이라는 분석이 잇따랐다. 황금연휴 후 적어도 2주는 확진자 추이 등을 보고 생활방역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경계심이 느슨해지면서 묻히고 말았다. 뒤늦게 클럽·노래방 등에 사실상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됐다.

입시 일정에 쫓긴 교육부가 고3 학생부터 강행한 순차적 등교 개학도 결과적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 집단 감염 우려가 다시 커졌고, 실제로 고3 등교 직후 조기 귀가와 학교 폐쇄 등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기존의 학사 일정 틀에서만 움직이려는 모습이다.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수능과 순차 등교 일정에 변함은 없다고 못을 박기까지 했다. 고3도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데 말이다.

치료제나 백신이 나오기까지 당분간 코로나19와 불안한 동거가 불가피하다. 고3의 진학이나 사회 진출 등을 앞두고 빠듯해진 일정에 속이 타는 교육부 심정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기존의 학사 일정이 다른 나라와 싸우는 진짜 전쟁에서처럼 ‘(학생의) 희생을 감수하고’ 지킬 절대과제인가.

이른바 ‘K방역’에 이어 ‘K등교’로도 주목 받으려는 사심이 작용한 건 아니라고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상한 시기이니 만큼 비상한 대응을 해달라”고 주문했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사 일정을 찔끔찔끔 미루는 미봉책이나 기존 일정 고수로는 한계가 있다. 난마처럼 얽혀 쉽지 않겠지만, 전례 없는 재난 상황인 지금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이 필요하다. 프랑스는 200여 년 만에 논술형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를 학교 내신 평가로 대체하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코넬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 등의 점수 제출을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코로나19 대응에서 질타를 받고 있는 일본도 9월 학기제로의 전환 논의를 하고 있다.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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