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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먹는 1억 연봉직 10명 늘려…20대 국회의 기막힌 '여야 상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0일 오후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마치고 국회 본청 앞을 내려오는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 앞에 넙죽 큰 절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최근 의원회관 캐노피 위에 올라가 단식 농성을 벌였던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씨였다. 법안 처리를 주도했던 김 의원은 "고생 많았다"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여·야는 이날 형제복지원 사건을 조사 범위에 포함시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을 포함해 133개 법안을 합의 처리했다. 고용보험 적용 범위에 예술인을 포함시키는 고용보험법 개정안, 공인인증서를 폐지하는 전자서명법 개정안 등 여론의 주목을 받아온 법안이 상당수 포함됐다. "본회의가 항상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민주당 중진 의원)는 말도 나왔다.

형제복지원 피해자인 최승우씨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가결되자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을 향해 절을 하고 있다. [뉴스1]

형제복지원 피해자인 최승우씨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가결되자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을 향해 절을 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일사천리로 통과 의안들을 들여다 보면 모처럼 '일한' 국회를 칭찬할 수만은 없다. 3번째 의안으로 통과된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임용 등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 때문이다.

[현장에서]

압도적 찬성(재석 208인 중 찬성 184인, 반대 13인, 기권 11인)으로 통과된 새로운 국회 규칙은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의 정원을 67명에서 77명으로 늘리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국회는 연구위원 10명(1급 1명, 2급 9명)을 추가로 뽑아 각 교섭단체에 배정하게 된다. 이를 위해선 매년 15억8800만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게 국회예산정책처의 계산이다. 평균 연봉 1억원이 넘는 자리라는 이야기다. 현재는 1~4급 상당의 정책연구위원 67명에게 연 63억7000만원을 쓰고 있다.

문제는 이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의 실체다. 그동안 이 자리에는 '정책연구'라는 목적과 달리 정책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고참 당직자들에게 고위직을 챙겨주는 데 활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임기도 없는 자리를 당 지도부가 임의로 나눠주는 게 관행이었다. 업무 역시 별도의 당직에 따라 정책연구와 무관한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이 개정안이 2016년 발의돼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됐지만 그동안 처리되지 않았던 것도 '자리 나눠먹기'라는 비판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20일 본회의장에서 열렸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왼쪽)가 본회의장에서 박대출 의원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20일 본회의장에서 열렸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왼쪽)가 본회의장에서 박대출 의원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영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 규칙 개정안 처리 이유를 묻자 “2016년부터 4년간 숙의되고 논의돼 마지막에 처리하기로 했다”며 “정말 역량 있는 사람들이 정당과 국회에 들어와서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국회 관계자들 중에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익명을 원한 국회 관계자는 "선거 대패로 당직자들의 자리 보전이 어렵게 된 미래통합당이 강하게 요구했고 손해볼 것 없는 민주당이 쉽게 동의했다"며 귀띔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상생의 정치를 하자면서 상생이 된 적이 없는데 서로의 직접적 이득 앞에서는 상생한다”며 "취지와 달리 선거 이후 논공행상에 국민의 세금이 낭비될 가능성 높다"고 말했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원내총괄수석부대표. [연합뉴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원내총괄수석부대표. [연합뉴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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