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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세상을 투명하게 보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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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유리의 역사는 기원전 6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학자 플리니우스는 백과사전 『자연사』에서 “유리는 고대 페니키아인이 만들었다”고 적었다. 고대 유리는 색이 들어있고 불투명한 구슬 형태여서 주로 장신구로 사용됐다.

중세 이후 유리를 녹여 판 모양으로 만드는 기술이 개발됐지만 여전히 불투명했고 완전한 무색으로 만들긴 어려웠다. 창틀에 끼워 바람과 눈·비를 막고 채광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너무 비싼 데다 잘 깨졌다. 대성당이나 궁전에서 ‘스테인드글라스’가 사용된 건 무색투명한 유리를 만들 수 없어서이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규사(硅砂)에 탄산나트륨을 더해 불순물을 없애고 용융점을 낮춰 다양한 모양으로 무색투명한 유리를 만드는 기술이 개발됐다. 갈릴레이가 천체를 관찰할 수 있었던 것도 유리 기술의 발달 덕분인 셈이다.

유리는 투명성을 얻었지만 아직도 광학적 한계가 많았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만들기 위해 렌즈 여러 개를 겹치면 색수차·광학수차·구면수차 같은 왜곡현상이 발생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까진 또 200여년이 걸렸다.

독일의 과학자이자 수학자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1812년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겹쳐 상의 왜곡 문제를 해결한 ‘가우스 타입’ 렌즈를 개발했다.

1888년 미국인 앨번 클라크가 가우스 렌즈를 앞뒤로 배열한 ‘더블 가우스’ 렌즈를 발명해 왜곡을 획기적으로 줄였는데 현대에 사용되는 카메라용 표준 렌즈의 조상 격이다.

수십 명의 수학자가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 곡률을 계산하고 숙련된 기술자가 정밀 가공해야 했던 렌즈는 이제 컴퓨터로 쉽게 설계하고 만든다. 인류가 무색 투명한 유리를 만들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있는 렌즈를 갖게 되기까지 7000여년이 걸린 셈이다.

과학은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시각은 아직도 왜곡투성이 같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진영에 따라, 이해에 따라 자신만의 렌즈로 세상을 본다.

2020년 대한민국 사회도 다르지 않다. 영어 단어 ‘투명성(transparency)’은 ‘꿰뚫는다’는 뜻의 접두어 trans와 ‘나타나다’는 뜻의 라틴어 parere가 더해진 것이다. 세상을 투명하게 보려면 투시 능력이라도 있어야 할 모양이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